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순수한 우리 말 흰무리를 ‘설기’라고 하는데, ‘설지’는 ‘셜교(설고, 雪餻)’에서 왔다. ‘셜교’는 ‘눈처럼 흰 떡’이란 뜻에서 그러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그러나 ‘흰무리’와 ‘백설기’는 약간 구별이 된다. ‘백설기’가 켜를 잡아 안치는 떡이라고 한다면 ‘흰무리’는 켜가 없게 안쳐서 쪄낸 시루떡이다. 효소왕대 죽지랑조에 설병(舌餠)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음이 설고와 비슷한 점을 들어 이 설병을 백설기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백설기에 관한 중국 기록은 남송 말기의 에 설고라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영남(嶺南)의 대학자(大學者)로 명성을 떨쳤던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은 1554(명종 9)년에 탄생하였으며 18세에 ‘우주요괄첩(宇宙要括帖)’을 지을 정도로 그 학문의 경지가 대단했다. 특히 주역(周易)에 조예가 깊어 ‘역할도설(易學圖說)’을 저술하였다.또한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보령 현감(保寧縣監)과 의성 현감(義城縣監)을 역임한 것 이외에 대부분 나아가지 않고 학문의 길에 매진하였으며 1637(인조 15)년 향년(享年) 84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났다.필자는 평소에 숫자에 관심이 많으
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동아예술전문학교 예술학부 교수)최근 활기찬 5060세대를 묘사하는 ‘액티브 시니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중장년층은 더 이상 꼰대, 노인이라는 소리 듣기를 거부한다.액티브 시니어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활기차게 움직이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취미나 일에 대해 도전하고 성취한다. 기대 수명이 늘고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시니어 인구는 생산 활동을 늘려가고 있으며 과거 수동적 유형에서 점차 능동적인 참여형 소비자로 자리 잡고 있다.이런 상황에 5060세대인 가수 인순이,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로 구성된 ‘골든걸스’
장순휘 정치학박사/ 한국문화안보연구원 부원장혜성같이 등장한 방탄소년단(防彈少年團)은 이름부터 독특했다. 영어약칭 BTS는 영어음차인 ‘Bang-tan Sonyeondan’에서 따온 것이지만 영어로만 ‘Bulletproof Boys’에서도 차용이 가능한 애칭이다. 방탄소년단의 이름에는 ‘방탄’의 사전적 의미대로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으로 “10대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힘든 일, 편견과 억압을 우리가 막아내겠다는 심오한 뜻을 담아냈다”고 밝힌 점에서 MZ세대를 대변하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공식데뷔일은 2013년 6월 13일로 올해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주선 이백은 겨울이 싫었다. 추위로 방안에 갇혀 사는 일상이 즐겁지 않았던 것인가. 따사로운 봄, 복숭아꽃 피는 도원경과 호수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시인의 기대는 꽃 피는 봄이었다. ‘춘야 봄밤 도리원에서’란 시에는 시인의 심경이 짙게 나타나 있다.‘무릇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네/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 덧없는 인생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누림이 얼마인가/ 옛 사람이 촛불을 잡고 밤놀이를 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네/ 따뜻한 봄날은 안개 낀 경치로 나를 부르고/ 대지는 나에게 문장을 빌려줌에랴…(하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우리는 젓갈의 왕국이라 할 정도로 젓갈이 잘 발달됐다.물론 젓갈이 한국 특유의 음식이라고만 볼 수 없다. 중국에도 ‘해(醢)’라고 해서 젓이 있고, 일본에도 ‘시오카라(鹽辛)’라고 해서 젓갈이 있다.다만 영어 영역에는 젓갈이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젓갈’을 나타내는 말이 따로 없다. 굳이 젓갈을 나타내려면 ‘간장에 담근 고기’ 곧 ‘meat preserved in soy’라고 풀어 표현해야 한다.젓갈의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훈고서이며,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취급되는 ‘이아(爾雅)
전경우 칼럼니스트아바(ABBA)는 1970~1980년대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룹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시절 아바의 음악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이 많다.아바는 비틀즈 이후 가장 성공한 그룹 중 하나로 1972년 데뷔한 스웨덴 출신 4인조 혼성 그룹이다. 아바는 두 부부의 조합으로 이뤄졌다. 남성 둘은 주로 연주를 담당하고 두 여성 보컬이 노래를 불렀다. 이들이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는 다정한 모습이 팬들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아바는 1974년 당시 유럽 최고 음악 경연 대회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한국의 산천을 답사하다 보면 무릉리, 도원리라고 하는 이름이 많다. 굽어진 강을 끼고 높이 솟은 산, 봄이면 복숭아꽃이 피는 곳에는 이런 이름이 붙어있다. 충북 괴산 청천면 도원리에는 삼국시대 큰 절터가 있다. 마을 입구에 긴 장대석에는 옛날 사람들이 ‘무릉’ ‘도원’이라는 한문 표지석까지 만들어 놓았다.무릉도원이라는 표현은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처음 지은 글이다. 한 어부가 꿈속에 배를 타고 동굴에 들어갔는데 복숭아꽃이 만발한 신비한 마을을 발견한다. 그곳은 세상과 다른 풍경이었으며 사람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자반(佐飯)이라고 하면 안동의 ‘간고등어자반’을 떠올린다.자반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자반이 나오는 최초의 문헌은 고려 말 문신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한시집 ‘목은시고(牧隱詩藁)’일 것이다. 이 책에 ‘冠嶽山 禪覺菴 澈首座 惠草佐飯石茸(관악산 선각암 철수좌 혜초자반석이) 관악산 선각암의 철수좌가 나물반찬과 석이를 보내 주시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조선 초 어의였던 전순의(全循義)가 편찬한 고조리서 ‘산가요록(山家要錄)’에도 자반이 나오고, 경북 안동의 유학자 김유(金綏, 1491∼15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경청(傾聽)’이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이 우리 사회에 화두로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삼성 고 이건희 회장이 자녀들에게 ‘경청’이라 쓴 글씨를 나눠주며 특별히 당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그런데 삼성그룹 연구소가 조직 내에서 ‘경청’의 긍정적 효과를 조사했는데 재미난 결과가 나왔다. 직장인 중 지시만 받고 일하는 경우 48%가 업무에 열의가 없으며, 완전히 몰입하는 경우는 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리더의 말에 절대 복종적 자세를 지닌 조직은 그만큼 능률도 안 오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박세채(朴世采)는 1688(숙종 14)년 7월 입성해 희정당에서 숙종(肅宗)에게 5건의 차자(箚子)를 올렸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인조(仁祖)의 손자(孫子) 동평군(東平君)의 혜민서 제조(惠民署提調) 임명(任命)에 관한 차자였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숙종실록(肅宗實錄)에서 인용한다.“(‘숙종실록’ 19권, 숙종 14년 7월 13일 계미 1번째 기사) 지난해 사간원에서 동평군(東平君) 이항(李杭)을 혜민서 제조(惠民署提調)의 일로 논했는데 성명(聖明)께서 즉시 들어주지 않으시고, 대간(臺諫)도 굳게 의견을 주장하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일찍이 주자(朱子)는 황극(皇極)에 대하여 “황(皇)은 임금이요, 극(極)은 지극, 표준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여 결국 임금이 그 지극한 표준을 천하(天下)에 세우는 것이라고 해석(解釋)하였다.여기서 황극탕평(皇極蕩平)의 연원(淵源)을 소개한다면 황극이란 본래 ‘시경(詩經) 홍범 편(洪範編)’에 나오는 말로 군주(君主)가 천하에 지극한 표준을 세운다는 것이며 탕평 또한 시경 홍범 편에 나오는 말로 군주의 치도(治道)가 탕탕평평(蕩蕩平平)한 경지(境地)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박세채(朴世采)가 제기한 황극탕평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정과(正果)는 과일이나 연근, 생강, 도라지, 감초 같은 약초를 조청이나 꿀에 졸인 한과다.‘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는 “정과는 이름 난 나무열매와 아름다운 풀 열매를 꿀에 달여서 볶은 것으로, 가히 오래 두어도 되나니 중국에서는 밀전과(蜜煎果)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정과라 한다. 즙청까지 아울러 쓰는 것은 수정과라고 한다”라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궁에서 잔치 때 주로 연근·생강·산사육·동아·모과·도라지 등을 이용해 정과를 만들었고, 제례 시에는 특히 인삼정과를 올렸다.‘경국대전(經國大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1639(인조 17)년 9세에 남원에서 서울로 다시 온 박세채(朴世采)는 11세에 부친(父親)인 박의(朴漪)에게 ‘격몽요결(擊蒙要訣)’을 배우면서 ‘성학집요(聖學輯要)’와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문집(文集) 등을 읽었다. 그런데 박세채가 14세가 되는 1644(인조 22)년 박의(朴漪)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었다.구체적으로 박세채는 이미 숙부(叔父)인 박유(朴濰)의 양자(養子)로 출계(出系)하였으나 그의 친형(親兄)인 박세래(朴世來)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형 대신 다시 돌아와 가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본 칼럼에 소개하는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는 17세기 조선(朝鮮)의 관인(官人), 유자(儒者)로서 숙종(肅宗) 대(代)에 당파(黨派)를 초월(超越)하여 능력(能力)에 따라 인재(人材)를 등용(登用)하자는 탕평론(蕩平論)을 최초(最初)로 주장(主張)하였다.박세채는 1695(숙종 21)년 향년(享年) 65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생애(生涯)를 12회에 걸쳐서 소개(紹介)한다.박세채의 본관(本貫)은 반남(潘南)이며, 자(字)는 화숙(和叔)으로서 1631(인조 9)년 한성부(漢城府) 서부(西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역사에 가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만약에 이러한 제안이 수용돼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성직자(聖職者)를 동행해 귀국(歸國)했다면 인조(仁祖)를 비롯한 조정(朝廷)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을 것이며, 이는 실로 역사적인 대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는데 이것은 조선에 천주교회(天主敎會)가 공식적으로 조직되기 139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그래서 아담 샬 신부가 성직자 동행 대신 신자 출신의 환관((宦官)과 궁녀(宮女)들을 파견하기에 이르렀는데 안타깝게도 소현세자가 귀국한 지 불과 2개월만에 창경궁(昌慶宮) 환경전(歡慶殿)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초기부터 주목을 받았던 ‘에스파’의 경우 세계관을 확장했다. 에스파의 세계관 속 캐릭터 ‘나이비스(nævis)’를 버추얼 아이돌로 만들겠다는 것. 이 사례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실제 아이돌 기반에서 벗어나 순수 가상 아이돌로 진전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관이 확장되는 것이므로 이후 버추얼 아이돌의 파생 캐릭터가 무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알파 세대는 날 때부터 세계관에 익숙하기 때문에 세계관 속 캐릭터 확장에 거부감이 없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지금 단계에서는 가상 캐릭터와 실제 아이돌 캐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1644(인조 22)년 베이징(北京)에는 독일인 출신 예수회 사제 아담 샬 신부가 남천주당(南天主堂)에 머물면서 포교활동(布敎活動)을 하고 있었다.이러한 상황에서 베이징(北京)의 관소(館所)인 문연각(文淵閣)에 머물고 있던 소현세자는 남천주당에 있던 아담 샬 신부(神父)를 만나게 됐다.그런데 이러한 만남이 소현세자가 서구문물(西歐文物)을 비롯해 천주교(天主敎)를 접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됐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사실 기간으로 볼 때 소현세자와 아담 샬 신부와의 만남은 불과 2개월 정도밖에 되지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조선은 이러한 상황에 처하여 청나라의 요구를 수용하자는 주화파(主和派)와 청나라의 요구를 거부하고 전쟁을 하자는 척화파(斥和派)가 첨예하게 대립하니 새로운 차원의 당쟁에 돌입하게 되었다.그러나 결국 인조(仁祖)가 척화파(斥和派)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상황이 돌변해 청태종(淸太宗)이 1636(인조 14)년 12월 2일 직접 군사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략하면서 병자호란(丙子胡亂)의 신호탄(信號彈)이 시작되었다.한편 청나라의 이런 기습적인 침략에 철저히 대비하지 못한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조선왕조(朝鮮王朝) 역대 국왕들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이 영조(英祖)였는데 52년동안 재위(在位)하였으며, 향년(享年) 83세를 일기(一期)로 승하(昇遐)했다. 인열왕후(仁烈王后)가 42세라는 젊은 연령(年齡)에 승하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정조(正祖)가 동궁(東宮) 시절 여러차례에 걸친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영조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에 결국 왕위를 계승하였듯이 인열왕후가 좀더 오래 살았다면 소현세자(昭顯世子)와 강빈(姜嬪)에게 큰 버팀목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한편 인열왕후가 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