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영원한 베스트셀러’로 불리는 성경. 오늘날은 전 세계 언어로 번역돼 어렵지 않게 성경을 접할 수 있게 됐지만, 16세기 이전만 해도 평신도들에게 성경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 당시 성경은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4세기 제롬(Jerome)에 의해 번역된 라틴어로 된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성직자와 일부 라틴어 구사자를 제외하고는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성경은 성직자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평신도들은 오로지 성직자를 통해서만 성경의 내용을 듣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성직자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역경은 보약도 되고 독약도 된다. 시련은 위기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절망 속에 희망을 길어 올리고, 속수무책으로 좌절의 나락에 떨어지기도 한다. 모든 역경과 시련, 절망과 좌절은 일종의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에서 딛고 일어서면 겁날 게 없다. 다산 정약용의 어록이 기록된 ‘다산어록청상(정민 지음, 푸르메 펴냄)’의 내용 중 일부다. ◆탄생 250주년 맞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올해는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그의 업적과 생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찰스 토마스 스터드는 한때 “영국 최고의 선수”로 명성을 날리던 크리켓 선수였다. 하지만 캠퍼스 집회에 참석하며 회심한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중국과 인도, 아프리카 등지를 오가며 선교사로 새 삶을 살아갔다. ◆크리켓 선수의 꿈을 접고 처음 그가 선교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한 때는 캠브리지 대학의 크리켓 선수로 활동하던 시기였다. 유명 팀에 속한 스터드는 그 가운데서도 주장으로 활동하며 유능한 선수로 꼽혔다. 그런 그가 선교를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누려온 명성과 보장된 미래 등 많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것을 뜯어 보아라.” 잇큐스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 제자들을 불러 모아 봉투 하나를 건넸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절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런데 스님이 입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절이 경영난을 겪게 됐다. 제자들은 방안을 모색하던 중 잇큐스님이 남기고 간 봉투를 열어보기로 했다. 그들은 금전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줄 무언가가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봉투를 열었으나 봉투 안에는 이 같은 글이 적힌 종이만 있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어떻게 될 테니까.” 스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고운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가 미소를 짓는다. 동그란 얼굴에 곱게 머리를 빗어 올린 모습은 ‘한국의 어머니들’을 떠올리게 한다. 편안하고 따뜻한 모습 속에는 포근한 엄마의 마음, 그리고 한국의 정서가 담겼다. 심순화(카타리나) 화백은 ‘성화(聖畫)’를 그리는 작가다. 1999년부터 6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 그의 그림이 걸려 있다. 지난 2003년에는 세계적인 명소인 루르드에, 2007년에는 로마 교황청에 그림이 봉정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서울 ‘당고개 성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잘 된다고 기뻐하지 말라, 모든 것은 내 마음의 그림자다. 망한다고 슬퍼하지 말라, 모든 것은 내 마음의 그림자다. …그림자가 굽었다고 미워하지 말고 바로 서라. 내 마음이 바로 서면 온 세상이 바로 선다.” 청담스님의 생활 명상집 ‘마음꽃다발’ 내용의 일부다. 그림자가 굽는 것은 그 모습이 굽어 있기 때문이듯, 세상 모든 일을 대할 때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마음 법문’을 강조했던 스님은 여러 저서들을 통해서도 자신의 가르침을 전했다. ◆마음의 갈증 스님은 1902년 진주에서 태어나 보통학교에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필경 세상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인즉, 이 불량(不良)한 것을 능히 다 통일해서 안정되게 만들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조선 청년에게 있으니까, 그게 내가 제일 큰 희망을 가지고 있어.” 월남 이상재(1850~1927)가 1926년 남긴 ‘조선 청년에게’라는 육성녹음 내용의 일부다. 일제강점기, 교육과 계몽운동을 통해 청년들에게 독립정신을 불어넣고자 했던 그의 신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청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연설하기가 어려웠던 탓에 연설을 녹음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세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나는 늘 청춘을 꿈꾼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 진력할 때 나는 늘 청춘이다.” 벽안의 외국인으로 한국의 신앙인들을 위해 기도를 아끼지 않았던 대천덕(Reuben Archer Torrey) 신부의 말이다. 지난 6일 故 대천덕 신부의 아내 현재인(Jane Grey Torrey) 사모가 별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와 그의 남편인 대천덕 신부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대천덕 신부는 한국에서 기독교 공동체를 설립하며 영성운동을 일으키는 데 힘쓴 인물이다. 그의 부인 현재인 사모 또한 신앙의 동역자로서 대 신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 병이 있는데, 하나는 육신의 병이며, 다른 하나는 탐욕과 성냄과 같은 마음의 병이다. 육신의 병은 의술로 치료한다지만, 마음의 병은 어찌하겠느냐.” 의학전문학교 졸업을 앞둔 22살의 동산스님에게 용성스님이 물었다. 동산스님은 이 같은 물음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깨달음이 있어 졸업 후 범어사로 출가했다. ◆용성스님의 제자로 출가 ‘의사’라는 장래가 평탄한 길을 두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불가에 입문한 동산스님은 ‘능엄경’ 등을 익히며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과거 낙방, 아버지 사망, 친구로부터 당한 사기. 이같이 연달아 맞닥뜨린 시련에 김익두는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다. 시장에 가서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밤낮으로 술만 마시는 술주정뱅이 생활을 했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던 깡패 이에 사람들은 그를 ‘안악골 호랑이’ ‘망나니’라고 부르며 “오늘은 김익두만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성황당에 빌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만큼 김익두는 사람들에게 무섭고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에게 일생일대의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길을 가던 중 우연히 선교사가 건넨 전도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올해 김 마리아 선생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김 마리아는 일제강점기 여성으로서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김 마리아 같은 여성동지가 10명만 있었다면 한국은 독립을 이뤘을 것”이라는 도산 안창호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가 보여준 독립에 대한 의지와 정신은 대단했다. 마리아는 세례명이자 이름으로 기독교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다. ◆2.8독립선언 참여 3.1운동
영화 ‘선라이즈 선셋’으로 본 그의 삶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세계인의 칭송과 존경을 받는 종교 지도자의 하루는 어떨까. 영화 ‘선라이즈 선셋(감독 비탈리 만스키)’은 달라이 라마 14세의 하루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살아있는 부처’ ‘영원한 스승’으로 불리는 그는 티베트의 정치․종교지도자이지만 국경과 종교를 초월해 존경받는 인물이다. 매년 수천 명이 그의 설법을 듣고자 히말라야의 다람살라를 찾는다. ◆소탈한 일상, 천진난만한 웃음 사람들은 그의 삶속에서 거창한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 본 그의 하루는 매우 평범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조선을 대표하는 명재상인 ‘황희(黃喜, 1363~1452)’는 당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존경받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태종과 세종으로부터 신임을 얻어 24년간 재상의 자리를 지키며, 조선 ‘최장수 재상’에도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그가 오랜 기간 재상직을 유지하며, 존경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로는 원칙적이고 소신 있는 정치적 성향, 청렴함,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성품 등이 꼽힌다.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도 황희 정승과 같은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눈을 감고 100년 뒤를 생각해 보라. 지금 보이는 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대가 피곤해지고 우울하고 화가 나는 것은 현재 상황에만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수많은 파도에 흔들린다. 그러나 그대는 파도가 아니다. 그대는 바다다. 바다에는 탄생과 죽음이 없다.” 베트남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釋一行)스님의 말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힘과 용기를 얻는다. 달라이 라마와 함께 생불(生佛)로 불리는 그의 직업은 스님, 명상가, 평화운동가, 시인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마포삼열(미국명 사무엘 오스틴 모펫, 1864~1939) 목사는 미국인임에도 죽는 순간까지 한국을 사랑했고, 그리워했다. 미국에서 생을 마감하며 그가 남긴 말은 “한국 땅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3.1운동 등 격동기 속에서 신학교를 설립하는 등 초기 한국교회 발전의 밑거름을 마련했다. ◆악조건 한국 땅으로 향하다 그가 선교를 위해 한국 땅으로 건너올 당시 우리나라는 시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놓여 있었다. 각종 질병이 난무하고 외국인에 대한 배척 또한 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을 알고도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남을 꾸짖을 마음으로 나를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남을 대할 땐 봄바람처럼 대하고, 스스로 자숙할 땐 추상(秋霜, 가을의 찬 서리)같이 하라.” 남에게는 관대하되 자신에게는 엄격하라는 가르침이 담긴 경봉스님의 말이다. 그의 후학들은 그를 온화하고 검소하며, 따뜻한 가르침을 베풀었던 스님으로 기억한다. 189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경봉스님은 소년시절부터 이치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7살 때 한학자 강달수 선생으로부터 ‘사서삼경’ ‘명심보감’ 등을 배우며 표면적인 내용보다 그 안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이번에 자네가 북경에 가게 된 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참된 뜻을 가르치고자 하시는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좋은 기회네.… 천주교리만이 성현의 도(道)이며, 만물을 만들어낸 주인인, 오직 하나뿐이며 모든 일이 가능하신 천주에게 봉사하는 참된 교(敎)이네. 자네가 가서 이 같은 문제의 참된 뜻을 밝히고 자세히 살피고 오게. 인간이 죽느냐 사느냐, 영원히 행복하느냐 불행하느냐 하는 큰 문제가 자네 손에 달려 있네.” 이 같은 말을 들은 이승훈의 어깨는 무거워졌고, 자기가 맡은 사명을 반드시 이루고 말리라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동학이란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한 것이다. 나라를 병들게 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는 마땅히 물러나야 한다.” ◆민권ㆍ민족 지키고자 일어나 전봉준(1855~1895)은 어릴 적 체구가 작고 왜소해 ‘녹두(綠豆)’라 불리면서 훗날 ‘녹두장군’이란 별명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그는 백성을 억압하는 봉건제로부터, 우리나라를 침탈하려는 열강으로부터 민권과 민족을 지키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민중을 이끌었던 지도자다. 그가 살았던 조선 말은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횡행하는 등 사회적으로 문란하고 혼란한 시기였다.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저는 팔도, 다리도 없지만 한계도 없습니다.” 며칠 전 ‘희망 전도사’ 닉 부이치치(Nicholas James Vujicic, 29)가 결혼식을 올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인터넷엔 축하글과 함께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 받았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팔다리가 없이 세상 밖으로 나왔던 그가 살아온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혔던 사람들은 그가 이룬 또 다른 희망에 전율을 느꼈다. ◆그의 직업은 ‘희망 전도사’ 그의 직업은 전 세계에 희망을 전하는 ‘희망 전도사’다. 지금까지 24개국을 돌며 수백만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뼈를 수고롭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고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행하고자 하는 바를 어지럽게 한다. 이는 이 사람의 마음을 분발하게 하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맹자 고자편-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맹자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다. 맹자는 큰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시련을 극복하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