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가오는 광복절과 추석을 앞두고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정부의 한 당국자는 8일 언론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을 어떤 방법으로 제기할지 고민 중”이라면서 “가능한 여러 방법을 놓고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광복절이나 다음 달 30일인 추석 즈음에 정부가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할 것으로 관측된다.지난해 말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로 등록된 사람은 13만 명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 대부분이 고령자이며 이 중 37.2%인 4만 8000여 명은 별세했다. 그나마 남은 사람
93년 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렸던 만세의 함성,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손마다 들린 태극기. 일제의 총에 쓰러져 가고,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우리네 말도 문화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민족.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과거를 딛고 일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뤄냈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는 선조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순국선혈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제93주년 3.1절을 기점으로 사회 이곳저곳에서 3.1운동의 정신을 다시금 계승해야 한다는 목소
66돌을 맞은 광복절 기념행사가 지난 15일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속박에서 해방된 그날을 기념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화풀이를 하자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일련의 시위성 기념행사가 서울 도심을 가득 메웠다는 점이다. 정의 대신 모두가 압력과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오늘의 현실을 단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하루였다. 그 소리는 너무나 커서 자칫 통일이라도 곧 되려나 싶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66년 전 광복(光復)은 계층도 이념도 종교도 하나 되어 한목소리를 낸 결과임을 잊어선 안 되며, 그 역사적 진실을 억지
경술국치(庚戌國恥) 즉, 100년 하고도 한 해 전 우린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라를 빼앗겼다. 그리고 수많은 선진들의 피의 대가로 36년이 지나 8월 15일 기쁨의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으며, 오늘이 그 66번째 맞는 뜻깊은 광복절이다. 암울했던 그날들을 돌이켜 볼 때 광복은 참으로 가슴 벅찬 순간이 아닐 수 없었겠으나, 다른 한편으론 많은 숙제 또한 우리에게 남기고 있음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날의 함성과 함께 찾아온 광복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66년 전 광복의 교훈은 우리에게 참의미의 광복이 또다시 남아 있
이재술 정치컨설팅 그룹 인뱅크코리아 대표 이명박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협치(協治)’를 내놓기로 했다고 한다. 국정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국민 화합과 ‘참여의 정치’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역대 대통령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국정 지지율 하락과 이로 인한 국민들과의 괴리감에 나홀로 정치를 해왔지만 타파해보자는 속내다. 이러한 이명박 대통령의 협치는 국민 화합과 통합이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협치되어 국정의 성공적 마무리와 함께 고질적 문제인 양극화 현상, 여야 갈등과 여여 갈등을 푸는 해법으로서도 최적의 카드이
최근 일부 언론에서 통일부가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한 통일재원 마련을 위해 남북협력기금 활용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갔다. 이 때문에 그동안 잠잠했던 통일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정부는 북한의 급변 사태를 가정해 재원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논의의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해 광복절 축사를 통해 “현실적인 맥락에서 통일세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정부에서도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사실, 통
정수연 한국트리즈 경영아카데미 원장 한일병합 100주년에 맞는 2010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모 사단법인의 주최로 ‘제65주년 광복절기념 나라사랑 국민행사’가 서울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열렸다. 이번 광복절 행사에서 주최 측은 한국기록원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로 60미터, 세로 40미터 크기의 초대형 손도장 태극기를 하늘에 띄웠다.“내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한 개 밖에 없다는 게 유일한 슬픔입니다”라고 한 유관순 열사의 한맺힌 목소리를 기리며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8.15당시의 감동을 상기하였다. 어느 6.
[천지일보=최유라 기자] 광복 65주년을 맞아 진보·보수교계가 뭉쳐 서울 시청광장에서 8.15대성회를 가진 다음날 16일, 전날 분위기에 이어 평화통일 기원예배가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렸다. ‘예수 그리스도 한반도의 희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은 광복절이 끝난 다음날이라 시의성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참석한 교인 수가 저조했다. 예상인원 1000여 명이 모여야 할 강당에는 9시 50분이 되도록 50여 명 교인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어 미리 온 사람들이 무색한 분위기였다. 약속된 10시가 지나자 관계자는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차가 많이 막
이번 광복절은 참으로 다채로운 행사로 65년 전 그날의 기쁨을 온 국민이 축제로 승화시키며 모처럼 함께했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맞는 광복절이라 더욱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전례 없이 나라의 존재가치와 의미 그리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봐진다. 경술년(庚戌年) 그날의 수치 즉, 경술국치(庚戌國恥) 100년을 맞아 광화문의 복원을 위시해, 갈라진 것을 붙이고, 비뚤어진 것을 옳게 하고, 넘어진 것을 세우고, 없어진 것을 다시 찾고, 잊혀진 것을 다시 새기는 그런 운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언급한 ‘통일세’ 논란이 뜨겁다. 경색된 남북관계로 멀게만 느껴졌던 통일이란 단어가 최대 화두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 발언의 배경에는 최근 김정일의 건강악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짐작된다. 대통령의 통일세 발언에 대해 일부에선 ‘흡수통일’로 인한 통일비용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야당을 중심으로 일각에선 통일세가 아닌 남북협력기금을 조성해 통일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편에선 ‘통일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며, 통일이 가져올 위기를 몹시 걱정하는 분위기다. 모 여론조사
광복을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에게 오늘의 광복절은 어떻게 보일까? 일본의 총칼 앞에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살아가던 그때를 생각하며 오늘의 자유로운 시민생활을 대견스럽게 보시겠지. 모든 것은 일본에 빼앗기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명줄을 이어가던 그때 동포들을 생각하면 오늘의 풍요로운 삶을 보시고 스스로 희생의 보람을 느끼시겠지. 세계지도상에서 일본에 속한 하나의 작은 점으로만 그려졌던 대한민국(당시 조선)이 경제대국으로 세계 10위권을 넘나들며, 광복 후에도 남의 나라에 구걸로 살아가던 우리들의 청소년들이 지금은 당당히 어려운 국민을
1945년 8월 15일, 지금으로부터 65년 전 이 날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에게 항복함으로 한반도는 36년 아니 그보다 더 긴 세월의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바로 그 날이다. 그 날을 우리는 ‘광복절’이라 하여 해마다 기념하고 있다. 해마다 찾아오는 광복절을 ‘광복절 기념식’이라는 요식행위로 끝내고 말 것인가. 특히 65주년을 맞는 금년은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해로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과 맞물려 안중근 유골봉환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혜문스님이 주관하고 있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 등
며칠 있으면 새로 짓는 광화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다. 오히려 우울하다. 왜냐면 문화재청이 그 현판을 우리 글자 한글이 아닌 한자로 써서 단다고 하기 때문이다. 광화문 현판은 지난 40여 년 동안 한글현판이었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 광화문의 한글현판을 보면서 세종대왕과 한글을 떠올렸고 한없는 민족적 자긍심과 자신감을 얻었다. 나뿐이 아니라 많은 국민이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 다. 그런데 정부가 문화재를 복원한답시고 그 한글현판을 버리고 한자현판을 단다고 한다. 정부가 나라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한
문화재청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올해 광복절을 기점으로 원형 복원된 광화문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돼 1864년(고종 1년)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으로 다시 옛 모습을 찾았지만 1927년 일제에 의해 또 다시 제 모습을 잃은 뒤 엉뚱하게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되는 등 굴곡진 민족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이런 아픔이 있었으니 하루라도 빨리 광화문이 복원돼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공기(工期)를 몇 차례 앞당겨 7월 말까지 공사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에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 추모 붐이 일고 있다. 안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창작뮤지컬 ‘영웅’이 다음 달 개막을 앞두고 있고 한 조간신문에는 그를 소재로 한 소설도 연재 중이다. 순국 100주년이 되는 내년이 되면 아마도 각종 이벤트가 더 줄을 이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안 의사 재조명 열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한심스러운 일이 최근 빚어졌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졌지만 의사님의 동상이 국회에 사실상 방치된 사건이다. 사단은 이렇다. 재중 사업가 이진학 씨는 2006년 1월 16일 중국 하얼빈 광장에
8.15 광복절은 무력을 앞세운 일본에게 강제로 빼앗겼던 우리나라 대한제국을 되찾은 날이다. 이 날을 기념하여 축하 행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 가지 빠져 있는 사실이 있다. 일본에게 강제로 탈취당한 대한제국은 해방이 되면서 당연히 제자리로 복원되어야 했었다. 국가 정통성의 맥을 이을 대한제국의 황실은 제쳐두고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이 국민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미국식 민주공화국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황실 복원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 혼자만 오로지 새로운 나라의 임금이 되고 싶어 했다. 그가 자신도 왕족의 후
요즘 들어 유난히 우리 고유의 영토 또는 옛 영토를 지키고 되찾고자 하는 운동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독도, 이어도, 대마도, 심지어 간도는 물론 저 대륙의 유라시아까지다. 내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는 일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일조차도 잊고 살았으니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이 또 있을까. 그것은 무지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 무지했던 지난날을 깨닫게 하는 것 또한 우리 스스로의 깨달음이 아니라, 저들의 지나친 과욕이 오히려 우리의 눈을 억지로라도 뜨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동북공정은 물론 독도,
8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광복절. 지금으로부터 64년 전 우리는 일제의 압박과 설움에서, 아니 빛이 없는 기나긴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 빛을 다시 찾았다. 그 빛은 생명이었다. 다시 말해 생명을 찾았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그러나 그 빛도 잠시 뿐, 우리 마음의 빛은 퇴색되어 다시금 혼돈과 흑암의 어두운 터널에서 헤매이고 있었다. 양적 성장 또는 눈에 보이는 성장은 있었는지 몰라도 우리 영혼과 마음은 말 그대로 빛이 없는 어둠의 끝에 서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제 방향을 잃었던 정신은 한줄기 빛을 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