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필자가 태어난 청주의 작은 시골마을은 6.25전쟁의 참화를 다른 지역보다는 덜 받은 곳이었다. 그러나 힘없는 어린아이들과 여성이 가장 피해자라는 것을 실감시켜준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필자는 모친의 증언으로 숨은 비화를 들을 수 있었다. 동네 남쪽에 있는 인경산은 서울이 보인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는데 북쪽으로는 멀리 증평의 두타산을 마주보고 있다. 북한군이 보은 방향으로 진출하려면 험준한 인경산을 넘어야 했으므로 피해야 하는 천혜의 피난처였던 곳이다. 이런 피난처였던 관계로 지주로 몰려 체포 대상이었던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고침단명(高枕短命)’이란 베개를 높이 베면 목숨이 짧다는 뜻이다. 베개를 높이 베면 건강에는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젊은 나이에 벼슬이 높아지면 화가 미친다는 뜻으로 사용된 사자성어다.송나라 정이천(1033~1107년)은 사리 판단을 잘하는 학자였다. 그는 젊은이가 일찍 출세하는 것을 세 가지 불행 중 으뜸으로 꼽았다.‘인간에게는 삼불행이 있다. 첫째 어린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 둘째 부형의 군세에 힘입어 좋은 벼슬을 하는 것, 셋째는 뛰어난 재주로 문장에만 능숙한 것이다(伊川先生言, 人有三不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흥겨운 단가 강상풍월 속에 단오는 ‘천중지가절’이라고 했다. 하늘이 준 가장 좋은 계절이란 뜻이다. 한문 투의 이 가사는 오월 단오 날 자연의 흥겨운 모습을 노래 한 것이다.(전력) …오월(五月)이라 단오날에/ 천~중지가절(天中之佳節)이요~/ 일지지창외(日遲遲窓外)로다/ 창창(蒼蒼)한 으허~ 숲 속으 백설(百舌)~이 자자(孜孜)서라/ 때때마다 성언(聲焉)이요 산양자치(山梁雌雉) 나는 구나(하략).‘오월이라 단오날 하늘 아래 좋은 계절이요, 창밖의 해는 느리게 가는 구나. 숲속에는 때까치가 부지런히 날고,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우리 민족의 먼 고향일 수도 있는 중국 내몽고 우하량(牛河梁) 홍산문화 유물 가운데 태양신이란 석기가 있다. 검은 돌로 만든 이 석기는 눈과 귀 코가 있어 사람의 모양이지만 어떻게 보면 외계인을 닮아 있다.불거진 눈, 큰 코, 길게 찢어진 입 모양이 사람의 얼굴은 아니다. 홍산인들이 분명 이 조각을 했을 때는 비슷하게 생긴 대상이 있었을 게다. 혹시 하늘에서 내려온 외계인을 대상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홍산문화의 중심인 이 지역을 가면 거대한 운석의 잔해들이 놓여 있다. 검고 붉은 모양의 운석들 외면을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판소리.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심청가와 춘향가의 감동은 클라이막스에 있다. 춘향가는 어사또가 돼 몰래 남원에 잠입한 이도령이 출두해 탐관오리 변학도를 봉고파직하고 잔치에 참석한 양반 부류들을 혼쭐내는 장면이 제일 통쾌하다.심청가의 감동도 마지막 대목이다. 황성 맹인잔치에 참석한 심학규가 꿈에도 못 잊는 딸 심청을 만나 눈을 뜨는 장면이다.기구한 운명에 통곡하던 심학규는 딸을 보려고 눈을 끔쩍거리다 광명을 찾는다. 관객들은 눈물을 쏟으면서도 박수를 친다.지난해 7월 첫 개봉에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고전 ‘별주부전’의 바다 용왕은 거북이를 시켜 토끼의 간을 얻으려 한다. 우직한 거북을 골려주는 토끼의 위기탈출 간계가 재미있는 우화다. 폭풍의 바다에 제물로 바쳐진 심청은 용왕의 도움으로 살아나 진짜 왕비가 됐다.고기잡이로 살아온 어민들은 바다가 두려웠다. 그래서 용왕의 심기를 달래는 굿을 많이 만들었다. 동해안에서는 별신굿, 서해안 배 연신굿, 위도 띠뱃놀이 모두가 바닷가의 민속이다. 강화도에서는 시선뱃놀이, 해운대에서는 용왕 맞이라고 부른다. 인천 지방의 갯마을 도당굿은 정월 대보름 마을의 안녕과 풍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라는 한문소설은 한 총각과 시집가지 못한 채 죽은 처녀의 한을 그린 작품이다. ‘저포’란 나무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서 그 사위로 승부를 다투는 놀이다. 조선 세조의 왕위 찬탈에 저항한 생육신 김시습(金時習)이 지었다.만복사는 지금의 남원시에 있던 절이며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절터에 남은 여러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매우 번창했던 것 같다. 신라 다섯 소경(小京)의 하나인 남원소경 시기 경찰(京刹)이 아니었나 싶다.주인공 양생은 남원 양반가의 총각으로 만복사에서 공부할 때 비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임진전쟁은 1592년 음력 4월 13일에 일어났다. 부처 탄신일인 사월초파일이 며칠 지난 매우 평온한 봄날 아침, 수천척의 일본 전선이 부산포에 상륙했다. 부산 백성들은 이들이 평소보다 규모가 큰 조공선들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7년간 침략군의 만행에 조선반도는 무참히 도륙됐다.기록들을 열어 보면 참상에 분노하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왕은 의주로 피난을 떠나고 미처 피하지 못한 백성들은 일본군의 칼날아래 수 없이 살상됐다.힘없는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이 제일 많이 희생됐다. 일본 정부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으려면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언론인 출신으로 80년 초기 삼성박물관(현 리움미술관)의 관장이 됐던 고 이종석 중앙일보 문화부장은 고 이병철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다. 문화재 전문기자로 기사를 많이 다뤘던 이 부장의 능력을 인정해 파격적으로 기용했던 것이다.필자와도 여러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원로교수들과의 회식자리였다. 유머러스한 그는 항상 웃고 있는 스타일이었다.특종의식이 강했던 그는 단국대 정영호 박사(고인)와 절친으로 학술조사 현장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이 부장은 1978년 발견된 단양 적성비 현장에 내려와 제일 먼저 특종을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한국의 문화유산 가운데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 고려청자다. 흔히 고려 3대 발명품의 하나인 청자는 국제적으로도 성가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필자는 몇 년 전에 베이징의 한 골동가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주인이 금고 안에서 고려청자라고 하며 주병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엄청난 값을 제시한 고려청자는 가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북한 지역에서 건너온 것으로 수리가 많이 되어있었다. 주인은 엄지 척을 해보이며 최고의 명품이라고 자랑했다.세계에서 가장 비싼 송나라 여요자기에 대해 긍지가 높은 중국 감정가들 사이에서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대전 둔산 선사유적은 3000년 전 갑천 유역의 도시였다. 지난 1991년 발견된 이 유적에서 70여기 넘는 신석기 집 자리, 수십여 곳의 청동기 집 자리 발견은 해방 이후 가장 큰 고고학적 발견이었다. 현 대전종합청사자리에 지하 수 십여m에 달하는 구석기 층위가 찾아졌다. 수만년 전부터 갑천에 살았던 인류의 고향이었던 것이다.이런 선사시대의 대단위 추락 도시가 찾아진 경사에도 불구 행정당국은 개발이라는 목표를 앞세워 종합청사자리에 찾아진 구석기 유적은 매몰하고 말았다. 다만 언론과 시민단체의 저항에 굴복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천년왕조 신라 국운이 쇠퇴한 것은 바로 가혹한 세금징수 때문이었다. 태봉을 세운 궁예도 사치한 나머지 신라의 혹세정책을 이어받았다. 민심이 악화돼 궁예는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해 부하장병들에게 축출되고 말았다. 왕권을 이어받은 이가 바로 왕건이다. 왕건은 제왕들이 민심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이 바로 세금을 내려주는 일이었다. 기록에는 전세(田稅)의 경우 수확량의 10분의 1만 거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바로 ‘취민유도(取民有度)’ 정책이다.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거둘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방기곡경(旁岐曲逕)’이란 옛 사자성어가 있다. 방기(旁岐)는 샛길, 곡경(曲逕)은 굽은 길을 가리킨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 율곡 이이(李珥)선생의 명저인 ‘동호문답(東湖問答)’에서 군자와 소인을 가려내는 방법을 설명한 글이다.‘제왕이 사리사욕을 채우고 도학을 싫어하거나, 직언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구태를 묵수하며 망령되게 시도해 복을 구하려 한다면 소인배들이 그 틈을 타 방기곡경으로 갖가지 행태를 자행한다.’이미 오래전에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에 선정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한국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강은 인간의 삶을 지탱해 주는 젖줄이다. 그러나 때로는 눈물을 뿌리는 비극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옛날에는 강을 건너다 배가 침몰해 빠져 죽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은 세상을 비관한 이들이 목숨을 버리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는 것이 힘들다 보니 자포자기 심정에서 한강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 지금 어디에 있니,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 “안경 끼고 키는 175, 남색 잠바 착용… 보신 분은 연락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세요.”얼마 전 서울 반포동 잠수교에 아들을 애타게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옛날 관아에 있던 서리를 ‘아전(衙前)’이라고 불렀다. 육조를 모방해 육방(六房)을 뒀으니 이들이 최말단 공직으로 대 주민 공무를 담당했던 셈이다. 아전은 과거에 급제한 자들이 아니면서 백성들에게 ‘나으리’라고 불렸다. 아전도 권력이라 ‘기생이 아전서방을 두면 팔자를 고친다’는 속담도 전해 내려온다.가을철 환곡을 징수하면서 가혹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아전들이 백성들에겐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으리라. 세 징수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부뚜막에 걸린 쇠솥 단지까지 압수해 간 아전들의 잔인한 행위에 민초들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남한지역에는 얼마나 많은 고구려 유적이 있을까. 지난 1997년 서울 한강 아차산성 발굴로 고구려 성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지 20여년. 지금은 고구려 유적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점점 식어가고 있다.국회에서 우리 고대 문화와 관련이 있는 중국의 홍산문화 혹은 요하지역의 청동기 유적에 대한 쟁점이나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토론이 있으면 이를 주최한 국회의원들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 대한 정치인들의 사대적 몸조심이 지나치다는 생각은 필자만의 생각인가.한국역사문화연구회는 지난 2~3월 강원도 홍천지역의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마라(李下不整冠)’는 속담이 있다. 남의 의심 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갓은 옛 선비들의 표상이었다. 검은색을 흑립(黑笠)이라고 했는데 사류들이 일상 통행할 때 착용한 대표적 관모였다. 제일 소중하게 여겼으며 외출 시에는 꼭 쓰고 다녔다.표해록(漂海錄)은 조선 성종 때 제주목 경차관이었던 최부(崔溥. 아호 錦南)의 중국 기행문이다. 부친상을 당한 최부는 배를 타고 고향으로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게 된다.중국 저장(浙江)성의 해변 마을에 닿은 그는 명나라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역사에서 보면 권력 말기 군주가 나약해지면 요신(妖臣)들이 활개를 쳤다. 고려 공민왕은 처음에는 정치를 잘했으나 원나라에서 시집온 왕비가 출산 중 목숨을 잃자 정신 분열증에 빠진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신돈이다. 신돈은 공민왕을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했다. 공민왕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여장을 하고 미남 자제위들과 남색을 하다 살해당했다. 고려 5백년 사직은 이 시기부터 기울어졌다.가끔 영화 소재로도 재조명되는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 그는 명군인가, 아니면 냉철하지 못한 군주였을까. 광해에 대한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신라 화랑 효종랑의 설화는 고대 서라벌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풍속을 보여 준다. 왕도에 지은(知恩)이라는 처녀가 30세가 넘도록 시집을 가지 않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가난해 쌀 10섬에 팔려 가는 몸이 된다.모녀가 붙들고 통곡하는 것을 지나가던 늠름하고 인자한 화랑 효종랑이 들었다. 화랑은 부모를 설득해 곡식 1백섬을 받아 구해준다. 한번 팔려 가면 평생 노비가 되는 것을 딱하게 여긴 것이다. 효종랑을 따르는 낭도 수천명이 각각 쌀 한 섬씩을 가져다줬으며 대왕도 벼 5백섬과 집 한 채를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조선시대에도 죄가 없는데 귀양을 가거나 옥에 갇힌 사람들이 많았다. 정절을 지키며 오로지 낭군만을 기다리던 고전 속의 춘향은 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받는다. 죄목은 관장(官長) 능멸죄. 남원부사 변학도가 수청거절에 대한 앙심으로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권력자들이 힘없는 백성이라고 제멋대로 인신을 구속하고 체벌을 가했던 봉건의 악폐를 알려 준다. 비록 픽션이지만 권력자들에게 당하는 민초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읽을 수 있다.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은 젊은 시절 원나라 사신 마중을 거부했다고 10년간 나주에서 귀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