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엊그제 120여 년 역사가 사라질 뻔한 초등학교에서 뜻깊은 민관협의회가 열렸다. 필자를 포함해 참석자가 20명 정도의 소규모 회의였으나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소통회의’라는 다소 거창한 명칭이 붙었다. 회의 장소는 인천 최초 공립학교인 창영초교 문화재관 사랑채. 일자형 적벽돌 2층에 아치형 현관문, 격자형 창틀, 나무 복도 등 근세 풍모를 간직한 건물이다.창영보통학교에 다니던 어린 학생들이 1919년 3월 6일 전화선을 끊고 동맹휴교를 선언한 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갔다. 현재 교정 안에는 ‘3.1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감녕(甘寧, ?~220)은 중경 출신으로 자는 흥패(興覇)이다. 진(秦)의 승상 감무(甘茂)의 후손이다. 소년시절부터 유협기질이 있어서 건달들을 모아 해적질을 했다. 화려한 차림에 요령을 달고 다녔으므로 금범적(錦帆賊)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요령소리가 들리면 감녕인 줄 알았다. 친구를 무시한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 명성을 날렸다. 따르는 사람들까지 비단옷을 입혔고 어디를 가든지 화려한 행차를 즐겼다. 배를 비단으로 묶어뒀다가 떠날 때는 미련도 없이 잘랐다. 부와 사치를 즐기면서도 인기가 높아 관리들까지 친하게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격안관화는 전국책(戰國策)의 ‘휼방상쟁(鷸蚌相爭) 어옹득리(漁翁得利)’에서 유래됐다.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알려진 이 고사를 두고 당의 선승 건강(乾康)이 지은 시다. 격안홍진망사화(隔岸紅塵忙似花), 당헌청장냉여빙(當軒靑嶂冷如氷). 건너편 언덕의 단풍은 꽃처럼 피어나는데, 집 앞의 가파른 푸른 산은 얼음처럼 차갑구나. 홍진의 화려함을 얼음처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상대의 싸움을 지켜보는 책략가의 날카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중봉광록(中蜂廣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생각이 은밀하면 행동도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적벽대전’은 고대 중국 삼국시대 유비와 조조의 전쟁이었다. 소설로 영화로 세계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드라마 같은 중국 역사다. 이 전쟁에서 냉철하고 원리원칙을 고수했던 영웅 조조는 부드럽고 유한 유비에게 대패한다. 단단한 쇠는 부러지나 유연한 것은 질겨 오래 간다는 것을 교훈으로 남기고 있는 것인가.판소리 적벽가를 보면 승리한 유비는 당대의 현군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패장 조조는 죽음 앞에서 살려고 버둥거리는 비열한 인간으로까지 표현되고 있다. 본래 역사는 아무리 훌륭한 영웅일지라도 패장이 되면 후한 점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삼국시대에 제갈량은 유비와 처음 만나서 융중대(隆中對)라는 웅장한 전략적 대안을 제시했다. 당시의 국제정세를 냉정하게 분석한 제갈량은 ‘천하삼분’이라는 할거전략을 설명했다. 요점은 약자인 오와 촉이 연합해 강자인 조조에게 대항한다는 것이었다. 이 전략에 따라 유비는 손권과 연합해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크게 무너뜨린 후에 형주(荊州)를 차지했고, 나중에 다시 익주(益州)를 차지해 촉한을 건국하고 세력균형의 한 축을 형성할 수가 있었다. 오와 촉이 연합을 하면 조조보다 강하지만 분리되면 국력이 조조에 비해 턱없이 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천하를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는 첩자를 부리는 용간술(用間術)에 능했다고 한다. 주변국과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적국에 첩자를 잠입시켜 수만금의 황금을 써서 관리들을 매수했다고 한다.삼국지의 조조는 용간술의 달인이었다. ‘전쟁을 치르게 될 때는 반드시 먼저 첩자를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적의 실정과 속셈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戰必先用間, 以知敵情實也)’는 지론을 폈다. 그러나 천하의 조조도 적벽대전에서 유비의 군대에게 참혹하게 패전해 지금도 간웅(奸雄)이란 낙인의 틀을 벗지 못하고 있다.손자병법에는 ‘간(
중학교 벚나무류순자적벽돌 본관 앞에서 내일 필 벚꽃망울들 여중생들의 목소리같이 떠들썩하게 맺혀 있다 말늘임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벚꽃망울들 수다스러운 사춘기의 여중생들처럼 재잘대고 있다 교복 치마 자꾸 짧게 입으려고 애쓰는 두리뭉실한 몸매의 아직은 무다리 여중생들이다 교생 국어선생이 넥타이를 만지기만 해도 벚꽃망울들 옆 친구에게 눈짓하며 솔 톤으로 웃는다. [시평]이제 머잖아 벚꽃도 만발할 것이다. 여중생들은 3월 새 학기를 맞아 겨우내 묵혔던 먼지를 털어내고, 밝은 웃음으로 학교로 모여든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들뜬 목소리로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대한민국의 정치가 ‘예(禮)’와 ‘형(刑)’을 잃었다. 예부터 정치의 요체로 회자돼 온 단어다. 정치가 잘되려면 지도자들이 반드시 ‘예, 형’을 지켜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으니 혀를 찰 따름이다.‘예, 형 정치’를 강조한 학자는 주나라 순자(荀子).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책사 제갈량은 순자의 가르침을 이행해 나라를 성공시킨 인물이었다. 유비가 세 번을 찾아가 머리 숙여 기용한 삼고초려의 주인공이 아닌가.그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대전에서 격멸시키면서 나라 위상을 높였다. 유비는 유언으로 자신의 아들이 무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옵티머스(Optimus)란 단어는 낙천주의, 낙관주의라고 번역된다. 삶의 가치와 의의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개념이다. 사실 희망과 긍정을 논하는 단어 가운데 이 보다 더 좋은 용어는 찾기 힘들다.그러나 코로나19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국에서 ‘옵티머스’라는 단어는 불쾌한 단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옵티머스 자산운용회사 이사의 부인이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하는 시기 5천억 금융사기가 발생,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다.이 사건에 금방 알만한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동진(東晋)의 영화(永和)9년(353) 3월 3일은 해마다 찾아오는 삼짇날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하루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흥(紹興)의 명사 41명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왕희지(王羲之), 사안(謝安 320~385), 손작(孫綽 314~371) 등은 특별한 하루를 만들기로 모의했다. 좌장인 왕희지는 41명의 모임을 ‘군현필지, 소장함집(少長咸集)’이라고 규정했다. 현명하다는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니, 나이를 초월한 모임이 되었다는 감개무량한 표현이다. 입구의 땅바닥에 거대한 서각으로 군현필지를 새겨놓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손자병법의 ‘용간(用間)’은 첩자를 이용하는 계책을 서술한 것이다. 고대 중국의 군주나 명장들은 용간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상대 전력을 정확히 파악해 전술에 이용하는 것은 최고의 전략이다. 손자는 용간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인간(因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死間), 생간(生間)이 그것이다. ‘인간’은 적국 주민을 첩자로 쓰는 것이다. ‘내간’은 적국 관리를 포섭해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반간’인데 적의 첩자를 아군의 첩자로 활용하는 것이다. 바로 이중간첩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술을 가리켜 근심을 잊는다는 뜻으로 망우물(忘憂物)이라고 한다. 망우물을 사랑한 시인들이 많았지만 그중 삼국지의 주인공 조조의 단행가(短行歌)가 단연 백미이다.“술잔 들고 노래 부르세, 인생 얼마나 남았겠나(對酒當歌 人生幾何)/ 아침 이슬처럼 스러질 것이지만, 지난 세월 고생도 많았네(譬如朝露 去日苦多)/ 주먹 쥐고 울분 토해도, 지난 근심은 잊을 수 없어라(慨當以慷 憂思難忘)/ 아! 무엇으로 시름을 떨치리오, 오직 술뿐인 것을(何以解憂 唯有杜康)”천하의 간웅(奸雄)으로 평가됐던 조조는 이런 감성을 지닌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920년 12월 29일, 이완용은 3.1운동 진압의 공로로 백작에서 후작으로 승작됐다. 당시 후작은 일본 안에서도 몇 명 안 될 정도로 권위가 높은 작위였다. 1922년에 이완용은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1925년까지 4년간 서예부문 주임으로 활동했다. 이완용의 서예 실력은 뛰어났다. 그의 글씨는 조선 총독 데라우치로 부터 일본 천황의 귀에 들어갈 정도였다. 1913년 10월 11일 이완용은 다이쇼 천황으로부터 휘호를 써 보내라는 ‘천은’을 입는다. 이완용은 즉시 14자의 한시를 비단에 써
최상현 주필 믿거나 말거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유비의 책사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신비한 초능력의 소유자였다. 제갈공명은 결코 인간의 소관일 수가 없는 ‘위력적인 천기(天氣)의 자연력(the fury of the elements)’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으켜 활용한 것으로 묘사돼 ‘소설’ 읽는 재미에 빠지게 해준다. 그는 유비 진영의 군사(軍師)로서 조조(曹操)가 그 유명한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 맞서 동원한 100만 대군에 심대한 타격을 안기도록 기획한 천하제일의 탁월한 전술가였다. 이렇다 했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인류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이 무엇일까? 혹자는 성경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소설 삼국지라고도 한다. 소설 삼국지의 원명은 삼국통속연의이다. 작가 나관중은 본명이 본(本)이고 관중은 자이다. 원말명초에 비단상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북방에서 경제와 문화의 중심인 항주로 이주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항주에서 활동했다. 잡극작가도 있었다. 1356년, 나관중은 반란군 지도자 장사성(張士誠)의 막부로 들어갔다가 그가 몰락하고 주원장이 명을 세우자 박해를 피해 강호를 유람했다. 1364년에 항주로 돌아와 소설 삼국지를 지었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서령인사(西泠印社)는 금석전각을 연구하는 유명한 중국의 학술단체이다. 이 단체의 비조는 정경(丁敬)이다. 전각은 독특한 전통예술 가운데 하나이다. 도장을 팔 때는 일반적으로 전서체로 글씨를 날카로운 칼로 새기기 때문에 전각이라 한다. 나와 친한 전각가 고암(古岩) 정병례는 서예와 전각의 차이에 대해 “서예가 붓에 먹을 찍어 종이에 문자를 조형하는 예술이라면, 전각은 칼로 고형체에 새긴 문자에 인주나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은 후에 나타나는 인영(印影)을 감상하는 예술이다. 서예가 평면적 예술이라면 전각은 입체적
최상현 주필 권력은 사람과 조직과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권력의 본질은 강제력이며 군림이다. 이 같은 권력을 가진 사람은 더 말할 것 없이 사회적 강자(强者)로서 사회적 서열의 우위를 차지한다. 사람의 천성엔 사회적인 강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그 욕망은 등불이 불나방을 꾀듯 사람을 죽자 사자 권력의 주위로 모여들게 하는 강한 유인력이 된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본령은 국민에 대한 봉사다. 하지만 그 같은 권력의 표면적인 미명(美名)이 사람들로 하여금 권력 주위에 모여들게 하고 권력을 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얼마 전 취재차 전북 부안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엔 신라가 삼국 통일 당시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킬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머무른 곳이기도 한 ‘내소사(來蘇寺)’란 천년고찰이 있다. 백제 무왕 34년에 중건된 이 절은 조선 성종 때 지은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과 고려 문인 백운거사로 유명한 이규보의 ‘남행일기’엔 ‘蘇來寺(소래사)’라 적혀 있다. 그 내소사 앞엔 넓은 변산반도가 펼쳐져 있고, 거기엔 중국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놀다 죽은 채석강과 흡사하다 하여 바다임에도 ‘채석강’이란 절경이 있고, 또 중국의 적벽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