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중국 고대 동진시기 축영대 미인의 설화는 남장 여인의 비련을 담고 있다. 여자들은 공부를 깊게 할 수 없어 미인은 남장을 하고 서원에 입학해 양산백이라는 청년을 만난다. 양산백은 그녀가 여자인 줄 모르고 친숙한 벗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여자는 사랑의 감정이 생겨 자신의 여동생이 있는데 소개해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집안에서 혼사를 주관한 양산백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됐다. 그가 현령이 돼 임지로 가는 날 여자는 자결해 남자가 지나는 길에 무덤에 묻혔다. 광풍이 불어 양산백이 말에서 내려 잠시 쉬는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대우는 다시 한 번 자세히 관찰했다. 그는 하남의 동백산(桐柏山)을 파서 여러 갈래의 물길을 만들었다. 회수가 두 갈래로 나누어 흐르게 됐다. 하나는 사수(泗水), 다른 하나는 기수(沂水)로 모두 산동을 경유한다. 회수도 위세를 줄이고 순한 양으로 변했다. 장강은 화하문명 발상의 주류였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 늙은 용은 너무 거칠어서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대우는 직접 사천성 민산(岷山)으로 갔다. 강을 파서 흐름을 돌리자, 장강의 물은 둘로 갈라졌다. 하나는 지금의 성도(成都) 비강(郫江)으로 양주(梁州)로
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멀리서 보면 아주 괜찮아 보이나 가까이서 보면 별로인 사람을 일컬어 백 미터 미인이라고 한다. 주변 사람 중에, 특히 유명한 사람의 경우에 백 미터 미인이 많아 보인다.아주 오래전이긴 하지만 후배 가족과 자주 저녁을 먹곤 했다. 무척 인상이 좋아 보이고 화통해 보여서 우리 가족도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자주 모이게 됐다.계속 만남을 가지면서 몇 가지 불편한 것이 느껴졌고, 점점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지금은 거의 안 만나게 됐다.그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나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조선 시대 화가들은 여자들의 모습을 즐겨 그리지 않았다.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유일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소녀티를 갓 벗은 여인은 트레머리에 동그란 얼굴로 반달 같은 눈썹, 앵두 같은 입술을 가졌다. 옷고름을 만지작거리며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모습은 단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수에 차있다.근세에 와서 여권이 신장되자 궁정화가였던 이당 김은호 화백이나 그 제자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등 대가들이 미인도를 잘 그렸다. 보기 드문 절색의 여인을 그린 것이라서 미인도는 인기가 있었다. 한때는
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박 선생! 중국으로 여행 와서 띄우는 올해 첫 소식이네요. 어떻게 이 봄을 잘 보내시는지 멀리서나마 안부를 묻습니다. 국내에서는 소식을 못 드려도 일 년에 두세 번씩 갖는 자유여행을 빌미 삼아 이국땅의 노정(路程)에서 만나는 풍광들과 여정(旅情)을 이렇게나마 알리게 되니 딴에는 미안한감이 들기도 하지요. 이번에는 멀리 충칭(重庆)과 우한(武汉)에 와서 봄 풍경 속을 헤매고 있답니다. 본디 자유여행이라는 게 발품 팔아 고생하면서도 그에 맞는 보람을 맛보며 힘듦을 위로하는 것이니 여행하는 동안 곳곳에서 겪는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