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壬辰年)을 맞아 세계 많은 나라가 새 지도자 뽑기에 분주하다.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 대한민국 역시 제 18대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석 달이 채 남지 않은 18대 대선, 지난 19일 오후 3시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50)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대표주자 3人이 대선 당선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그중 마지막으로 대선 레이스에 합류한 안철수 후보를 알고 싶다. 안철수 후보는 어쩌면 자신의 의지라기보다 구태에 젖어 있는 대한민국 정치의 새로운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변화욕구가 만들어낸 인물이라 해도 틀리지는
한·중·일 3국은 요즘 영토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발목이 붙잡혀 있다. 오키나와에서 300㎞, 타이완에서 200㎞ 떨어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는 한일 간의 독도분쟁에 이어 중국과 일본의 격한 영토분쟁으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사태로 치닫고 있다. 이는 노다 총리의 몰지각한 역사인식이 빚은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변국과의 민감한 영토문제와 인정하고 사과해도 용서받지 못할 과거사에 대해 거침없이 부정하는 일본 지도급 인사들의 연이은 발언은 한국에 이어 중국인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한국과의 독도문제 외교전에서 일본 내
이 세상에는 많고 많은 종교가 있다. 그중에서도 유불선 삼도(三道)가 모든 종교를 대표한다. 왜 이 삼도가 대표 종교인가를 살펴보니, 사람의 도리를 설명하고 땅의 이치를 설명하며 나아가 하늘의 이치를 잘 설명하고 있으니 곧 ‘천지인(天地人)’이다. 이 유불선 삼도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400여 년 전 조선의 유학자이자 천문학에 능통하던 남사고 선생은 그의 저서 ‘격암유록’을 통해 “상제예언(上帝豫言) 성경설(聖經設) 세인심폐(世人心閉) 영불각(永不覺),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언서인 성경말씀을 세상 사람들이 마음
지난 7월 27일부터 17일간의 일정으로 개최된 제30회 런던 하계올림픽은 한국이 종합 5위라는 쾌거를 올리며 막을 내렸다. 19세기 말 프랑스人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고대 올림픽에서 영감을 얻어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올림픽 제1회 대회를 개최한 후 116년 동안의 대장정으로 지속돼 온 올림픽이었다. 이 근대올림픽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는 뭘까. 한마디로 ‘평화의 기원’이다. 그러나 세계사는 ‘평화’라는 이 올림픽의 의미를 무색케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진행돼 왔다. 제1회 올림픽이 개최된 후 1․2차 세계대전은
가수 타블로의 학력위조 의혹을 제기하며 비방을 일삼아 실형을 선고 받은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카페 회원 8명이 혐의를 인정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들은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타블로의 명예훼손에 대한 항소심 1차 공판에서 자신들의 혐의를 인정하며 타블로와 그의 가족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이들을 비롯해 타진요 회원들은 타블로의 스탠포드 학력 진위여부를 따지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왔다. 한 사람을 인신공격하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빌미로 진실을 왜곡해 피해자에게 정신적으로 큰
최근 조선일보가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 범인 고종석이라며 실었던 사진이 사건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번 오보사건으로 성폭행범으로 몰릴 뻔한 피해자 A씨는 범인이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이 엉망이 됐다고 한다. 개그맨 지망생이던 피해자는 이번 사건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까봐 노심초사 걱정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피해자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사진을 잘못 낸 것을 알고 나서도 바로 사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조선일보의 두 번째 실수다. 한 사람을 매장시킬 수도 있을 만큼 큰 실수를 저
오늘날의 개신교는 ‘개혁(改革)’이란 이름으로 탄생했다. 495년 전 마틴 루터(1483~1546)는 독일 비텐베르크 성문 앞에 ‘95개 반박문’을 게재함으로써 소위 종교개혁의 아침을 열었다. 당시 부정과 부패 그리고 타락으로 얼룩진 중세교회의 상징이었던 ‘면죄부(免罪符, 죄를 면하는 대가로 금품을 받고 발행한 증서)’ 판매에 대한 항거였다. 따라서 타락과 부패로 성서적 진리에서 멀어졌던 교회를 ‘말씀과 믿음’이라는 성서적 패턴으로 다시 돌이킨 복음의 전환기를 가져다 준 그날을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흉흉하고 각박한 세상이다. 갈수록 그 수위가 높아지는 학교폭력 사건들에 더해 연일 보도되는 성범죄 사건까지 아침에 신문을 펼치기가 무서워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경찰 발표에 따르면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은 범죄자가 1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강간과 강제추행 등 성범죄 사건이 8만 1860건이 발생했으나 아직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사건이 9189건에 이른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죗값을 받지 않고 세상을 활개 치며 다니는 범죄자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옛말에 ‘때린 놈은 다리를 못
이 세상에 ‘양심’이란 두 글자가 없다면 어떠할까. 그 양심을 양심으로만 가지고 있지 아니하고 선언으로 표출하는 살아 있고 용기 있는 양심가들이 있어 그래도 절망스럽지는 않다.“독도는 한국 땅이 분명하다.” “일본은 위안부 모욕을 사죄하라.” 이 구호는 한국인의 외침이 아닌 일본 양심세력의 외침이다. 그래서일까, 왠지 그 외침은 한국인에게 신선한 감동과 함께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일본천왕 사죄 발언으로 양국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가는 가운데, 끝없이 퍼져가는 일본의 우경화에 일본
인류는 문명과 함께 시작됐다. 시대마다 문명의 이기는 그 시대를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문화를 창조했다. 문화는 또 항시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며 한 시대를 풍미해 왔다. 순기능적면이 그 시대를 지배할 때는 문화의 꽃을 피워 문예부흥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역기능적 면이 엄습할 때면 그 시대는 부패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사조(新思潮)를 요구하게 되고, 결국 한 시대는 막을 내리며 인류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이처럼 지나간 인류의 역사는 거울이 되어 오늘을 비추고 있다면 오늘의 현실을 직시해 볼 수 있어야 한다.오늘날 이 시대 역시
언론이란 무엇인가. 권력과 기득권층에 붙어 취사선택한 사건만을 보도하는 것이 과연 언론이 할 일인가. 언론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론과 기자의 역할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것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언론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는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언론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맞서는 이유도 오늘날 언론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통일 독일, 우연이 아닌 그들만의 의식과 가치관이 오늘의 독일을 만들었다. 1939년 히틀러는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휘몰아 가면서, 무려 600만 명이라는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등 연합국에 의해 패전국이 되고 만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소련의 세력이 동유럽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았고, 중국은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는 계기가 마련됐으며, 결국 세계의 지배력이 서유럽국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예의 닻이다. 이것을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가 있겠는가. 일본이 독도 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58년 전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해 변영태 전 외교부 장관이 일본 정부에 보낸 우리 정부의 입장에 언급된 내용 중 끝부분에 기록된 결어다. 오늘날 우리의 영토 독도가 한일 간 영토분쟁에 휘말리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먼저는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세계 제2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찾아온 미국을 위시한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한 원인이 됐다. 한편으
우리는 나름의 신앙관을 가지고 신앙을 한다. 그러나 사실은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신앙세계로 인도한다. 사도 바울은 그 절대자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라고 하니, 이는 바로 하나님을 두고 이른 말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막연한 신앙을 하는 게 아니라 신앙을 하는 목적이 분명히 있다. 신앙인은 경서에 기록된 말씀을 믿는 것이며, 또 기록되기를 ‘구원과 영생’이라는 내세가 있으며, 그 내세관(來世觀)을 바라보고 가는 게 신앙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신
방송과 신문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둘 다 언론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볼 때 책임감이란 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일 것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 이것보다 중요한 언론의 기능은 없을 것이다. 단순히 보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도의 기능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억울한 일과 오해는 풀어주고, 잘잘못을 밝히는 일. 그것이 바로 언론의 존재 이유다.최근 출연자의 ‘직업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오른 SBS 리얼 다큐 프로그램 ‘짝’ 제작진이 ‘불방’을 선언했다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은 아닐 것이다. 언어폭력이란 말이 있듯이 요즘 일본은 한국을 향해 언어폭력을 넘어 그야말로 도발을 감행해 오고 있다. 도발에는 그만한 이유 또한 없지는 않다.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우리의 정치권이 있고, 이를 잘 알고 있는 일본은 그 틈새를 여지없이 파고들며 분열을 통한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국내 일부 언론마저 합세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물론 대한민국 대통령이 먼저 독도를 방문했고, 천황 거론 등 자극적 행동과 발언을 했다고 하는 세력이 우리 내부에서부터 있다. 왜 그러한
15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선 67주년 광복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념식 경축사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한층 거국적이며 거시적이면서, 국민과 동포들에게 자부심과 용기와 비전을 심어주는 내용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특히 광복절을 맞아 대통령으로서 ‘종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촉구’를 단호히 함으로써 독도방문을 시작으로 일본 정부를 향한 일련의 강경발언이 일회성 내지 상투적 구호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기회로 삼았다는 점에서도 의미는 크다고 본다.전문 가운데는 “광복의 ‘궁극적 완성은 평화적 통일’에 있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다(呼父呼兄)’고 서러워하던 일이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영토, 우리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땅’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치 크나큰 잘못이라도 되는 것 마냥 ‘독도’ 영유권을 두고 일본이 극단적인 대처에 나섰다.지난 10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다. 역대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국제적으로도 큰 이슈가 됐다는 사실이 차라리 더욱 놀라운 일이라면 일일 것이다.
오늘날 많은 지식인들이 나름의 자기 지식을 뽐낸다. 흔히 이르기를 이 시대를 표면적이든 이면적이든 ‘말세’ 또는 ‘종말’이란 말을 쉽게들 하고 있다. 인류 세계사를 보더라도 어느 시대고 이처럼 혼란한 상태는 늘 있어 왔으며, 그럴 때마다 많은 것을 연구해온 지식인들 즉, 정치 사회 종교 문화 등 그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자기 분야에서 많은 것을 연구해 온 소위 최고라고 하는 식자들 간의 치열한 논쟁은 항시 뜨거웠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많은 노력의 대가라는 부분에선 인정해 줄 수 있지만, 그 논리가 진리(眞理)가 될 수는 없다. 다시
찜통더위 못지않은 또 다른 열기가 지구촌을 후끈 달구고 있다. 신(神)의 역사는 쉬지 않고 운행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들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빠른 속도로 왕래하며, 그 지식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간다. 지금 인류는 한 목자를 통해 은혜와 진리,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새삼 맛보며 신앙이 회복됨을 스스로 느끼며 기뻐하고 있는 축제 분위기다.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의 1, 2차에 걸친 유럽 및 미주지역 계시록 강연은 세미나가 끝난 지 몇 주가 지났음에도 그 열기가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남미는 물론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