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희고 뽀얀 피부, 깔끔하고 화려한 옷차림,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표준말, 서울 아이들의 이미지는 대개 그런 것이었다. ‘별에서 온 그대’처럼 느껴지는 서울 아이를 보고, 시골 아이들은 ‘서울내기 고래 고기 맛좋은 다마내기’ 하고 목을 뽑아 노래를 했다. 서울 아이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 질투와 선망이 뒤섞인 묘한 가사다. 전학 온 서울 아이를 두고 벌어지는 유치한 사랑 이야기도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깍쟁이로 불렸다. 깍쟁이는 원래 뱀 장수, 땅꾼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이 사는 천상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때부터 인간은 익힌 음식을 먹고, 어둠을 밝힐 수 있었다. 인간의 문명이 그렇게 시작됐다. 최고의 신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벌을 내렸다. 바위산에 묶어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게 하고 다시 간이 돋아나게 했다. 제우스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말해 주고 용서를 빌면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프로메테우스는 거부했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에게는 동생 에피메테우스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1824~1864)는 과부 어머니가 재가해서 낳은 서자였고 차별을 많이 받았다. 그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꾼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세상을 떠돌며 노비해방운동을 펼쳤고, 자신의 집 계집종 두 명을 풀어주어 며느리와 양딸로 삼았다. 차별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무극대도(無極大道)의 본을 보인 것이다. 동학 2대 교조 최시형도 ‘사람은 곧 하늘’, 즉 인시천(人是天)의 뜻을 이어받아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은 한울이라, 평등이요 차별이 없나니 사람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군대나 경찰에서 상사의 개인 비서 노릇을 하는 사람을 ‘따까리’라고 부른다. 물론 비공식적인 말이다. 그럼에도 정식 호칭 대신 그렇게 부른다. 사전에는 ‘따까리’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맡아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다. 경상도나 강원도 등지에서는 ‘뚜껑’이나 ‘딱지’를 ‘따까리’라고 한다. 회사나 동네 조직에서도 개인 시중을 드는 ‘따까리’가 있다. 그런데 이 ‘따까리’ 노릇 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공식적인 업무가 분명히 규정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사의 개인적인 영역까지 도맡아야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바다는 옛날부터 고기잡이가 잘 됐다. 조선시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고, 명태 조기 청어 대구 갈치 고등어 멸치 새우 등이 특히 많이 잡혔다. 옛 문헌에도 갈치를 도어(刀魚), 고등어는 고도어(古刀魚), 오징어는 오적어(烏賊魚), 김은 해의(海衣)라 하여 우리 바다에서 많이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아득한 시절부터 함부로 우리 바다에 들어와 고기잡이를 했던 중국 일본은 구한말 개항을 하면서부터는 대놓고 노략질을 했다. 1882년 청나라에게 황해도와 평안도를, 다음해에는 일본에게 경상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구한말에 천석꾼 만석꾼들이 대거 등장했다.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물결이 스며들면서 누구나 한몫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부를 물려받은 양반지주들도 있었지만, 아무런 배경 없이 졸지에 만석꾼이 된 이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지방의 향리나 감영의 방자 출신, 지주의 마름 혹은 장사꾼들도 있었다. 이들은 그야말로 시절을 잘 만나 돈벼락을 맞은 신흥부자들이었다. 이 시절 만석꾼들은 자린고비로 알뜰살뜰 돈을 모으기보다는 대개는 부당한 방법으로 축재를 했다. 권력을 이용해 논밭을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는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이 46세 때인 1881년에 발표한 사회풍자소설이다. 12~13세기 북유럽에서 전해 오던 '왕자와 시종'이라는 전설에 바탕을 둔 것으로,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등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켜 16세기 영국의 사회상을 날카롭게 꼬집고, 권력자가 지녀야 할 진정한 덕목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영국의 왕 헨리 8세의 아들인 에드워드와 빈민가의 톰은 같은 해 같은 날 출생한다. 왕자를 동경하던 톰은 어느 날 왕자가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아라.’ 74세의 나이로 최근 세상을 떠난 복싱 영웅 무하마드 알 리가 전성기 시절 즐겨 쓰던 말이다. “나는 최고(I am the greatest)”라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잃지 않았던 그였다. 그는 생애 세 번이나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 복싱 전설이었다. 미국의 ESPN은 마이클 조던, 베이브 루스와 함께 알리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았다. 알리는 1942년 1월 17일 미국 루즈빌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노예 집안이었다. 12살 때 새로 산 자전거를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아재는 아저씨의 낮춤말이다. 아재 중에는 집안의 아재도 있고, 동네 아재도 있다. 격식을 덜 차려도 되고 좀 만만하게 대해도 별 문제 없을 것 같은 편안함이 아재의 이미지다. 때로는 낯선 사람을 얕잡아 보고 아재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 아재가 요즘 따끈따끈한 개그 소재가 되고 있다. 썰렁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웃지 않을 수 없는 참으로 절묘한 맛이 아재 개그의 매력이다. 코미디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바보 아니면 아주 센 사람들이다. 바보는 바보짓으로, 권력이나 부를 가진 센 사람들은 그들의 약점을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3천년 전 고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파피루스로 만들어진 전단지가 뿌려졌다. 도망 친 노예를 찾아주면 보답하겠다는 이 기록물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세계 최초의 광고로 알려져 있다. 광고는 인적 물적 거래와 함께 자연스럽게 발생했고, 시대에 따라 형식과 내용이 변해 왔다. 광고를 보면 시대의 흐름과 상황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광고는 1886년 2월 한성주보에 실린 ‘덕상세창양행고백’이었다. ‘독일 상사 세창양행 광고’란 뜻으로 지금처럼 ‘광고’라 하지 않고 ‘고백’이라고 했다. 한문으로 된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최근 단국대 운동의과학과 해외석학 초청 세미나에서 일본 쓰쿠바 대학의 다나카 키요지 교수가 강연한 ‘생활습관병과 허약화 예방을 위한 운동과 스포츠’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나카 교수는 1924년의 평균 수명은 남자 42.1세, 여자 43.2세였으나 2013년에는 남자 80.2세, 여자 86.6세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면서, 늘어난 수명만큼 삶의 질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화는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다나카 교수는 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리하느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여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 중 하나가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다. 군대 이야기도 지겹지만 축구 이야기는 더 하품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할 말이 많다. 군대 이야기는 밤을 새워도 모자라고 축구 이야기도 지칠 줄 모르고 한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상처를 치유 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자가 군대 이야기를 하면, 아픈 사람이 아팠던 기억을 말하는구나, 하고 들어주면 고맙겠다. 지겨워 죽는 한이 있어도, 사람 하나 살린다 치고 그렇게 들어주는 것이다.축구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백여년 전 우리나라에 전화가 도입됐지만 처음에는 호응을 얻지 못했다. 사람을 보지 않고 기계로 대화하는 것이 어색했고, 어른을 전화기 앞으로 불러내는 것이 예의에도 맞지 않다고 여겼다. 지체 있는 사람들은 할 얘기가 있으면 하인을 시킬 일이지 굳이 전화기를 들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먼 지방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그래서 서울 시내 전화보다 시외 전화가 먼저 생겼다. 그것이 1902년이다. 그 이후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전화기가 많이 보급됐다. 그러나 전화기는 주로 일본인들 차지였다. 전화 가입자 열에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미국의 심리학자 머리 보웬(Murry Bwen, 1913~1990)은 가족이 개인의 독립을 방해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엄마와의 정서적 융화 상태를 거친 후 개인으로 독립해 성숙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아이가 가족이라는 공통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족이 방해를 한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독립심이 낮은 부모일수록 자녀를 더 붙잡아 두려고 하고, 부부 사이가 나쁠 경우 자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삼각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자립 의지도 꺾이게 된다.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미녀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할 때는 1시간이 1초처럼 흘러가지만, 뜨거운 난로 위에 앉아 있을 때는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진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이렇게 재치 있는 말로 표현했다. 그는 아무리 뛰어난 이론이라도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없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했다. 어려운 물리학을 연구하면서도 철학과 예술가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다음 달 영국에서 출간되는 책 ‘집에서의 아인슈타인’(Einstein at Home)에,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번잡한 뉴욕 시내 번화가에 사람을 세워놓고 빌딩의 높은 곳을 계속 바라보도록 했다. 그러자 곁을 지나가던 사람 열 명 중 여덟 명이 같은 곳을 올려다보았고, 가던 길을 멈추고 위를 쳐다본 사람도 절반이나 됐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을 따라 하는 버릇이 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동조 현상이라고 한다. 동조 현상은 정보가 부족할 때 많이 발생한다. 판단 근거가 되는 정보가 부족할 경우 다른 사람을 따라 하면 실패할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2세로 등장하는 유아인의 연기는 소름끼칠 정도로 실감난다. 골프채와 야구 배트로 부하 직원들을 두들겨 패고 사람을 때려죽이기까지 한다. 마약을 하고 연예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사나운 개로 사람을 위협하기도 한다. 과연 그것들이 실제로도 가능한 일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영화 속 장면들은 살벌하고 끔직하다. 하지만 6년 전 쯤 어느 대기업 재벌 2세도 영화 속 장면처럼, 개로 여직원들을 위협하고, 삽자루와 곡괭이 자루, 야구 방망이로 사람을 때렸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준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북한의 미녀 응원단이었다. 한국적 정서가 느껴지는 자연 미인들로 구성된 응원단은 북한 특유의 일사불란한 응원으로 화제를 모았다. 배를 타고 부산 다대포항을 통해 입국한 북한 응원단은 ‘남남북녀’라는 말을 실감케 하며 북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은 2003년 8월 대구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에도 미인 응원단을 내려 보냈다. 여대생 200명과 취주악단 등 300여 명의 북한 응원단은 이때에도 언론의 집중 취재 대상이었다.대구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선거는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의회 선거다. 21세 이상 성인이면 신분과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진정한 의미의 선거였다. 5.10 제헌의회 선거는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반쪽짜리 선거였다. 이 때문에 좌우로 갈라져 대립했고, 북쪽에서는 3개월 후에 그들만의 선거를 치렀다. 경향신문은 5.10 선거 이틀 후인 1948년 5월 12일자에 ‘외신기자의 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당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수천명의 경찰과 특임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그리스 신화 한 토막. 아득한 시절, 보이오티아라는 나라에 아타마스라는 왕이 있었다. 왕의 첫째 아내는 아들 딸 하나씩을 낳았다. 그런데 왕은 아내를 버리고 새로 여자를 얻었다. 새 왕비 이름이 이노였다. 왕과 이노도 아들 딸 하나씩을 두었다. 왕은 행복했으나 새 왕비는 그렇지 않았다. 전처 자식들 때문이었다. 왕비는 어떻게 하면 저것들을 없애 버릴까, 늘 그 궁리만 했다. 새 왕비는 마침내 무릎을 탁 쳤다. 보리를 파종할 때가 되었고, 왕비는 볶은 보리를 남자들에게 주도록 했다. 남자들은 그 사실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