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프라하의 봄’은 3가지 스펙트럼이다. 첫째는 1968년에 일어난 자유·민주화 운동, 둘째는 영화 ‘프라하의 봄’, 셋째는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이다.1968년 8월 21일 소련의 탱크를 앞세운 바르샤바조약 군대가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을 점령했다. 이에 항의해 1969년 1월 19일 대학생 얀 팔라흐가, 2월 25일에 얀 자이츠가 분신자살했다.체코슬로바키아는 노보트니가 1953년부터 14년간 공산 독재를 했다. 그런데 1968년 1월에 두브체크가 당 제1서기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두브체
11월 9일(土)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역사적인 날이며, 이 사건이 갖는 의미가 우리에게 남다르게 와닿는 것은 왜일까.오늘이 또 다른 하나의 의미를 갖는 것은 힘들게 쟁취한 문재인 정권이 출범, 그 릴레이를 시작해 이제 반환점에 도달한 날이라는 것이다. 마라톤의 이치가 그러하듯, 이제 그 힘과 동력은 소진되고 끝까지 어떻게 힘을 배분해 꼴인 지점을 무사히 통과하느냐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따라서 긍정과 부정의 입장표명이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이제 뛰어온 코스를 한번 복기해 볼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과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1989년 8월 23일 오후 7시,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국민 200만명은 세 나라를 잇는 주요 간선도로 620㎞를 인간 띠로 잇고 “자유를 달라”고 15분간 외쳤다.이 날은 1939년 8월 23일 ‘독일과 소련불가침 조약’ 체결 50주년이었다.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북·동유럽을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 의정서를 별도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소련이 폴란드 동부, 핀란드, 발트 3국을 점령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소련은 1940년 6월에 발트3국을 점령했다.한편 1988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는 창립 25주년을 맞이해 ‘부패와 민주주의’를 분석했다. 결론은 ‘부패는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교란시킨다’이다. 부패가 심한 국가일수록 민주주의 제도와 정치적 권리가 취약하다는 점이다.“부패와 민주주의는 악순환 관계이다. 부패는 민주주의 제도를 약화시키고, 허약한 민주주의는 부패를 통제하기에 역부족이다.” - 패트리샤 모레라, 국제투명성기구 관리이사 국제투명성기구가 창립된 1993년은 민주화의 물결이 한창인 때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 소련 해체로 공산주의 국가(특히 동유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4월 21일 아침에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구경에 나섰다. 볼쇼이 극장 맞은편에 버스가 멈췄다. 이곳에 카를 마르크스(1818~1883) 동상이 있다. 세기의 변혁자 마르크스! 프로이센(독일) 태생,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후 추방당해 영국에 거주, 가난에 시달리면서 두 아이를 잃고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의 지원을 받으면서 대영도서관에 출근해 ‘자본론’을 집필하고 런던에서 별세. 특히 ‘공산당 선언’은 압권이다. 1848년 2월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런던에서 ‘공산주의자동맹’의
대한민국은 지금 다시 나기 위해 처절하리만큼 몸부림치고 있다. 잉태한 여자가 아이를 낳기 직전 몸부림치는 해산의 고통과도 같다할 것이다. 다르게는 ‘호사다마’라 하던가. 분명 낡아지고 쇠하여지고 없어져야 할 구시대는 끝이 나고 희망의 새 시대가 잉태한 여자에게서 큰 울음소리와 함께 태어나는 형국이다. 숱한 세월이 병신(丙申)년에 와서 막을 내리고 정유(丁酉)년을 기점으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새 시대의 새벽을 알리고자 하는 걸까.아마 단일 사건을 통해 이렇게 많은 필진들의 논평이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어
지금 한반도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해 뜨겁다. 약 100년 전 구한말 열강들에 의한 팽창주의의 독무대가 됐던 한반도를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정부의 갑작스런 사드배치 결정으로 인해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 사이에서 사드는 하나의 뇌관이 돼 있다. 정치와 외교, 군사, 경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한반도는 방향을 잃고 격랑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박근혜 대통령은 사드배치와 관련해 11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저는 대통령으로서 우리 국민과 국가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며
김우상 연세대학교·연변대학교 교수 최근 5년간 해외 무상원조는 3조 4000억여원에 이른 데 반해, 북한 주민을 돕는 데에는 556억여원(해외원조 대비 1.68%)을 지출했다는 아이러니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이명박 정부 이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일련의 도발로 인해 남북교류는 갈수록 축소되고, 인도적 지원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이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있다는 점에는 이설이 없겠지만, 통일미래세대인 남북청소년들의 평균 신장이 10㎝ 이상 차이가 나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
광복 70주년이다. 해방 직후 6.25전쟁으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 오가지도 못하게 된 한반도는 아직 진정한 광복을 맞지 못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 최근 광복 70주년을 조롱한 북의 도발과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연이은 망명은 북한 정권의 와해가 얼마 남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가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독일은 통일 25주년을 맞는다.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의 통일은 1989년 가을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교회(St. Nikolaikirche Leipzig)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우리가 그 인민이다(Wi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이달 초, 1970~80년대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물론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운동권노래(데모곡)’로 많이 불렸던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널리 유행하게 했던 미국의 백인 포크송 가수이자 사회운동가 구이 카라완이 8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달랑 통기타 하나를 들고 흑인인권운동의 기수로서 미국 전역을 돌며 인종차별이 없고 정의가 바로 선 사회를 꿈꾸며 이 노래를 불렀다. ‘우리 승리하리라’는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저항의 상징노래로 사랑을 받았다. 독재와 인권탄압에 억
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오늘 최룡해 북한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오른다. 어느새 그는 ‘특사 3관왕’이 되어 버렸다.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그가 휴대한 ‘친서’ 내용이 무척 궁금하다. 기름진 만주벌판과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외면하고 머나먼 모스크바로 가 북-러 정상회담이라도 하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애원이 담겨 있을 것이란 추측만 엿보인다. 일본에 다가가려던 ‘제3의 길’은 너무 빨리 수정된 데서 북한 외교의 냄비근성을 읽을 수 있다. 일찍이 맹자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理 地理不
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통일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북한은 허장성세하지만 확산일로의 장마당 경제는 김정은 3대 세습의 봉건체제 기반을 거의 잠식해 가고 있다. 주민들 스스로 살아가는 북한의 장마당은 북한 경제의 98%를 점유하고 있다니 대관절 평양정권은 그 존재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9일은 독일 분단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1989년 1월 에리히 호네커 동독 서기장이 50년 내지 100년은 더 존재할 것이라고 장담했던 베를린 장벽은 10개월 뒤에 무너졌다. 그로부터 독일은
최상현 주필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의 깊은 인간적인 내면은 솔직히 잘 모른다. 그렇지만 겉으로만 볼 때는 차갑고 날카로우며 힘에 넘치고 강인해 보인다. 점성학에서 말하는 황도대(Zodiac)의 12궁 동물들 중에서 푸틴을 찾는다면 그는 사자가 딱 맞다. 일국(一國)의 지도자가 되는 사람은 누구나 국민을 향해 자신이 최고의 ‘애국자’이며 ‘국리민복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가면서 국가를 통치한다. 통치 명분의 창조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자칫 실수하기 쉽지만 푸틴이 그런 점에서는
한병권 논설위원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해안포 수백 발을 쏜 지난달 31일. 이날은 북한의 핵·경제병진노선 발표 후 1년째 되는 날이었다. 북한의 무력시위에 어떤 의미가 내포돼 있는가가 언론의 관심사가 됐다. 일단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북핵논란’에 대한 북한의 답변이다. 4차 핵실험 강행 명분쌓기, 남북관계서의 주도권 잡기 등을 겨냥한 포석으로도 평가된다. 그러나 역지사지(易地思之)해 한 걸음 물러서서 냉철하게 북한 입장을 추리해보자. 국방부를 출입하며 군관련 기사를 취재했던 필자의 과거 경험으로 판단해본다
최상현 주필 기억은 순수할 때 경험한 일에 대한 것일수록 오래간다. 흔히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어제 그제의 일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어렸을 적 기억은 잊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틀린 얘기가 아니며 거기엔 이유가 있다. 어렸을 때는 사람의 마음이 백지 상태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에 각인된 기억은 뚜렷하며 오래갈 수밖에 없다. 이미 마음이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진데다 황망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나이에는 알츠하이머(Altzheimer's disease)가 아닌가를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가까운 날
최근 회자되고 있는 최고의 화두가 뭔가 했더니 ‘평화’란다. 이는 인류의 근본된 정신이자 이념이며,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종교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촌 그 어디를 둘러 봐도 평화는 찾아 볼 수 없다. 평화 대신 다툼과 분쟁 그리고 전쟁만이 난무한 현실이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평화’, 이 평화는 언급했듯이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면서, 우리 내면의 생각과 의식과 정신세계를 이끄는 종교의 최고의 가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인류 최고의 가치인 평화 대신 다툼과 분쟁과 전쟁의 근본과 그 중심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아니 정확히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에선 3발의 총성이 들렸다. 이 총성은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향한 안중근 의사의 의분이자 민족의 의분이었다. 이어 그는 뤼순 감옥에서 동양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 31세의 짧은 생애지만 불꽃같은 삶을 통해 민족과 동양 3국과 인류에 영원히 기억되는 생각과 사상을 남겼다.우리는 103년 전 10월 26일, 그 날을 회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통일 독일, 우연이 아닌 그들만의 의식과 가치관이 오늘의 독일을 만들었다. 1939년 히틀러는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휘몰아 가면서, 무려 600만 명이라는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등 연합국에 의해 패전국이 되고 만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소련의 세력이 동유럽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았고, 중국은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는 계기가 마련됐으며, 결국 세계의 지배력이 서유럽국
최상현 주필 한 나라의 살림살이가 결딴나는 것은 개인의 살림살이가 결딴나는 것만큼이나 아차 하는 순간의 일이다.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풍광과 수산자원, 온난한 기후로 풍요로움을 구가하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금융 위기로 휘청거린다. 경제적으로 한 가족이면서 이들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유로존(Eurozone)의 여러 나라들도 이들의 어려운 처지에 선뜻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한국이 이미 겪은 1997년의 금융 위기를 돌이켜 보면 그 경험은 잊혀가고는 있지만 이들의 처지를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는 더 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참 많이 부르고 들어 보던 구호다. 언제나 부를 때면 우리의 심장을 두들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통일에 대한 그리움과 소망이 우리의 목적이었고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는 소망도 목적도 아닌 하나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물론 통일에 대한 그리움과 소망이 희석된 데는 동족상잔(同族相殘)으로 인한 적대의식, 또 하세월과 함께 ‘통일’이란 현실을 악용하려는 일부세력으로 인한 의미 축소와 당위성 변질, 그리고 변하지 않는 북한 정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