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그리스 신화에서 포세이돈은 지진의 신이다. 포세이돈의 노여움에서 지진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포세이돈이 기분 나쁠 때마다 삼지창으로 땅을 치면 지진이 발생하며 인간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지진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신의 노여움으로 지진이 발생한다고 믿었다. 인구가 증가해 지구가 무거워지면 신들이 지진을 일으켜 사람들을 매몰시킨다는 것이다. 일본의 고대 야마토 설화는 땅속에 사는 큰 메기와 연관시키고 있다. 메기가 날뛰어서 대지진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과거 우리 역사에서도 많은 지진이
서울 지하철 1호선으로 출퇴근을 하는 많은 시민은 7일 하루 종일 큰 불편을 겪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으로 진입하던 무궁화호 열차가 갑자기 탈선하는 사고가 나는 바람에 그 여파로 이튿날 열차 운행이 중단되거나 지연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영등포구청 등이 사고 직후 시민들에게 ‘운행 재개’라는 내용을 재난문자로 보내면서 종일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이태원 참사로 인해 밀집이 우려되고 무서웠다. 출근 시간을 지키려고 억지로 타려는 사람들과 안쪽에서 밀리는 사람들 간 신경전이 벌어져 비명과 고성도 오갔다”며 수도
8.15일은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이다. 광복절(光復節)은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 패하여 한반도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광복은 문자 그대로는 “빛을 되찾음”을 의미하고 국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이날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경축 행사를 시행한 지 벌써 77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1910년부터 35년간의 기나긴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여 국권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서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 벌써 6.25가 발발한 지 72주년이 되었다.우리에게 6월은 너무나 가슴 아픈 달이고 동족상잔이란 전쟁으로 깊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잊어서는 안 될 비극의 달로 기억되고 있다.신록의 계절 6월 25일 시체가 산을 이루고 젊은 피는 하천을 이루었다는 '시산혈하(屍山血河)'라는 말은 우리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6.25 그날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먼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게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름 모를 산하에서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북한이 지난 1월 소집된 8차 당 대회에서 개정한 ‘노동당 규약’이 국내에 공개되면서 몇 가지 쟁점이 부각되고 있다. 첫 째는 노동당 제1비서제의 신설이고 두 번째는 당 규약에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삭제한 것을 두고 ‘남조선(대남)혁명론이 소멸’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북한은 매번 당 대회 때마다 규약을 개정했기 때문에 8차 당 대회에서 규약이 개정된 건 전혀 새로운 사건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 규약 개정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몇 가지 점에서 지금까지 논란이
불사홍사성(1951~ ) 김천 직지사는 중창불사를 하면서부처님 법문 들을 때 올라가는 황학루를약간 비껴 지었다 합니다하필이면 누각 지을 자리에못생긴 개살구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그 나무 살리려고 그랬다 합니다쓸모없다고 베어내자는 사람 여럿이었으나주지스님이 고집을 부려 할 수 없이비뚜름하게 지었다 합니다.[시평]부처님 법문은 왜 듣는가. 부처님 법문을 듣고자 사람들은 왜 사찰로 모여드는가. 그 법문이 좋아서? 그럼 그 법문이 왜 좋은가. 법문이 좋은 것은 중생들이 중생과 ‘더불어 보람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제2차 진주성 싸움‘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엔 1593년 6월 21일부터 29일까지 9일간의 진주성 싸움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6월 21일에 왜군이 진주성을 에워쌌다. 22일부터 24일까지 조선군은 왜군을 물리쳤다. 25일엔 적이 동문 밖에 언덕을 만들어 탄환을 퍼부었다. 그러자 순성장 황진도 성안에 언덕을 높게 쌓아 방어했다.26일에 적이 성을 헐므로 성안에서 돌을 굴리고 화살을 쏘았다.27일에 적이 귀갑차를 이용해 쇠망치로 성을 뚫으려 했다. 조선군은 섶에 기름을 붙여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1593년 6월 29일, 왜군이 진주성을 함락시키자 김천일·최경회 등 6천명이 전사했고 6만 명의 백성과 소·돼지·닭까지도 모두 도륙됐다.1593년 1월 8일, 명나라 이여송이 지휘하는 조명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했다. 2월 12일 전라감사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친 이후 왜군은 서울에서 고립됐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명나라 심유경과 협상한 뒤, 4월 18일에 양곡 2만석을 명군에게 넘겨주는 대신 신변안전을 보장받고 서울에서 철수했다. 명군이 조선군에게 일체의 군사행동을 엄
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노동집약형 중소업체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국외로 대거 공장을 옮겼다. 최저임금 급등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국내 인건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이익을 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각종 규제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사업 환경도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납품단가는 그대로인데 비용만 증가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국내 생산보다 해외 이전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그러나 최근 해외 공장을 닫고 리쇼어링(국외 진출 기업이 국내로 회귀)하는 기업이 생기고 있다. 국내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호남 의병은 근왕(勤王) 의병호남 의병은 향토방위의 영남 의병과는 달리 근왕의병이었다.한양을 다시 찾고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창의였다.이는 선조가 개성으로 파천하면서 어쩔 줄 모르고 절망하자, 호종한 류성룡이 “호남의 충의지사들이 머지않아 봉기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선조수정실록 1592년 5월 1일 1번째 기사).# 나주의 김천일, 먼저 창의하다.5월 초에 전라도 관찰사 이광은 8천명을 이끌고 공주까지 올라갔다가 선조가 파천했다는 소식에 전주로 돌아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이순신과 의병, 조선을 구하다임진왜란 초기에 조선을 구한 것은 이순신과 의병이었다.왜군의 작전은 수륙병진책이었다. 육군은 부대를 세 갈래 방향으로 나누어 북상하고, 수군은 서해로 진입해 조선을 협공한다는 전략이었다.수군이 서해안 뱃길을 따라 강화도 부근에 도착하면, 한강과 임진강을 통해서 한양과 경기도 일대를 전멸시킬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대동강과 압록강 기슭에 이르면 평양과 의주 방어는 속수무책이었다.실제로 1592년 6월 15일에 평양에 입성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의주에 있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순변사 이일, 도망가다.1592년 4월 25일에 왜적이 상주에 침입하자 순변사 이일(1538∼1601)이 패하여 도주하였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 1만 8700명은 4월 15일에 동래성을 함락시킨 후 18일엔 밀양을 점령했다. 이후 청도·대구를 거쳐 상주에 이르러 이일의 군사를 전멸시켰다.먼저 4월 17일의 선조실록을 읽어보자.변경의 보고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이일로 순변사를 삼아 정예병을 이끌고 상주에 내려가 적을 막도록 하였으나 싸움에 패하여 종사관 박호·윤섬 등은 다
대전 제일고등학교 배움터 지킴이 김 천 섭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 다사다난 한해가 저물고 황금돼지의해 기해년 새해가 밝았고 또 다시 우리 민족의 대명절이 바로 곁에 ‘설’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다.한동안 우리는 항상 연말연시가 되면 범국민적으로 불우이웃 성금 모금을 통해 어렵고 불우한 이웃들 위해 나눔을 함께 하자고 거리의 자선냄비인 구세군이 국민들의 가슴속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자리 잡곤 했지만 이젠 그나마도 어디론지 살아지고 자선단체의 불우이웃돕기 행사는 물론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우리 민족 고유
대전 제일고등학교 배움터지킴이 김천섭2019년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새해가 밝았다.지난 무술년 한해는 연초부터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정상의 만남을 시작으로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바라던 통일에 대한 염원 속에 기분 좋은 출발하였으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미투“ 사건에 이어 재벌기업의 오너들이 사회적 약자를 향해 상식 이하의 갑질이 불거지면서 국민들을 분노케 했고 크고 작은 사건들로 얼룩졌던 한해가 아니였나 되돌아보게 한다.우리는 늘 말하기를 남의 상처는 별거 아니라고 냉정히 말하면서 내 상처는 별거라고 말
대전 제일고등학교 배움터 지킴이 김천섭 2017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두고 지난 경주에 이어 포항지역에 5.4의 지진이 발생하여 정부에서는 수능시험을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면서 포항지역은 물론 전국의 수험생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이번 지진은 누구의 잘잘못도 아닌 자연재해이자 천재지변이다. 우리는 이런 재해를 대비하지 못한 것이 누구의 탓이라기보다 모두 우리의 탓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슬기롭게 대응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전국의 수험생 여러분!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이번 지진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조금 더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미국은 군사작전 하듯이 사드를 성주에 반입했다. 주민들이 ‘결사반대’ 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한국 경찰의 호위 속에 사드를 반입했다. 주민들은 계엄령 상황으로 느꼈다고 한다. 12명이 다쳤다. 80대 노인들이 많았다. 병원에 실려 간 사람이 여럿이고 갈비뼈와 손목 골절상을 입은 사람도 있고 군홧발에 짓밟힌 사람도 있다. 미국은 사드 배치로 피해를 볼 주민들, 사드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안중에도 없는가.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강요하는 과정을 보면서 미국은 우리에게 과연 우방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중국의 롯데에 대한 사드 압박이 심상치 않다. 롯데가 지난 11월 중국에 있는 모든 사업장에 대해 소방 및 위생 점검, 세무조사를 받는 등 여러 가지 압박을 받았다. 롯데 캐슬 분양에 필수적인 모델 하우스가 폐쇄 조치돼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8일엔 중국 롯데월드 선양 공사를 중단 조치한 사실까지 확인됐다. 지난해 7월 사드 배치 결정이 내려진 직후에 황교안 총리를 포함한 정부 당국자들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사드 배치 결정 이후에 중국의 보복은 예상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우려는 크지 않다.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콤플렉스는 일반적으로 감정에 의해 복합적으로 통합된 심리상태를 가리킨다. 간단히 규정하면 ‘마음속의 응어리’이다. 칼 융에 따르면 콤플렉스는 누구나 의식적, 무의식적 상태로 심리와 결합된다. 본인이 의식하게 되면 이성적 통제를 통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무의식적 상태로 깊이 들어가면 병리적 작용을 하게 된다. 콤플렉스는 대체로 유년기의 갈등이 원인이다. 사명대사의 출가와 이후의 행적을 살펴보면 콤플렉스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전형적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소임숭재대임홍(小任崇載大任洪), 천고간흉시최웅(千
최상현 주필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북상하는 왜군과 맞선 신립 장군이 전사하면서 조선군은 또 한번 허망하게 무너진다. 조총은 평지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므로 앞이 개활지(開豁地)인 탄금대와 같은 곳에서의 배수진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런 곳에서의 몸을 드러낸 정면공격은 위험하다는 충고를 신립은 듣지 않고 무모한 공격을 감행했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신립의 패전 소식에 선조는 조바심이 나고 몸이 달아 견딜 수가 없게 됐다. 그는 피난을 서둘렀다. 그런데 피난도 급하지만 임금에게 생길지도 모를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세자 책봉 역시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광주와 대구를 잇는 88고속도로는 ‘죽음의 도로’로 악명이 높다. 최근 10년 새 교통사고 사망률 1위로 운전자들에게 공포심을 안겨 주는 도로다. 말이 고속도로지 왕복 2차선 구간이 많고 그나마 꼬불꼬불 곡선도로가 많아 속도를 내기도 쉽지 않다. 성질 급한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거나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며 앞차 운전자를 자극한다. 속도가 느린 화물차 뒤를 따라 가다보면 속이 터지기 일쑤다.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곡예 운전을 하기도 해 보는 이의 가슴을 졸이게도 한다. 대구 쪽에서 광주 방향으로 들어서는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