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교회는 몰락하고 있다.” 지금 이 말은 한국교회에서 나름 지도자로 인정받는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인 김동호 목사의 말이다. 그는 몰락의 이유로 대형교회의 세습과 국민일보의 사유화와 같은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으며, 특히 “국민일보는 한국교회 몰락에 크게 일조한 신문”이라고 꼬집었다.짚어볼 것은 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물이지 목회자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데서 비롯됐으며, 이 같은 오늘날 목회자의 인식은 목자로서 어긋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작금의 우리나라는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한류’가 될 것이다. 전 세계에 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정한 한류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듯이 지금의 한류가 있기까지는 우리 선조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인내와 긍지 그리고 창조적 예술성이 바탕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네 역사와 문화에는 생명력이 있기에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한국인지 일본인지 분간이 안 간다.” 가깝고도 먼 나라,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을 방문한 어느 관광객의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글 간판이 거리풍경이 되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한류의 성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엔 삼바의 나라 브라질의 카니발 축제 속에 한국 전통문화가 주목받는 일도 있었다. 미국인들 역시 한국의 명상법에 매료되면서 동양사상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故 이태석 신부의 희생으로 아프리카 오지 남수단에 뿌려진 의료한류 등 다양한 장르의 한류가 순풍이 되어 온 세계를 뒤덮어 가고 있다
우리 강산엔 유독 왕의 기운이 서려있는 왕의 도시가 많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도시가 있다면 전라북도 전주가 아닌가 싶다. 동쪽으로 내장산을 시작해 모악산 완산칠봉 등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하나의 도시를 형성해주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안에서 보면 마치 소쿠리 안에 쏙 들어 앉아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해서 지명까지도 완전(完全) 온전(穩全)의 의미를 담아 전주(全州)라 부른단다. 이 전주는 문명과 문화 또한 호남지방에서 제일 먼저 발달한 호남의 중심지였으며, 종교인 역시 가장 많은 종교의 낙원이기도 하다.이러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耳懸鈴鼻懸鈴)’라는 말이 있다. 정해 놓은 것 없이 둘러대기에 따라 다르다는 뜻으로 같은 사실을 두고도 자기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때 이르는 말이다. 이렇듯 잘못을 저지르고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상황이나 정황 증거 등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몇몇 사건과 사안들도 각기 해석하기 나름인 것들이 많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그렇고, 사법부 문제와 정치가 그렇다. 특히 사법부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참으로 많은 ‘OO녀’ ‘OO남’들로 넘쳐나고 있다. 무슨 일만 터지면 곧바로 인터넷에 ‘국물녀’ ‘폭행남’과 같은 말들이 올라온다. 사건의 진위여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도 전에 일방적인 글과 사진, 동영상 등으로 이른바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한 사람의 주장으로 말미암아 이미 상대방은 천하의 몹쓸 사람이 되어버린다. 최근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채선당 임신부 폭행사건도, 대형서점 식품코너에서 일어났던 일명 ‘국물녀’ 사건도 자신을 피해자라고 밝힌 이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상대방
현재까지 현 정권이 받은 점수는 역대 정권 가운데 최하위다. 물론 1년 남짓한 기간 만회하리라 믿으며 기대도 해본다. 실용과 중도와 통합을 표방하며 야심차게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 또한 기대만큼 크다는 얘기다. 특히 이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들의 정서에 가장 폐해를 끼친 것이 있다면 뭘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의식과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오게 했다는 것이다. 즉, 가장 정의로운 정부 같아 보이면서도 그 내면엔 가장 부정했고 부패했고 불의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또 숲을 보고 나무를 보지 못한
며칠 전엔 흔히 볼 수 있는 이기적 성격과는 사뭇 다른 시위가 있었다. 중국대사관 앞에서 연예인들과 함께 진행된 시위로 모처럼 동족애와 함께 눈물샘을 자극하는 애절한 시위였다. 내용인즉, “중국 정부는 우리 형제를 북으로 보내지 말라!”는 시위가 아닌 가슴 저린 호소요 절규였다. 또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의원은 이를 막기 위해, 아니 정부와 국회는 이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의미 있는 단식투쟁에 들어가기도 했다.그렇다. 지금 정부와 및 온 국민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해야 한다. 탈북민의 북송문제는 그 어떤 이유로도 성립돼선 안 된다.
구 서울역사 앞마당엔 오른손에 수류탄을 들고 비장하게 누군가를 응시하고 서 있는 노신사가 있다. 오늘따라 왠지 다시 한번 그 노신사의 생각과 사상과 사랑과 충절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 그동안 묻혀있던 그의 정신과 행적에 우리는 왜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걸까. 그것은 이 시대가 그와 같은 사상가를, 교육자를, 종교인을, 애국자를 진심으로 갈망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는 행동하는 교육자요 애국자요, 오늘 다시 우리 곁에 살아 돌아온 왈우(曰愚) 강우규 선생이다. 말은 있어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죽은 말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작금의 종교현실을 놓고 왜 이렇게 타락했을까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그 답은 사실 지극히 간단하다. 자신이 믿는 경서(經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인이 왜 자기 경서를 따르지 않는 것일까. 거기에도 분명 이유가 있다. 먼저는 경서를 봐도 그 참 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며, 한편으론 신이 정한 때가 되기까진 그 참 뜻을 알 수 없는 게 또한 신의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정한 때가 되기까지 신의 뜻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그 자체가 어쩌면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건이 있다. 바로 지하철 안에서 일어나는 볼썽사나운 모습에 대한 이야기다. 며칠 전에도 ‘4호선 막말녀’ 동영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일이 있었다. 영상에 따르면 지하철을 타고 있던 한 남성이 실수인지 좌석에 앉아있던 젊은 여성의 발을 잘못 차게 됐고, 이어 미안하다는 제스처로 보이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남자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은 계속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고 남성도 참기 힘들었는지 함께 욕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감정이 격해진 두 사람은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을 말세라고들 쉽게 말하고 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즉, 말세의 징조나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말세 현상이 뭘까 묻는다면, 부정과 부패라고 단언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사회와 나라는 지금 부패공화국이 되어 썩어가고 있으며 그 냄새는 천지를 진동하고 있지만, 그 냄새조차 맡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말세(末世)요, 썩는 정도가 회복불능 상태라면 말세지말(末世之末)인 것이며, 거짓되고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기의 만남!’ 10월 후진타오 중국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게 될 ‘5세대 지도자’ 시진핑이 14일 미국을 방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는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또 현재로서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치는 오바마 진영에선 이번 시진핑의 방문이 재선 승리의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차세대의 쌍두마차로서 이목을 받기에 충분하다.양국의 입장에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 상황은 더더욱 두 사람의 만남과 움직임에 신경이 쓰인다. 총선과 대선이라는 두 번의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정
과거 정치공방의 키워드 하면 떠오르는 게 ‘색깔론’이다. 그런데 요즘은 한 정당 안에서 반갑지 않은 색깔론이 다시 부활했다. 그것은 새로운 당명을 정하는 데서 빚어졌다. 지난 한나라당이 재창당 버금가는 쇄신을 위해 당명까지 갈아 치우는 과정에서 새롭게 채택된 당명이 바로 ‘새누리당’이다. 문제는 결정된 이 ‘새누리당’이라는 당명 채택을 놓고 당내 찬반론이 가열되면서 잠시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이어진 사실이 언론에 공개됐다. 남을 흠집 내고 죽이기 위해 도구화 돼왔던 색깔론, 그래서 이제 그만 잊고 싶고 그만하고 싶은 색깔론, 그
청소년 문제, 학교폭력, 깊이 뿌리내린 일진, 이 모든 용어들은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젠 모두가 나서는 걸 보아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대통령은 물론 정부가 나서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청소년의 정서불안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우선 인성(人性)은 없고 등수와 일류와 성장만 있었던 교육정책에서부터라 감히 말하고 싶다. 나아가 이를 부추겨 왔던 기성세대와 함께 그 중심엔 언론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요즘은 청소년들이 눈뜨면 접하는 것이 인터넷이다. 또 인터넷과 관련된 인터넷 문화다. 인터넷의 발달만 강조해 왔을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등 우리네 속담 중에는 말과 관련된 것이 유독 많다. 그만큼 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에 관련된 것 중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 손님이 음식점에 가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주문하자 요리사가 혓바닥 요리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이 손님이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요리를 주문했고 요리사는 또 다시 혓바닥 요리를 추천했다. 이에 손님이 화를 내며 그 이유를 묻자, 요리사가 건넨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요즘 이 나라가 해결해야 하고, 가장 중시 다뤄야 할 당면과제는 과연 뭘까. 또 이 같은 질문을 해온다면 뭐라고들 답할까. 왠지 궁금하다. 아마 정치·경제·국방·내집마련 등의 순으로 나열해 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만일 필자에게 물어온다면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 같다. 바로 ‘청소년 문제’라고 말이다. 요즘 나라 안팎이 시끄럽고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나라의 통수권자가 황급히 찾아간 곳이 있다. 그곳은 다름아닌 ‘학교폭력상담소’였다. 그리고 말했다. “감추지 말고 드러내야 한다”고, 또 “이젠 교장·교감 선생님들이 직접 나
며칠 전엔 무슨 난리가 나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기독교방송과 언론이 일제히 다룬 사건 아닌 사건이 있었다. 역시나 요즘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신천지교회와 관련된 기자회견이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불거지는 정례행사 브리핑 같기도 하고, 소요와 소란 같기도 하다. 다름아닌 10년 가까이 신천지교회에 몸담고 교육강사를 지내던 지명한 씨의 신천지 탈퇴 기자회견이었다.그런데 주목이 가는 것은 이 기자회견을 주관한 단체와 사람들은 신천지교회 성도들을 강제로 개종시켜오던 소위 이단 상담소의 강제개종 목사들이고 관련자들이며, 특히 신천지에
여러해 전 ‘여인천하’라는 드라마가 안방을 뜨겁게 달궜던 기억이 난다. 운명에 맞서 처절하게 살다간 정난정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린 작품을 드라마로 엮은 것이다. 윤원형의 첩으로 들어와 정경부인의 자리까지 오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여인 정난정이다. 동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면 바로 윤원형의 누나인 문정왕후다. 선조 때 지방에서 학문을 닦던 학자들이 중앙으로 진출해 사림파를 형성하고, 또 그들이 기록한 실록을 통해 문정왕후는 철저하게 악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남존여비가 시대의 정당한 가치관으로 인식되던 시
요즘 장안에선 죽음과 종교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인즉 이렇다. 삼성의 대부인 故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에서 비롯됐다. 고 이병철 회장은 살아생전 이 나라 경제발전에 괄목할 만한 기여를 한 사람임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는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세상적으로는 모든 것을 이룬 그였지만 정작 가져야 하고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선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해서와 왜 죽어야만 하는지, 종교란 도대체 무엇인지, 이 지구가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