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가 독자참여코너로 가로세로 낱말 퀴즈를 연재합니다. 낱말 퀴즈는 가로세로 낱말퍼즐 저자로 잘 알려진 김수웅 선생이 직접 출제한 퀴즈가 격주로 게재됩니다. 퀴즈에 응모하는 독자 중 5분을 추첨해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증정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 대한민국 국가의 제목. 식순에 따라 다음은 ~ 제창이 있겠습니다3. 1932년 일본 천황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검거되어 순국한 의사5. 교육이란 취직이나 出世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스승님이 생각난다7. 한 나라가 완전한 주권을 가짐.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1775년 미국 독립전쟁 당시 자유의 투사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는 선언문을 통해 이같이 호소했다.조지 워싱턴이 지휘하는 미국 독립군은 5만여명이 희생하여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훈련이 잘된 영국군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미국 독립군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영국군도 기록을 보면 4만여명이 전사하거나 혹은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인간의 삶에서 ‘자유’는 생명처럼 소중하다. 인간이 자유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국가보훈부에 의해 내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부가 1992년부터 선정해온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이 전 대통령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야 이 전 대통령이 독립운동가로 포함됐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그동안 보훈부는 매년 12명 이상의 독립 유공자를 선정했다. 김구 주석,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등 두 차례 중복 선정된 13명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463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 중에는 외국인도 12명이나 들어있다.‘이달의 독립운동가’는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
문재인 전 대통령이 페이스북을 통해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김좌진 장군 등의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해 “흉상 철거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듯이 우리 국군의 뿌리도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인가”라고 밝혔다.이어 “국권을 잃고 만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로 떠돌며 풍찬노숙했던 항일 무장독립운동 영웅들의 흉상이 오늘 대한민국에서도 이리저리 떠돌아야겠나”라며 “그것이 그분들에 대한 우리의 예우이며 보훈인가”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를 향해 “여론을 듣고 재고하는 것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매년 8월 15일은 광복절로 국경일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일본 제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해 패망함으로써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광복절을 기념하는데 올해는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한지 78년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당시 구 소련의 야욕과 북한을 장악한 김일성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고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분단국가로 남아있다.광복이란 명예롭게 회복한 것을 의미한다.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강제적으로 식민지로 변한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어느 나라이건 기억하고 싶은 역사가 있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역사가 있다. 잊고 싶은 역사는 무엇이고 기억해야 할 역사는 어떤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피로 지켜준 위대한 영웅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다.미국은 우리의 혈맹이다.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함께 지켜야 하는 든든한 우방이기도 하다. 6.25라는 참담한 비극을 통해 잿더미가 된 한국을 오늘날 번영을 이루게 한 힘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자유민주주의 체제였다.한때 우리 사회에선 용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10.3 개천절은 3.1절, 그리고 광복절과 더불어 3대 국경일로서 올해는 4354주년이 된다. 이날은 우리 민족이 반만년 동안 이어져 왔다는 자기인식과 자긍심의 징표이다. 상해 임시정부 때부터 개천절을 기념했으며 그 전통은 광복 후에도 이어져 정부는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했다.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국경일인 만큼 재외공관은 개천절에 국경일 리셉션을 개최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국내에서 개천절은 축제가 되기는커녕 그야말
송병승 충효예문화운동본부 공동총재 이봉창(李奉昌, 1900~1932)은 본적이 경성부 금정동(현재 효창동) 118번지이고 출생지는 경성부 원정2정목(현재 원효로2가)이다. 출생연도가 1901년으로도 등재된 이유는 출생신고를 늦게 했다고 본다. 그는 전주이씨 진구와 밀양 손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빈한한 생활, 뒤이어 부유한 생활을 반복했는데 다시 역경을 맞아 일본인 경영의 점원, 철도국 역부 등으로 근무했다. 청년기로 접어들면서 우리 조선이 왜 일본에게 억압당하고 살아야 하는가 울분을 토하며 원수의 나라 일본으로 건너
천지일보가 독자참여코너로 가로세로 낱말 퀴즈를 연재합니다. 낱말 퀴즈는 가로세로 낱말퍼즐 저자로 잘 알려진 김수웅 선생이 직접 출제한 퀴즈가 격주로 게재됩니다. 퀴즈에 응모하는 독자 중 5분을 추첨해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증정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가로열쇠 1. 1905년에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 3. 고종의 막내딸로 조선 왕조 최후의 황녀 6. 책 따위를 빠른 속도로 읽음. 반대개념은 정독 8. 조선 시대, 임금의 명에 의해 죄인을 다스리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10. □□□에 도난 신고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상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에 최종적으로 참여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회영(李會榮)은 1920년 3월 베이징(北京)의 거처가 있는 후루고원으로 다시 왔는데 그 이후 베이징 대학에 재학 중인 이정규(李正奎)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15회에서 소개하였듯 이정규가 이회영을 만난 이유는 “이상농촌(理想農村) 양타오촌 건설계획”과 관련해 조언을 구하고 지도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러한 만남의 과정에서 우당(友堂)은 이정규에게 아나키즘에 대하여 자세히 문의를 하였는데 사실 아나키즘에 대하여 이정규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고종황제(高宗皇帝) 망명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에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으니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덕수궁(德壽宮) 함녕전(咸寧殿)에서 식혜를 마신 이후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괴로워하다가 30분 만에 붕어(崩御)하는 불행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하여 이회영(李會榮)이 추진했던 고종황제의 베이징(北京) 망명사건이 실패로 끝나면서 국내 체류 6년 만에 다시 베이징으로 망명했으니 1919년 2월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회영이 거처하였던 곳은 베이징 자금성 북쪽 후고루원에서
투혼과 예지 빛난 선열정신, 영원히 기려야 할 역사적 과업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수만 명의 민간인이 살상됐다. 이에 세계는 러시아 규탄에 이어 이 사태가 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으로 번질까 반전 평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더욱이 주요 농공산물의 거대 생산지인 두 나라의 전쟁으로 인해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 곡물 수급에 초비상이 걸렸다. 세계는 이 사태를 예의 주시, 식량보호주의를 강화하며 자기 곳간 지키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세계 유일무이 분단국이며 자원 빈국, 세계 7위 곡물수입
올해로 103주년을 맞이한 3.1절 기념식이 1일 오전 서울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대한사람 대한으로’라는 주제로 열렸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고려해 소규모로 개최됐지만 이번 기념식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먼저 20대 대선이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103년 전의 한국과 앞으로의 한국을 극명하게 대비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103년 전의 역사는 ‘피눈물’ 그 자체였다. 과거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미래를 주도할 수도 없다. 역사의 엄정한 가르침이다.또 하나의 의미는 이날 기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지난 16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위원장: 김부겸 총리)는 4차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컨퍼런스가 개최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화상 연설자로 초청된 대만의 오드리 탕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에게 일방적으로 연설을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이러한 결례에 대해 대만 측은 당연히 강력히 항의했고, 반면 중국 관영매체는 ‘올바른 결정’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어 21일 우리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측 참석 문제는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상면 전 서울대 법대교수제2차 세계전전 후 한반도 분단은 연합국에 의해 자행된 점에서 독일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분단 이전에 국공내전과 맞물려 임시정부시기부터 독립운동 체제가 갈라져 있었고, 1945년 해방 후에도 분란이 심각했으며, 1948년 정부수립 후에도 38선에서 무력충돌이 잦았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피차 국제법적 지위가 교전단체(belligerent)가 된 점에서 다르다.독일이 분단에서 교류협력으로 신뢰를 구축해 통일기반을 조성한 것을 본받으려면, 우선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의
천지일보가 독자참여코너로 가로세로 낱말 퀴즈를 연재합니다. 낱말 퀴즈는 가로세로 낱말퍼즐 저자로 잘 알려진 김수웅 선생이 직접 출제한 퀴즈가 격주로 게재됩니다. 퀴즈에 응모하는 독자 중 5분을 추첨해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증정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가로열쇠1. 백야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20세의 나이에 주먹계를 평정한 종로의 ‘오야봉’이 된 협객3. 삼국시대 신라의 삼국통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금관가야의 왕족 출신 장수5. 고구려의 제3대 국왕 대무신왕의 아들. 낙랑공주와 ▢▢왕자의 사랑7. 빛깔이 흰 강아지(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1910년 8월 29일에 나라가 망하자 고종은 ‘덕수궁 이태왕’ 전하가 돼 덕수궁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영친왕의 생모 엄귀비가 1911년 7월에 별세했다. 새옹지마랄까? 1912년 5월에 복녕당 양씨가 덕혜옹주를 낳았다. 61세에 딸을 본 고종은 사는 맛이 났다.1914년 7월에는 광화당 이씨가 이육을 낳았고, 1915년 8월에는 보현당 정씨가 이우를 낳았다. 늦게 두 아들을 얻은 고종은 더욱 기뻤다. 그런데 1916년 1월에 이육이, 7월에는 이우가 죽었다.이 시기 다섯살 덕혜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8월 15일은 두 모습이다. 1945년 8.15 해방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다. 해방정국 3년을 살펴보자. 미국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8월 15일 정오에 히로히토 천황은 무조건 항복 선언했다.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였다. 미국과 소련이 남북을 분할 점령한 것이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소련은 일본 참전을 약속했지만 계속 미루었다. 그런데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틀 후인 8월 8일
송병승 이봉창의사선양회 이사서울시 용산구 임정로(효창동)에 위치한 효창공원은 본래 효창원(孝昌園, 사적 제330호)에서 비롯됐다. 조선왕조 제22대왕 정조(正祖)의 맏아들 문효세자(文孝世子)가 5세에 사망해 무덤인 효창묘를 칭했다.그후 문효세자의 생모 의빈성씨(成氏), 23대왕 순조(純祖)후궁 숙의박씨(朴氏), 숙의박씨의 첫 번째 소생 영온옹주 등이 이곳에 안장됐다. 1870년(26대왕 고종7)에 효창묘는 효창원으로 승격됐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전개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일본군 혼성여단은 민족정기를 꺾기 위해 유람지로 만들
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10여년 전만 해도 자기계발 열풍이 뜨거웠다. 어느 때부터인가 ‘자기계발’ 말만 나와도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기계발을 한다면서 너무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힐링, 치유, 쉼 등의 단어들이 자기계발의 자리를 차지했다. 힐링이나 쉼 등의 중요성을 잘 알고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자기계발이 그렇게 내쳐져야 할까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자기계발(自己啓發)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잠재하는 자기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이라고 나와 있다. 좀 더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