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필자에겐 우리나라 가요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는 노래가 ‘목포의 눈물’이다. 일제 강점기 1935년 10대 후반의 가수 이난영은 이 가요를 불러 일약 스타가 되었다. 9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흘러간 가요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려준다.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1990년대 광주 출신 친구들은 술을 한잔하면 이 노래를 불렀다. 광주의 아픈 역사를 겪은 이들에겐 큰 위안이 되었던 모양이다.노래 속에 나오는 영산강, 노적봉 그리고 유달산은 호남 출신이 아니라도 정겨운 이름이다.영산강은 전남 담양군 월산면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고경명, 마상격문을 쓰다.6월 22일에 고경명 의병은 전주에서 북으로 전진했다. 6월 24일에 고경명은 말을 타고 가면서 격문을 썼다. 소위 마상격문(馬上檄文)이다.“옷소매를 떨치고 단상에 올라 눈물을 뿌리고 군중과 맹세하니, 곰을 잡고 범을 넘어뜨릴 장사는 천둥 울리듯 바람 치듯 달려오고, 수레를 뛰어오르고 관문을 넘어가는 무리는 구름 모이듯 비 쏟듯 한다”는 내용의 격문은 선비들의 심금을 울렸다.6월 27일에 의병은 충청도 은진까지 진군했다. 이때 황간·영동의 왜적들이 금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정약용(丁若鏞)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중이던 1814년(순조 14) 약암(約菴) 이재의(李在毅)의 아들 이종영(李鍾英)이 영암군수로 재임 중에 있었는데 약암이 사암(俟菴)이 강진에서 유배중인 사실을 알게 되어 다산(茶山)으로 직접 찾아가서 만났다는 것이니 그 열정이 대단했다고 생각된다.여기서 약암의 가문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본관은 전주(全州)로서 증조부 이주국(李柱國)은 정조의 신임을 받아 어영대장을 비롯하여 훈련대장, 좌우 포도대장, 형조판서를 역임했으며, 약암도 진사시(進士試)까지는 합격했으나 대과는 응시하
유행만 돌고 도는 게 아닌가 보다. 우리나라에선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호흡기질환 백일해가 다시 유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유아들만 걸리는 줄 알았던 백일해가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집단 발병되면서 전국적으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25일 전남 영암군의 중고교생들이 백일해에 집단으로 감염된 것으로 조사돼 인근 학교들의 추가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전후로 영암의 한 고등학교 전교생 279명 가운데 211명이 기침과 인후통 등의 증세를 보였다. 질병관리본부가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