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순수한 우리 말 흰무리를 ‘설기’라고 하는데, ‘설지’는 ‘셜교(설고, 雪餻)’에서 왔다. ‘셜교’는 ‘눈처럼 흰 떡’이란 뜻에서 그러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그러나 ‘흰무리’와 ‘백설기’는 약간 구별이 된다. ‘백설기’가 켜를 잡아 안치는 떡이라고 한다면 ‘흰무리’는 켜가 없게 안쳐서 쪄낸 시루떡이다. 효소왕대 죽지랑조에 설병(舌餠)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음이 설고와 비슷한 점을 들어 이 설병을 백설기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백설기에 관한 중국 기록은 남송 말기의 에 설고라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여름철 땀을 많이 흘리다 보면, 덩달아 입맛도 잃기 쉽다. 이럴 때 식은 밥이나 막 뜸을 들인 더운밥을 떠서 물오른 싱그런 상추 위에 한 숟가락 올리고 그 위에 ‘강달이젓’을 얹어 입 안에 밀어 넣고 우적우적 씹어보자. 잃었던 입맛이 거짓말처럼 살아나며 기운이 불끈 솟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강달이(江達-)’는 충청남도 아산만의 특산물이었다. 의 149권 ‘충청도 청주목 아산현(牙山縣)’에 토산물로 “주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농어 목, 동사리 과의 ‘동사리’는 산란기에 ‘구구’하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구구리’라 또는 ‘꾸구리’라고 하는데, 이 물고기는 이름 외다 숨넘어갈 판이다.개뚝지, 개미고기, 구구라기, 구구라지, 구구락지, 구구리, 구굴무치, 구굴치, 구그리, 구꾸라지, 구꾸리, 국지, 굼문탱이, 굼붕탱이, 꺽정이, 꺽징이, 꾸거리, 꾸구락지, 꾸구리, 꾸글이, 꾸꾸락지, 꾸꾸리, 꾸부리, 꾹굴이, 꾹저구, 농꼬, 도둑놈, 도뿍지, 두구리, 두굴무치, 두꾸리, 똥꼬, 뚜거리, 뚜구라지, 뚜구리, 뚜굴마지, 뚜굴모지, 뚜그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자기들끼리 뭔가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듯 돌 밑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물고기가 있다. 그런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빽빽할 밀(密)’를 쓴 밀어(密魚)라는 이름을 가진 망둑엇과의 작은 민물고기다.일설에 ‘밀의 이삭에 밀알이 빽빽하게 붙은 것처럼 몸이 작은 밀어 떼가 빽빽이 떼 지어 이동하는 까닭에 붙은 이름이다’라고 하기도 한다.밀어는 ‘퉁거니’라고 하기도 하고, 빠꼬맹이, 빠꼬마지, 빠꾸마리, 빠꼬마리라고 한다. 이밖에 빠고무치, 바꾸마치, 빠꼬무지, 빠구마치, 빠꽁마지, 바구마치, 빠고마치, 빵구미치,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경남 진주에 가면 ‘갱식(羹食, 갱시기)’이 있고, 거제 일운면에 가면 ‘숭어국찜’이 있으며 경북 울진에 가면 ‘꾹죽’이 있다. ‘꾹죽’은 ‘국죽’의 된 발음이다. 갱식이나 국찜, 국죽은 보통명사가 합쳐져 합성어가 돼 지역 방언으로 굳어진 음식들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이러한 것들은 모두 쌀 한 톨이 귀했던 보릿고개 시절 배고픔에 허기를 면케 해줬던 애환이 깃든 음식이다. 동해안의 다양한 국죽은 보릿고개 시절 목숨을 부지하게 해 주던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생명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1950~1960년대를 살아온 필자는 요즘도 쌀이 조금 섞인 보리밥에 노란 황금빛 고구마가 들어간 어릴 적 ‘고구마밥’이 생각난다.보릿고개 꽁보리밥조차 먹기 힘들었던 시절 다행히 어머님이 하숙집을 운영하셨던 탓에 밥사발에 그나마 하얀 쌀이 섞였던 것 같다.아버지는 토광에 고구마를 쌓아 놓으시고 매일 가마솥에 사발을 엎어 놓고 고구마를 넣고 물을 조금 부은 후에 할머니 방 아랫목이 따스해질 때까지 군불을 때신다.이렇게 익은 고구마는 하숙생은 물론 우리 가족들의 겨울 밤참이었다.고구마와 부엌 헛간에 묻어둔 항아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무는 명대(明代)의 뛰어난 의약학자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昔人以蕪菁(석인이무청), 萊挘二物混注(내열이물혼주)라고 나오는데, 옛사람들이 무청(蕪菁)과 내열(萊挘)을 혼동해 쓴 것으로 보아 무청을 줄여서 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옛말로 ‘무수’ ‘무ᅀᅮ’였는데, 이것이 무우로 변했고, 그 준말로 무가 표준어가 됐다. 한문으로는 나복(蘿蔔), 내복(萊挘), 蘆蔔(노복) 등이며, 무의 씨는 나복자(蘿蔔子)라고 한다. 나박김치의 나박은 나복에서 온 말이다. 순무는 만청(蔓菁
장순휘 정치학박사/ 한국문화안보연구원 부원장지난 11일 ‘굿모닝충청’에서 특별기획으로 김태흠 충남도지사를 취재했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 기획 타이틀을 “육사 이전 천천히 추진할 생각 없다”로 걸고 부제(副題)로 “대통령 적극지지… 이종섭 국방장관 만날 것”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미 이 문제는 지난해 11월 15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육사충남이전 유치를 위한 국회정책토론회’의 무산(霧散)으로 민심(民心)의 진실과 육사총동창회의 충정(忠情)이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종결됐는데 다시 시비를 하는 것이 불편한 상황전개이다.특히 지방언론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원래 학명이 가막조개인 참재첩(眞蜆, Corbicula leana)은 대한민국에서 애기재첩, 재치 등으로 불리고 일본에서는 마시지미(真蜆, mashijimi マシジミ)라고 부른다.‘까만 조개’란 뜻의 가막조개, 가무락조개로 16세기 문헌에서는 ‘가막죠개’로 나오는데 ‘가막죠개’는 ‘가막’과 ‘죠개’가 결합한 것이다. 19세기에 치음이었던 ‘ㅈ’이 구개음으로 바뀌어 ‘죠’와 ‘조’의 발음이 구별되지 않게 되면서 ‘죠’가 ‘조’로 나타나면서 ‘가막조개’가 표준어가 된 것이다.조선 후기의 학자 이철환과 그의 아들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우리가 흔히 먹는 채소 중에 정(情)을 오래 유지 시켜 주는 정구지(精久持)가 있다.동의보감(東醫寶鑑)에 “오줌에 정액이 섞여 나오는 증상(유정)이 나타날 경우 부추씨를 살짝 볶아 먹으면 치료에 도움이 되며, 허리와 무릎의 기운을 따스히 하고 양기를 강화시켜 준다”라고 적혀 있다. 부추 자체에 대해서는 “온기가 가장 강한 식물이라 상시 먹는 게 좋은 음식”이라고 했다.중국에서는 양기를 돋우는 풀이라 해서 ‘기양초(起陽草)’ ‘장양초(壯陽草)’ ‘파옥초(破屋草)로 불렀으며 실제로는 황화알릴이라는 정력증진과 비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세종(世宗)이 재위(在位)하는 동안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創製)된 과정을 소개한다. 거슬러 올라가서 세종이 한글을 만들기 전까지 우리나라에 우리말은 있었으나 고유의 우리 글자는 없었다. 구체적으로 신라 시대에 이두(吏讀)가 사용되었는데 이두는 설총(薛聰)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문(漢文)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관리들에 의해 법률 및 행정문장 기록에 사용되었다. 한편 일찍이 한자(漢字)를 도입하여 쓰기 시작한 삼국 시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배도(裵度, 765~839)는 당덕종 이적(李適)의 시기에 관직에 진출했다. 평생 이당왕조의 중흥을 위해 권간, 환관, 할거세력과 투쟁해 원화중흥을 이룩했다. 문학에도 성취한 그는 기격(氣格)의 고하, 사고의 심천(深淺)을 중시해 장구를 다듬고 성운에 천착하지 않았다. 한유(韓愈)의 재능을 중시했지만, 문장을 희롱하면서 풍자성 잡문을 짓는 것은 찬성하지 않았다. 만년에 동도유수로 있을 때 녹야당(綠野堂)을 짓고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 등 명사들과 어울리며 낙양문단의 중심인물이 됐다. 배도는 어려서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 나물은 중세국어에서 본디 식용식물이란 뜻이었으나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이라는 2차 뜻이 추가됐다. 우리 말 ‘나물’ 관련 흔적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말 작성돼 조선 초기 사역원에서 간행한 ‘노걸대(老乞大)’에 나온다. 한국의 나물에 대한 외국 기록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장이던 니콜라스 위트센(N. Witsen)이 1705년 출간한 ‘북쪽과 동쪽의 오랑캐들(Noord en Oost Tartarye)’을 꼽을 수 있다. 이는 1653년(효종 4) 제주도에 표착해서 1666년(현종 7)까지 하멜과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게장(蟹醢)을 ‘게젓’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초기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쓴 ‘사가집(四佳集)’ 제50권 시류(詩類) 촌주 팔영(村廚八詠)과 조선 후기 문신 한필교(韓弼敎, 1807~1878)의 ‘수사록(隨槎錄)’에 ‘게젓’이 해염(蟹鹽)이라고 나온다. 조선 후기 문신 서영보(徐榮輔, 1759~1816) 등이 쓴 ‘만기요람(萬機要覽)’ 재용편에 ‘게젓’이 청해해(靑蟹醢) 또는 청해해(靑蟹鹽)으로 나오고,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이 실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을 부
전문가 “현지 확인 어려운 한국 언론, 서방매체 번역해 자극적 보도” “하이브리드 전쟁 시대… 특정 프레임에 갇혀 전쟁에 복무하는 꼴” 전문가, 독‧프‧러‧우크라 언론 교차검증 부족 지적… 균형 보도 필요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우크라 대반격…러군 밀어내고 격전지 수복 파죽지세(종합). 젤렌스키 ‘진격 계속된다'…서울 10배 면적 탈환 주장. 미 ‘러군, 하르키우 내주고 본국 철수’.” 지난 13일 국내 대표 통신사의 기사 제목이다. 이 매체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내 미디어들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반격 때문에 패퇴하고 있다고 보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국수는 우리 민족의 일생 의례 음식이다. 길게 이어진 가닥처럼 ‘수복(壽福)’과 ‘장수(長壽)’ 또는 ‘추모(追慕)’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즉 출생·생일·돌·회갑 등 출생 의례에는 ‘국수’의 긴 가닥은 수명이 길기를 기원하는 ‘장수’의 뜻을 가지고 있다. 옛날에 어린애를 낳은 지 3일이나 만 1개월이 되는 날, 만 1년이 되는 날에 탕병(湯餠)으로 축하연(祝賀宴)을 베풀었던 데서 온 말인데, 이로 인해 이 축하연을 탕병회(湯餠會)라 하고 이때 찾아오는 손님을 축하하러 온 이들을 탕병객(湯餠客)이라고 일컫기도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 멸치만큼 동 시대에 다양한 이름을 가진 물고기는 없을 것이다. ‘행어(行魚)’ ‘추자(鰍者)’ ‘추어(鯫魚)’ ‘이추(鮧鰌)’ ‘용어(沌魚)’ ‘징어(徵魚)’ ‘멸어(蔑魚)’ ‘며어(旀魚)’ ‘멸아(鱴兒)’ ‘몃’ 등이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의 함경도 예원군(預原郡)과 길주목의 토산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제주목 정의현(旌義縣)과 대정현(大靜縣)의 토산으로 실려 있는 행어(行魚)를 멸치로 보기도 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
오늘도 필자는 글을 쓴다. 흔히들 작금의 때를 말세(末世)라 한다. 이 말세의 뜻을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일까. 이 말세는 지구촌의 종말을 뜻하는 게 아니며, 인생의 생각이 허망해지고 완악해져 더 이상 인생으로 하여금 기대할 게 없는 지경에 놓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이 허망한 세상은 말세를 만나 끝이 나겠지만, 끝나가는 세상 즉,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은 내세(來世) 곧 희망의 새 시대를 잉태하고 있기에 인생은 가는 세상과 오는 세상을 분별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해도 틀리지 않다.조선 중기 격암 남사고 선생은 이를 일컬어 ‘송구영
좀도리 쌀박헌정좀도리 쌀이 있다.밥 지을 때 한 술씩 덜어놓는 쌀.퇴근길, 내 마음의 좀도리를 덜어놓는다.서러운 날 한 줌, 기쁜 날에도 한 줌아무 느낌 없는 날에도 스르르 한 줌그렇게 열심히 좀도리를 모았다.내 청춘 굽어지고,힘들고 힘들어 눈물 핑 돌 때까지,오늘, 바람 부는 유월의 퇴근길술 한 잔에 문득 생각이 났다.어머니가 새벽마다 갈무리 한 좀도리는,지금의 나를 키워준 좀도리는,그 꼬부라진 평생 동안 몇 줌이었을까.나는 오늘도 좀도리 쌀 한 줌을 벌었다. [시평]‘좀도리 쌀’은 ‘절미(節米)’, 곧 쌀을 아낀다는 뜻의 전라도
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지난 23일 중국관영 CCTV ‘신원리앤보’라는 매일 진행되는 정규뉴스에서 1950~2020이 쓰여진 배경을 삼아 연설하는 시진핑의 모습이 등장했다. 이 뉴스는 한국의 9시 뉴스 같은 것이다. 중국인들이 대부분 시청을 많이 하도록 매일 밤 중국시간 7시에 전국에 방송된다.각 지방 방송들도 그대로 받아 송출한다. 이 시간대에 TV를 보는 경우 다른 프로그램들은 많지 않기에 반 강제적으로 시청하게 된다. 시진핑을 중심으로 주석단에 7명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다 참석했다. 항미원조 70주년을 경축하는 연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