전경우 칼럼니스트‘목련꽃 그늘 아래서/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구름꽃 피는 언덕에서/피리를 부노라//아, 멀리 떠나와/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돌아온 사월은/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빛나는 꿈의 계절아/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박목월의 ‘4월의 노래’다. 목련의 계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시(詩)다. 1954년 4월, 가 창간됐다. 편집주간이었던 시인 박두진이 같은 청록파 시인으로 친하게 지냈던 목월에게 창간시를 부탁했다. 목월은 ‘4월의 노래’를 지어 보냈고, 후에 우리나라 최초 여성 작곡가 김순애가 곡
전경우 칼럼니스트예전에 알랭 드롱이라는 아주 유명한 배우가 있었다. 이 배우의 대표작이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다. 잘생긴 외모에 구릿빛 상체를 드러낸 채 요트의 키를 잡고 있는 그의 모습이 세계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곳곳에 알랭 드롱의 사진들이 돌아다녔다. 여학생들은 책갈피 속에 숨겨 둔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방의 남자를 사랑했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배우가 알랭 드롱이라 했고, 어른들은 세상에 그런 희한한 이름이 어디 있냐며 믿지 않았다.영화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는 프랑스 르네 클레망
전경우 칼럼니스트‘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 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박목월(朴木月)의 시 ‘나그네’다. 쓸쓸하면서도 정다운, 나그네 걸어가는 풍경이 펼쳐지고, 술처럼 가슴이 익어 훈훈해지는, 명작이다. 우리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부르고 읊었을 민요 한 자락 같은, 정다운 시다. 눈물 속에서도 술 빚어 위안 삼을 줄 알았던 소박하고 정겨웠던 시절의 풍광이 되살아나고, 소나기 쏟아지자 훅 밀려오는 흙냄새처럼 토속의 향기가 느껴
전경우 칼럼니스트온통 선거 이야기다. 방송 채널마다 선거를 놓고 말들이 많다.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 미디어들도 마찬가지다. 이 당은 어떻고 저 당은 또 어떻고, 어느 당이 옳고 어느 당이 그른지, 누가 쓸 만한지 누가 쓸데없는 인간인지, 무수히 말들이 오간다. 세상 가장 치사하고 더러운 꼴들이 방송에서 신문에서 우리들 밥상머리에서, 밑도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다.화개장터에는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다’고 했는데, 이 정치판에는 ‘있어야 할 건 없고, 없어야 할 건 있다’. 참으로 기이하고 무섭고, 우습다. 염치고 나발이고
전경우 칼럼니스트‘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영영’ ‘사랑’ ‘홍시’… 그 많은 지하철역 이름을 단숨에 읊어 대던 ‘수다맨’도 나훈아의 노래들은 다 못 외울 것이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들었던 아득한 시절부터 반백년이 더 지나도록 우리들을 웃기고 울렸던 나훈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음악으로, 몸으로, 정신과 말로 다 증명해 보였다.경상도 “싸나이”였던 나훈아는 본명이 최홍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히트곡을 냈고, 음반과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도 엄청나다. 노래의 황제, 가황(歌
전경우 칼럼니스트노래나 문학 작품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나 주제는 사랑과 이별, 그 다음이 삶과 죽음 정도이지 싶다. 사랑하고 이별하면서 웃고 울고, 사는 게 무엇인지 죽는 게 또 무엇인지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매미가 한여름 내내 홀로 울다 울다 지쳐 마침내 손톱만한 빈 허물 하나 남기고 사라지듯, 사람의 일생도 그러하다.난폭하고 거칠고,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던 시절, 방실방실 미소 지으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가수 방실이. 그녀의 원래 이름은 방영순이었다. 영순이도 정감이 가는 이름이지만, 예명으
전경우 칼럼니스트‘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어디 뻘밭 구석이거나/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흔들어 깨우면/눈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너를 보면 눈부셔/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했다. 봄도 그
전경우 칼럼니스트좋다 말았다. 축구 이야기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이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 대회에서 팬들을 웃기고 울렸다.한국은 예선에서 기대 이하의 플레이로 비난을 받았지만, 16강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하고 8강에서 강적 호주에 이겼다. 팬들은 치킨과 맥주를 즐기며 밤잠을 잊었다. 잔치 분위기였다. 그러나 설렘도 잠깐, 4강에서 요르단에 0-2로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64년 만의 우승이라는 기대가 무너졌다.독일의 전설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한 이후 기대를 모았던 팬들의 실망이 컸다.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그는
전경우 칼럼니스트스포츠는 무기 없는 전쟁이다. 총이나 칼로 상대를 죽이거나 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이겨야 하고 누군가는 져야만 하는 비정한 승부의 세계다. 실제로 스포츠 경기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전쟁처럼 여겨지고, 전쟁터처럼 끔찍하고 참혹한 일들이 경기장에서 벌어지기도 한다.아득한 시절, 1972년에 독일 뮌헨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1936년 우리나라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딴 베를린 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다시 독일에서 열린 대회였다. 이때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라는 국호를 내걸고 올림픽 무대
전경우 칼럼니스트1992년,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아득한 시절, 참 재미난 일들이 많았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더 넓은 세상에 눈을 뜨면서 보고 듣고 즐길 거리가 엄청 늘어났다. 1980년대의 암울한 시절이 지나고 마침내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란 희망에 부풀었다.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이 스포츠로 민심을 누르려 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 무렵 대한민국 스포츠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겨울에는 농구장 배구장에 관중들이 자리를 꽉 채웠고, 봄 여름 가을에는 축구장에 모여 응원을 했다. 지금처럼 외국인
전경우 칼럼니스트아득한 시절 중국에서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놓고 다투었다. 그 중심에는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왕 유방(劉邦)이 있었다. 전쟁은 5년간이나 이어졌고 최후의 승자는 유방이었다. 항우는 오강(烏江)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마을 촌장이 오강을 건너 훗날을 도모하자고 했지만, 항우는 비장하게 목숨을 끊었다.항우는 “하늘이 나를 버렸는데 내가 어떻게 강을 건너겠는가,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동정해 왕으로 삼아 준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볼 수 있겠는가, 설령 그들이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
전경우 칼럼니스트눈이 내린다. 겨울이 와서 눈이 오고, 눈이 와서 겨울이다. 봄에도 눈이 오고 가을에도 눈이 온다. 겨울에 오는 눈이라야 그 맛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때가 있고, 앉고 서야 할 자리가 있는 법이다.한겨울에 도롱뇽이 알을 낳고 개구리가 느닷없이 짝짓기를 한다. 녀석들이 벌써 봄이 온 줄 알고 춘정을 즐기는 것이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아 그렇다. 눈이 오고 찬바람이 불어야, 겨울이다.눈 내리는 겨울이면 자주 회자되는 시가 있다.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不須胡
전경우 칼럼니스트2년 전 세상을 떠난 ‘한국의 지성’ 이어령 교수가 남긴 업적 중 하나는 서울 올림픽이었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을 총괄 기획하고 지휘했다.그는 서울올림픽의 당초 구호였던 ‘화합과 전진’ 대신 ‘벽을 넘어서’로 바꾸고, 개·폐막식을 통해 대한민국 문화의 우수성과 역동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당시 88올림픽은 그야말로 지구촌 화합의 축제 마당이었다. 그 전에 치러진 소련의 모스크바올림픽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모두 반쪽짜리 대회였다. 냉전의 여파로 지구촌이 두 진영으로 갈리고 올림픽도 그
전경우 칼럼니스트거리에서 유모차를 만나게 되면 어떤 아기가 타고 있을까, 들여다보게 된다. 아기들을 보면 더없이 반갑고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속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유모차에, 아기 대신 개가 들어 앉아 있을 때 그렇다. 엄마가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온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빼고 들여다보지만, 깜빡 속고 만다.예전에는 동네 골목마다 아이들 웃고 떠드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공부방이었다. 시끄럽다며 까탈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런가 보다 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어울려
전경우 칼럼니스트‘유쾌, 상쾌, 통쾌’ 이 세 단어는 언젠가부터 하나의 세트로 묶여 쓰이고 있다. 세 단어가 줄줄이 사탕처럼 따라 붙는다. 당연히 그래야 될 것 같고, 입에도 짝 붙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요즘은 이 단어 조합이 어느 약 광고에 등장하고, 그래서 더욱 익숙해졌다.유쾌, 상쾌, 통쾌, 이 단어가 한 세트로 쓰인 것은 오래 전 일이다. ‘행복, 그거 얼마예요?’ 등의 책과 강연을 통해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최윤희 씨가 만들어 쓰면서 유행이 됐다. 그는 스스로 ‘행복전도사’라는 별명을 짓고, 행복의 비결에 관해
전경우 칼럼니스트2000년에 나온 영화 ‘반칙왕’은 송강호가 주인공이다. 상사한테 만날 구박 당하고 짝사랑하는 여자는 반응이 없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따분하고 지리멸렬한 삶을 살고 있는 은행원 역할이다. 그에게 우연히 일상 탈출의 기회가 찾아온다.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 삶에 활력을 주지만,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가면을 쓰고 반칙의 기술을 익힌 남자는 상대에게 져주기로 약속하고 링에 오른다. 하지만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지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결국 KO 패당하고 말지만, 해피엔딩
전경우 칼럼니스트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이런 실없는 소리를 해대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은 이상하지만, 사람이 개를 먹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던 세상이었다. 요즘은 개가 사람을 물어도 뉴스가 되고, 사람이 개를 먹는다는 것도 뉴스가 된다. 세상이 달라졌다.아득한 시절부터 개는 가축처럼 길러졌다. 원래 개는 야생에 살다가 인간과 가까워지면서 가축이 됐다. 인간과 더불어 살다 보니 먹을 것도 생기고 잠 잘 곳도 생기고 천적으로부터 보호도 되니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는 걸, 개들
전경우 칼럼니스트정치인들의 출판 기념회 소식이 자주 들린다. 그 바쁜 가운데 책까지 내다니,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얼마나 좋을까. 근무 시간에 코인하고 주식하면서, 원고 쓰고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 이벤트까지 여는 것 보면, 예사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빼어난 재주가 있으니 금배지도 달고 높은 자리에도 오를 수 있었겠지만, 보통 사람들 눈에는 경이롭기까지 하다.선거 때만 되면 출판기념회가 줄을 잇지만 읽을 만한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없다. 서점에 내다 팔 것도 아니고, 누구로부터 평가를 받을 것도 아니고,
전경우 칼럼니스트‘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신동엽(申東曄, 1930~1969) 시인이 1967년 발표한 ‘껍데기는 가라’는 시다. 시인 신동엽은 요즘 TV에 등장하는 개그맨 출신 방송인 그 신동엽이 아니
전경우 칼럼니스트펜싱으로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나라를 빛낸 남현희씨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결혼을 약속하고 언론 인터뷰까지 했던 상대가 남자와 여자로 위장, 변신하며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다. 언론 입장에선 시청률을 올리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가십성 뉴스거리다. 추악하고 입에 담기도 민망한 소식이지만, 언론 입장에선 호재임에 틀림 없다.남현희씨는 과거 국가대표로 태릉에서 훈련을 하던 중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한 적이 있다. 요즘은 누구나 하는 쌍꺼풀 수술을 했다고 징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