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조선후기(朝鮮後期) 실학(實學)을 집대성(集大成)한 사암(俟菴)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비롯하여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3대 저서를 포함해 5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著書)를 후세(後世)에 남겼다.여기서 정약용의 호(號) 사암과 관련해 언급하고 싶은 점이 있는데 그의 호는 널리 알려져 있는 다산(茶山) 이외에 삼미자(三眉子), 자하도인(紫霞道人), 태수(苔叟), 문암일인(門巖逸人), 탁옹(籜翁), 열초(洌樵), 균암(筠菴) 등이 있었으며 당호(堂號)는 여유당(與猶堂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자수점필(智水掂筆)’의 저자(著者) 홍한주(洪翰周)의 생존연대(生存年代)는 1798(정조 22)~1868(고종 5)년으로서 5대조부를 비롯해 윤치정(尹致定), 조병구(趙秉龜)와 동시대 인물(同時代人物)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자(字)는 헌경(憲卿)이며, 호(號)는 해옹(海翁)을 비롯해 해사(海士), 지수(智水), 쌍송만사(雙松漫士), 총계당(叢桂堂) 등이 있다.홍한주는 시문(詩文)에 뛰어났으며, 의빈부 도사(儀賓府都事)를 시작으로 의성 현감(義城縣監),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 이천 부사(利川府使), 상
천지일보가 독자참여코너로 가로세로 낱말 퀴즈를 연재합니다. 낱말 퀴즈는 가로세로 낱말퍼즐 저자로 잘 알려진 김수웅 선생이 직접 출제한 퀴즈가 격주로 게재됩니다. 퀴즈에 응모하는 독자 중 5분을 추첨해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증정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가로열쇠1. 어머니는 고운 한복에 흰 □□□을 신고 동네 나들이를 가셨다3. 타향살이, 짝사랑을 부른 가수이며 황금심의 남편5. 일 년 중 논보리나 벼 등의 곡식의 씨를 뿌리기에 가장 알맞다는 날7. 환경이 오염돼 사람과 생물에 해를 끼치는 현상. 비닐□□8. 병을 잘 고쳐 이름
천지일보가 독자참여코너로 가로세로 낱말 퀴즈를 연재합니다. 낱말 퀴즈는 가로세로 낱말퍼즐 저자로 잘 알려진 김수웅 선생이 직접 출제한 퀴즈가 격주로 게재됩니다. 퀴즈에 응모하는 독자 중 5분을 추첨해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증정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가로열쇠1. 4월 1일은 만우절이자 제11회 □□□의 날3. ‘심은 나무 살리고 살린 나무 가꾸자.’ 4월 5일 □□□ 표어5. 임금 따위의 지불해야 할 것을 지급하지 않음. 업주가 임금을 □□하고 해외로 도피7. 두려워서 마음이 거북스럽다. 못난 자식을 둔 것이 못내 □□하옵니
빛의 바다(光海)장진홀로 외딴 섬바람처럼 많이 일어나는 외로움을 삭히고 화를 달래면서성산 쪽을 바라보며무얼 생각 하였을까어떻게 하루를 지냈을까강화에서 예까지 배멀미 참아가며 힘들어 했을 그를 파도에 흔들리는 선상에서무슨 속내를 가졌을까불볕으로 타들어가는 민초유배지 한이런가추적추적 내리는 비궁벽하고 척박한 이곳 사람들과 동병상련마음이었을 게다둘러 처진 울안에서 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하리배반의 시대러니, 자업자득이러니하면서 손을 잡고한 많은 서러움을 풀어보자고 말하고 싶으나어찌 쉽게 풀어지리꼬인 삶을 기억하면서밤새 토로 하고 싶다제주에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이원익(李元翼)이 홍천으로 유배(流配)온 이후 큰 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이를 신기하게 생각하여 이 곳에서는 이러한 비를 상공우(相公雨)라고 불렀다고 한다.한편 이원익이 유배를 떠난 지 3년 후가 되는 1618(광해 10)년 인목대비(仁穆大妃)는 마침내 폐위(廢位)되고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어 서궁(西宮)에 정명공주(貞明公主)와 함께 유폐(幽閉)되는 사건이 일어나며 결국 이 사건은 광해군(光海君)이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의해 폐위되는 중요한 명분을 주었다.1619(광해 11)년 2월 이원익은 마침내 유배지(流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구례 화엄사 홍매는 입춘 때 장관을 이룬다. 올해는 강추위가 계속돼 아직 소식이 없다. 그러나 날씨가 따뜻한 제주 한림공원에는 홍매가 요염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으며, 다음 주에 홍매축제가 열린다고 한다.매화는 군자의 절의를 상징하는 꽃이다. 변하지 않는 선비나 여인의 절개를 얘기할 때 비유하기도 한다. 신흠(桑村 申欽)은 인조 때 영상을 지낸 훌륭한 인물이다. 매화의 고절한 정신을 이렇게 노래했다.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곡조를 간직하고(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늘 춥게 살지만 향기를 팔지 않네(梅一生寒不賣香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왕수인(1472~1528)은 주희 이후 최대학파인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이자, 뛰어난 군사전략가였다. 절강성 여요(餘姚) 출신으로 호를 양명이라 했다. 아버지 왕화(王華)는 전시 1등급제자로 남경 이부상서를 역임했다. 21세에 상경해 주희의 격물치지를 공부했다. 왕수인은 대나무를 잘라서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이치를 알 수 없었다. 대나무 관찰이 ‘격물’이다.실망한 그는 문장을 공부했지만, 여전히 도를 깨우치지 못했다. 다시 도전한 주희의 학문은 의문투성이였다. 좌절한 그는 입산까지 결심했다. 그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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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1898년 9월 11일, ‘김홍륙 독다사건(金鴻陸 毒茶事件)’이 터졌다. 고종 독살 미수사건이었다. 고종과 황태자(후에 순종)는 저녁 식사를 양식으로 먹은 뒤 커피를 마셨다. 1896년 아관파천 시절부터 커피를 좋아한 고종은 커피 냄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한 모금 입에 넣자마자 뱉었다.그런데 황태자는 그냥 몇 모금을 마셨다. 조금 있다가 황태자가 토하고 쓰러졌다. 궁중은 아수라장이 됐다.9월 12일에 고종은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경무청에 지시했다.9월 14일에 법부대신 신기선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증선(曾銑 1509~1548)은 절강성 출신으로 자가 자중(子重)이다. 12세에 이미 입을 열면 훌륭한 문장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재능이 있었으나 그의 진짜 능력은 장군으로 발휘됐다. 장사꾼인 부친을 따라 강도(江都-양주)에 왔다가 후원자를 만나 정착했다. 곡부 공자사당의 전청에 걸린 편액 ‘태화원기(太和元氣)’는 산동순무를 역임한 증선의 필적이다. 산서순무로 이동한 그가 강력한 몽고기병대를 이끌고 침략한 타타르부 알탄을 잘 막아내자 가정25년(1546)에 병부시랑겸총독섬서삼변군무로 임명했다. 알탄은 황하의 만
수암 김동영천만리 머나만 길에 고은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 저 물도 내 맘 같아야 울어 밤길 애달프다.이 시조는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세조의 명을 받고 ‘단종’을 강원도 영월 유배지 청룡포에 호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허탈한 그의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청령포를 굽어보는 서강(西江) 강변 언덕에 앉아 그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연군(戀君)의 단장곡(斷腸曲)이다.그는 참혹한 권력의 희생양이 되신 ‘단종’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과 서러움을 절절이 표현하면서, 동시에 부도덕화한 정치권력으로부터 어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1800년(정조 24) 6월 28일 승하한 정조는 그해 11월 6일 사도세자의 묘소인 수원의 현륭원(顯隆園) 국내 강무당(講武堂) 옛터에 건릉(健陵)이라는 능호(陵號)로 안장됐다.정조에 이어 왕위를 계승한 순조는 즉위 당시 11세에 불과했기에 영조의 계비이자 증조할머니뻘이 되는 정순왕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였다.해가 바뀌어 1801년(순조 1) 1월 10일 순조를 대신해 정순왕후가 역적죄로 천주교 신자들을 죽이라는 법령을 반포하면서 탄압의 신호탄이 시작됐다.철저한 천주교 신자인 정약종(丁若鍾)이 천주교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성당시기 재상을 역임한 최현휘(崔玄暉)는 하북성 안평 출신으로 원명은 필(畢), 자는 행(行)이다. 박릉최씨로 무측천 시대의 명재상 적인걸에게 발탁돼 요직을 거친 후 재상이 됐다. 숙부인 비서감 최행공은 어려서부터 공부에 매진하는 그를 보고 훗날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 용삭2년(662), 명경과에 합격해 40년 후인 장안원년(701)에 천관시랑으로 승진했다. 아들이 관리가 되자 그의 모친 노씨가 훈계했다.“제부 신현이 이런 말을 하더구나, ‘아들이 관리가 되자 사람들이 이제 가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을 중국철학사에서 중요한 양명학의 창시자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가 뛰어난 군사전략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절강성 여요(餘姚) 출신으로 자를 백안(伯安), 호를 양명(陽明)이라 했던 그는 주희(朱熹) 이후에 최대의 학파를 창시했다. 서당에서 공부할 때 왕수인은 선생에게 무엇을 최고로 여기느냐고 물었다. 선생이 과거에 합격해 입신양명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자, 왕수인은 성현이 되는 것이 최고라고 말했다. 그만큼 왕수인은 비범했다. 21세에 상경해 주희의 격물치지(格
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청소년 인성교육 부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밥상머리 교육’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밥상머리 교육은 말 그대로 밥상머리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식사시간이면 가족들이 밥상을 중심으로 둘러 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한 상에 앉고 나머지 가족이 또 다른 밥상에서 오순도순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했다. 어른들이 수저를 들기 전에 먼저 밥을 먹지 말 것이며, 맛있는 반찬은 어른들께 양보하고, 어른보다 먼저 일어나지 말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유교사회에서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여 병을 얻는 것을 상효(傷孝)라 했다. 중종 다음 즉위한 인종(仁宗)은 지독한 효자였다. 그런데 중종이 별세하자 20여일간이나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해 재위 8개월 만에 그만 승하하고 말았다.중종실록을 보면 지독한 효자 얘기가 또 하나 기록돼 있다. 충북 영동에 사는 한 효자는 아버지가 임질에 걸려 거의 죽게 되자 입으로 빨아 병을 고치게 했다. 임금이 이 같은 사실을 듣고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치하하며 큰 상을 내렸다.조선 역대 임금 가운데 제일 효자는 아마 정조일 게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가르치는 자는 많으나 참 스승이 없다’는 말은 멀리 공자 시대에도 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스승다운 스승을 찾을 수 없다는 한탄이 등장하는 것일까. 스승도 인간이라 도리(道理)보다는 권력이나 물욕을 뿌리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유교사회에서 제자에게 감명을 준 스승은 산속에 살았다. 한양 근교로 낙향했다가 관직을 제수하면 서둘러 떠나는 학자들은 존경 받지 못했다. 그러니까 학문이 깊은 학자일지라도 벼슬지향적이면 올바른 스승의 반열에 오르기 어려웠다.조선 명종대 속리산에 은거한 대곡(大谷) 성운(成運)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삼국유사에 나오는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태자의 설화는 ‘청련화(靑蓮花)’와 관계가 있다. 청련화는 청정을 상징하는 푸른 색깔의 연꽃이나 석가모니 설화에는 여인의 이름이다. 그래서 여러 보살들이 손에 잡는 아름다운 꽃으로 표현된다.두 태자는 왕위보다는 유람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오대산에 와서는 갑자기 산 속에 숨어 시위하던 군사들도 간 곳을 알지 못했다. 보천, 효명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삼국유사에는 이들이 오대산에서 ‘청련화’를 발견했다고 했다.보천은 청련화가 있는 곳에 암자를 세웠는데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봉건시대 제왕들에게도 비선(秘線)이 있었다. 그런데 올바른 비선은 임금을 훌륭하게 만들었지만 그릇된 비선은 제왕을 궁지로 몰아넣고 비극을 야기시키기도 했다.학승으로 범어(梵語)에 능통했던 신미대사는 현군 세종의 특별한 비선이었다. 신미대사를 궁중으로 초치하고 싶어도 신하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쉽지가 않았다. 세종은 피부병을 치료한다는 구실로 청주 초수(지금의 초정)로 행행할 것을 명한다.세종은 초정에 행궁을 마련하고 60일간을 머물렀다. 억불숭유로 세종을 만나기도 어려웠던 신미대사는 세종과 두 달간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