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즉, 세상살이이란 뜻이다. 이 세상살이를 통해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하고 큰일을 치러야 하는 데 이를 유교에서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일컫는다.유교에서 말하는 인륜지대사는 흔히 말하는 관혼상제(冠婚喪祭)를 가리킨다.관혼상제는 남자가 성인이 되면 어른이 된다는 의미로 머리에 상투를 틀고 갓을 쓰며, 결혼을 하고, 장례를 치러야 하고, 제사를 지내야 하는 일들이다. 이를 다시 두 가지로 줄인다면 혼인과 장례로 나눌 수 있으며, 또 다시 하
최병용 칼럼니스트최근 중국에서나 봄 직한 지하철 내 민폐 행위 영상이 많이 알려져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 이젠 동방예의지국이란 단어를 쓰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다. 일명 ‘지하철 콧물녀’는 지하철 의자에 신발을 벗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손으로 코를 푼 뒤, 흥건한 콧물을 의자에 닦은 민폐 승객을 가리킨다.다른 승객이 “거기에 닦으면 다른 분에게 콧물이 묻지 않겠냐”고 제지해도 콧물을 닦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이 정도 행위를 할 정도면 정상인이 아니라 정신이 아픈 환자에 가깝다.도시락에 비닐장갑까지 들고 와 지하철에서 거의
흔히들 말한다. 역사는 밤에 일어난다고, 또는 산에서 시작해서 산에서 끝이 난다고 말이다. 이 같은 말이 괜히 있는 것일까. 주지해야 할 것은 구전돼 오던 모든 이야기는 아무 때에나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인들이나 각 종교의 경서나 인류 또는 민족마다 전해온 구전들은 한때를 만나고 당했을 때 그때 그 시대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해당된다는 점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를 보다 정확히 인식시켜 주는 경서의 한 구절이 있으니, 범사엔 목적이 있고, 기한이 있고, 목적을 이룰 때가 있다고 한 바로 그것이다.필자는 가끔 전국에
세상만사엔 이치라는 게 있다. 이 이치는 어쩌면 법 위에 있을지도 모르며, 이 같은 이치가 있기에 세상은 그래도 굴러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로 보건대 세상 법과 이치는 마치 율법과 자유율법의 관계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이 세상에서 이치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표현이 있다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일 것이다.세상 농사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콩 씨를 심었으면 어김없이 콩이 열리며, 팥 씨를 심었으면 팥이 열리는 게 당연하니, 이치란 어쩌면 당연한 것을 말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당연한 것을 당
필자는 기자(記者)다. 기자란 알 권리를 가진 독자(국민, 인류)에게 그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진 시대적 사명자다. 필자는 기자를 사명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 중에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일 뿐이다.필자가 알고 깨달은 진리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지금은 바야흐로 송구영신의 때라는 사실이다. 어찌 이같이 엄청난 진리를 이 못난 필자에게까지 알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필자는 지금 이 시대가 송구영신의 때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 한 가지다.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가고 오는 한 해를 넘어 옛(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북한 체제의 반통일 선언은 이미 오래전에 있었다. 무려 52년 전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선언은 평양 정권의 두 개 조선 전략 그 자체였다. 그때 김일성은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를 깨달았었다. 식량 자체 해결도 어렵고 계획경제로 나라를 운영하기도 어렵다는 걸 그는 사회주의 지도자 중 가장 먼저 깨우쳤다고 필자는 생각한다.그래서 그는 자신의 리더십에 한계를 느끼고 장남 김정일에게 정권을 이양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공산주의자였던 그가 제 정신을 차리고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대결에 승리할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전설에 따라 미케네 제국이 대군을 이끌고 트로이를 공격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큰 전쟁의 위험에 빠져들었을까? 전설에서는 헬렌을 되찾아 오고, 트로이를 정벌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한 이유가 중요하다.헬렌은 반드시 죽어야 할 공주가 아니다. 그녀는 알에서 태어난 제우스의 딸이므로 불멸의 여신이다. 또 제우스를 섬기는 디오스코우로스의 자매이기도 하다.고전 시대에도 이를 믿는 신앙이 스파르타와 로도스섬에 있었다. 이 신앙은 큰 전쟁이라는 무자비한 재난을 초래한 여인을
유교(儒敎)의 유(儒)자는 ‘선비 유’다. 혹자들은 유학자들이 글만 읽으면서 명분논리에 젖어 당파와 분파와 붕당을 일삼던 과거 조선시대의 정치꾼들이라고 자칫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그들의 실제 이름은 선비가 아닌 백면서생(白面書生)이며, 백면서생들로 인해 나라는 부패했고 결국 외세침탈의 빌미가 됐음은 역사가 증인이다.즉, 지도자 가운데는 백면서생이 있고 선비가 있다는 얘기다. 이 둘의 실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예가 필요해 보인다.조선시대 영남에는 두 명의 걸출한 유학자가 동시대를 살았으니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이 버전은 부르군디와 다른 북유럽 전설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되었다. 결론은 무엇인가? 트로이 신화에서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아내 크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목욕하다가 비누에 미끄러져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고, 그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전설에서 아띨라의 죽음도 아가멤논처럼 복수극으로 개편되었을 것이다.이제 다시 트로이로 돌아가 보자. 다른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 한 단순한 전설을 근거로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
1984년 3월 14일, 이날은 해가 360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대 갑자년으로 우주의 일주 해를 맞는 날이다. 따라서 세상은 알지 못해도 서기(西紀) 시대가 끝이 나고 신천기(新天紀) 시대가 도래했다.이는 예고 없이 온 게 아니며, 오랜 세월 성인들의 입과 글을 통해 전해왔고, 모든 경서가 이 한 가지를 알려왔다.그래도 이를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이유는 오직 자기 생각에만 골몰하고 염색돼서 자기의 꾀만 의지해왔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해서 올 것이 안 오는 것도 아니며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는 진리를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외교부 공식인가 사단법인 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ECI, 류영준 총재)는 일본 내 이방자 여사 관련 왕실인 이본궁기념재단, 덴리대학과 지난해 12월 27일 ECI갤러리에서 몽유도원도 국내 환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이본궁기념재단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황실가문으로 우리나라와는 인연이 깊다. 덴리대학(천리대학)은 몽유도원도 일체가 소장돼 있는 곳이다.ECI는 이본궁기념재단 중요문화재 증여에 관한 협정서(2022년 3월 14일)와 덴리대학 기부행위확약서(2021년 10월 20일)에 의해 지난 2022년 1
계묘년 토끼는 뛰다 발이 아파 좀 쉬었다 가려나 보다. 그 뒤를 갑진년 청룡이 요란한 굉음과 함께 힘찬 질주를 예고하고 나섰다.2023년과 2024년, 오늘 우리는 가고 오는 길목에 서 있다. 가는 것은 가야 하고 올 것은 와야 하니 만고불변의 이치로다.하지만 멈춰서야 하고 바통을 넘겨야 하는 지난해는 무슨 그리 억하심정(抑何心情)이 많던가. 우크라 지역엔 개전 후 최대 미사일 공방이 있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를 내야 했단 말인가. 중동(이스라엘-하마스)은 또 무슨 그리 억하심정이 크길래 서로 미사일 공방으로 무고한 민간인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새해를 ‘청룡’의 해라고 한다. 청룡은 우리 민속에서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와 더불어 사방을 지키는 사신(四神)의 하나다.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에 그려진 청룡도는 매우 역동적이다.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좋은 땅을 논할 때는 ‘좌청룡 우백호’를 찾는 이들이 많다.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미신이 아니고 과학이라고 주장한다.옛사람들은 바다에 수신인 용왕이 산다고 생각했다. 신라인들은 동해 울산 앞바다에 표류한 처용 일행을 용왕의 아들이라고 기록했다.
다가올 2024년은 갑진년 청룡의 해다. 지금 온 세상은 용의 해를 앞두고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이를 어쩌나, 용은 그 운명을 다해가며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으니 말이다.지구촌과 우리 인생은 원하지 않는 어떤 사연으로 인해 긴긴 세월 용의 권세와 주관 아래서 살아와야 했었다.우리에게 생로병사가 있어야 했고 흥망성쇠가 있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면 얼마나 이해할까.이제 해 아래서 밝혀지지 않을 것이 없는 때를 맞이했다.그동안 용이 우리 인생과 지구촌을 통치해왔지만, 이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통치
우리 민족이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그야말로 자랑스럽고 위대하고 우수한 민족이었음은 익히 아는 바다.그러나 그 같은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입증할만한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부지불식간에 인식돼왔고 믿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그 증거가 없는 것이 오히려 증거가 된다는 역설적 논리도 있으니 전혀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역설적 논리 중 대표적 논리가 바로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한민족 문화 말살정책이다. 한민족의 우수성은 어쩌면 우리보다 이방인이 더 잘 알고 부러워하고 두려워했다는 증거가 되는 사례이기도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 신학자, 사상가로 유명한 파스칼은 “인간은 자연 가운데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을 남겼다.과연 그러할까. 그러하다. 그 답은 파스칼과 같은 우리 인생이 아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2000년 전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요한은 돌연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이 보내신 자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됐다.그리고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흔들리는 믿음에 대해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 비유했다.즉, 우리 인생은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트로이4/5(BC 2200~BC 1740), 초기 청동기 시대3에서 중기 청동기 시대 시작까지로 아나톨리아 트로이 문화라고 한다. 일부 문화와 기술 혁신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기인 트로이1~3과 여전히 유사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새를 갖춘 언덕의 정착촌은 1만 8000평방미터로 확장됐다. 초기 발굴에서 이 시기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1988년 이후 발굴을 통해 이 기간에 7차례 화재가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택이 서로 인접한 직사각형 형태를 이루면서 건축양식이 변화됐다. 중앙 아나톨리아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40대 이후부터 고고학에 관심을 가진 독일의 부유한 상인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은 어린 시절 깊은 인상을 남긴 호머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를 찾겠다고 여행을 떠났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히사리크 언덕이 그가 찾던 전설의 도시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가 탐사를 시작하기 전 이미 17세기부터 차나칼레에 살던 칼버트 가문의 영국 영사 프랑트 칼버트(1828~1908)가 히사리크 언덕에서 소규모 발굴을 통해 이곳이 트로이였음을 증명했다. 칼버트의 도움으로 트로이를 발굴하기 시작한 슐리만은 18
지구촌 많은 사람(신앙인 또는 종교인)들이 ‘종교(宗敎)’를 말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종교를 아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기독교 경서인 계시록엔 천상천하 그 누구도 아는 이가 없다고까지 못 박고 있을 정도다.그 이유는 성경의 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은 성경을 알 수 있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도록 기록했기 때문이다.절대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구약과 신약을 일컬어 ‘봉한 책’이라 한 이것이다. 봉한 책이란 글(문자)은 읽을 수 있겠지만 그 글 속의 참뜻(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생각과 사연)은 알고 깨닫지 못하도록 기록돼 있다는
경상북도 남쪽엔 비슬산(琵瑟山, 해발 1084m)이 우뚝 솟아 있고, 비슬산을 가운데 두고 주변 위성도시들이 산재해 있다. 대표적 도시로는 대구 달성, 경북 청도, 경남 창녕‧밀양 등이다.그중에서도 비슬산과 청도, 청도와 비슬산은 마치 한 몸과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성을 지니고 있다.우선 비슬산이라는 산명부터 고찰해보자.‘비슬’이라는 글자는 한글이라기보다 산스크리트어 즉, 범어(梵語)다. 이 산스크리트어는 인도유럽어로 대부분의 인도계 언어들의 조상으로 보는 게 정설이며, 유럽의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와 거의 뿌리가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