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직급을 조선시대에는 감사(監司)라고 했다. 순상(巡相) 혹은 합하(閤下), 또는 도백(道伯)이라고 불렸다. 감사는 임금을 대신해 지방 장관으로서 군사와 행정을 지휘 통제했으므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다산 정약용이 쓴 글에 당시 감사들의 행차를 기록한 내용이 있다.“…(전략)… 감사는 쌍마가 끄는 교자(轎子)를 타고 옥로(玉鷺)가 달린 모자를 쓴다. 부(府) 2명, 사(史) 2명, 서(胥) 6명, 도(徒) 수십명, 하인과 심부름꾼과 졸복의 무리가 수십 수백 명이다. …기마(騎馬)가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조선 영조 때 박문수는 왕명을 받고 여러 차례 어사로 출사해 탐관오리를 잡아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양반 사대부 기득권층의 횡포와 수탈이 극심해 백성들은 살기가 힘들었다.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았고,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신분제도가 정착하면서 기득권층들은 의무에서 면제되고 그 짐은 힘없는 백성들이 다 짊어져야 했다. 국방의 의무는 백성들 몫이었다. 열여섯 이상 예순 노인까지 남자들은 군역(軍役)으로 일 년에 두 필씩의 무명을 내야 했는데, 이것을 군포(軍布)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