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어른들이 하는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다. 요즘 시절이 하수선하다 보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끊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라는 언지부터 던지고 싶다.‘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했듯이, 이 세상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을 것이다.유난히 우리 민족은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을 근본으로 삼아 왔다. 하늘을 경외(敬畏)하고 인간을 사랑하라는
2008년, 우리나라 최초(여성)의 우주인 이소연씨는 우주에서 본 지구를 ‘천국’이라 감탄했다. 하지만 그 천국과 같은 지구촌의 실상은 어떠한가.얼마 전 미국은 아프카니스탄의 20년 전쟁을 결론도 못 내린 채 철수했고, 미국이 떠난 자리엔 점령군 탈레반이 차지하면서 세계는 다시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20년 전,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이슬람 근본주의자, 수니파)는 미 본토를 겨냥한 사상 초유의 테러를 감행했다. 소위 말하는 9.11테러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은 즉각 전쟁을 선포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왔지만 소모전만 이어
우리 민족에겐 예부터 하늘로부터 받은 지상명령 같은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천기누설을 하지 말라’였다. 그 명령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늘까지 습관처럼 믿어 왔으며, 왠지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과 의무감으로 살아온 기이한 민족이다.또 인간에게만 유독 허락된 것이 있다면 본능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달리 학문을 탐구하고 익히며 살아갈 수 있는 이성이며 지각이다.우리 국문학에도 예부터 흐르는 기조가 하나 있으니 권선징악(勸善懲惡)이다. 이 선과 악은 일반 세상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선악을 넘어 종교적 관점에서 고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본능이 아닌 이성으로 살아간다는 데 있다. 그 이성으로 인해 짐승과 차별성을 가진 고귀한 선물 하나를 받은 게 있으니 곧 ‘학문(學問)’이다.그래서 공자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아라 하지 않았던가.이제 이 학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인간이 학문을 익힌다는 데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뭔가 반드시 알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성 내지 강제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그러한 학문에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데 있어 ‘행복 추구’ ‘명예’ 등의 가치를 위해 배우고
난세(亂世)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난세가 오는 것은 그 시대(나라)를 이끌만한 인물이 없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게다. 그와 반대로 난세가 왔기에 이 땅엔 위인도 인재도 인물도 없으며, 그저 모든 게 아사리판(개판, 난장판)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군계일학(群鷄一鶴)을 찾아보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일 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어쩌면 ‘난세에 영웅’이 왔어도 세인은 소경과 귀머거리가 되어 도무지 알아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지금 이 나라 정치판이 그렇고 종
흔히 지금의 때를 일컬어 난세라 하며, 이구동성으로 말세라 한다. 난세와 말세엔 징조가 있다. 지금 세상은 홍수와 화염과 지진과 기근과 질병(코로나, 델타 변이, 람다, 탄저균, 에볼라 등)이 지구촌을 집어삼킬 기세다.하지만 인류는 언제나 있었던 일들이니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두려워하면서도 안일하기 그지없다.세상뿐만이 아니다. 종교세계의 영적상태도 이미 바닥을 쳤다면 겸손한 대답이다. 영적 기근과 부패가 도를 넘어 독주를 마신 듯 혼수상태가 된 지 오래다. 그 결과 하나같이 미쳐 비틀거리며 천지를 분간치 못하며 어두운 구덩이 속으
이치(理致)를 아는가. 섭리(攝理)를 아는가. 우주와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으신 우주 만물을 다스려 가신다.그 다스림의 기준이 바로 이치며 섭리가 아니겠는가. 이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진리라 하고 법칙이라 한다.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이천 년 전 사도 바울은 이 진리와 순리를 역리(逆理)로 바꾸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禽獸)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탄식했다. 나아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지음 받은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있다고
필자는 오늘도 이 세대에 권고하고 충고하고 권면하고 부탁하고 호소하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귀가 열려 듣게 되는 날이 있으리라는 강한 믿음 때문이다.익히 경험해 보지 못한 현상들이 지구촌을 엄습해 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흔히들 재앙이라고들 말한다. 이 대목에서 분명히 할 게 있다. 지난날 의례히 찾아오는 더위와 유행성 계절병과 같은 상습적 현상과는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종교가 증명해 주고 또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口傳)로도 짐작이 가능해지는 ‘그날’ 곧 말세며 말세현상이라는
공자께서 기록한 논어 1장을 열면 맨 먼저 학이(學而) 편에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그때 그때 그 배운 것을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다. 즉, 논어의 일성은 배우고 익히기를 권면하고 있다.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 사람들이 배우고 알아 깨달아야 할 게 뭘까. 또 그 알고 배움의 끝은 도대체 어디며 무엇일까. 이 땅의 것일까 아니면 저 하늘의 것일까.이 세상의 학문도 학자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정녕 이 마지막 때 땅(세상)의 것보다 더 높고 귀한 학문은 하늘의 학문 곧 종교가 아닐까. 이 높고 높은 학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경서의 가르침이 있으며, 이는 또한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대는 천지분간을 못해 새 술을 모르니 담을 부대 역시 있을 수 있겠는가.이천 년 전,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빛(예수님)이 왔건만 약속대로 찾아온 빛을 깨닫지 못하고 전통과 유전과 세상 풍속만을 고집하며 찾아온 빛을 배척했다.지금 새 시대가 왔고 낡은 전통이 아닌 정통 계시(종교)로 세상을 밝히고 있지만 외려 핍박하고 저주하며 죽이기까지 하며 받아 주질 않는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고
지금 지구촌은 믿든지 안 믿든지 대환란의 때를 맞고 있다. 이 사실을 아는가 아니면 알고도 모른체 하는가. 코로나19 백신도 무색케 하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온 지구촌을 집어 삼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온 세계는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사람의 생각으로 원인과 해결책을 급하게 내놓고 있지만 ‘글쎄’라는 생각이 앞서는 건 왜일까. 그래도 노력은 지속돼야만 한다.2030 등 사람에게 원인과 책임을 전가하고 회피하기에 바쁘고, 지구촌 수많은 학자와 최고전문가들의 원인과 분석 나아가 해결책은 수만 가지니 과연 답은 어디에 있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고 했다. 또 있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눅 12:56~57)”라고 했다.필자가 이 같은 글을 쓰는 데는 일반적인 글을 쓸 줄 몰라서가 아니다. 지금 이 시대가 듣고 읽고 알고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없어질 글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와서 알 게 된 게 한 가지 있다. 알 수 없었던 것은 무식해서라기보다 때가 되기까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고,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알게 된 그것은 바로 ‘양식(糧食)’이다. 이 양식은 육신의 양식이 있고, 영의 양식이 있음을 알게 됐다. 육신의 양식도 먹어야 할 양식이 있고, 먹어선 안 되는 양식이 있듯이, 영의 양식 또한 먹어야 할 양식이 있는 반면 먹어선 절대 안 되는 양식이 있음도 알게 됐다.육신이 양식을 먹지 못하면 육신이 죽는다. 하지만 우리 육신이 먹는 양식은 육신을
작은 거인, 1931년생 우리 나이 91세 HWPL 대표 이만희, 누가 이 사람을 아는가. 누가 이 사람을 보았는가. 아니면 이 사람이 죄인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람이 의인인가 말해보라. 왜 말을 못하는가.이 사람은 대동아 전쟁(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고, 해방 후엔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의 현장에서 조국의 산하를 지키기 위해 전우들과 함께 피를 나누었던 6.25 참전용사(보병 제 7사단)이기도 하다.모윤숙 시인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글을 남겼지만, 지금 91세 노병(老兵)은 살아서 말을 하고 있다. 그날 준비
지금 세상엔 많은 징조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나타나는 징조를 아무도 느끼고 깨닫지는 못하는 것 같아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천년 전 유대 땅에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은 천기는 분변하면서 왜 오고 가는 이 시대를 분변하지 못하느냐고 안타까워 하셨다.지금 이 시대도 많은 징조가 일어나고 있지만 느끼고 깨닫는 이는 없는 것 같다.그 징조는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보이며 이 시대를 향해 깨닫기를 강요하고 있다.엊그제는 국민의힘 당 대표로 관록의 정치인들을 제치고 36세의 이준석 후보가 당선됐다. ‘
요즘 홍수처럼 쏟아지는 보도 가운데서 유독 눈에 띄는 기사 하나가 있다. 모 언론에서 다룬 ‘개신교계, 개척교회보다 문 닫은 교회 더 많아’라는 제목의 기사다.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예배가 중단되고 교인 수가 줄고, 그 여파로 헌금이 줄어들어 문 닫는 교회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런 일이 없더라도 실제적으론 2019년부터 이 같은 현상은 이미 시작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보도 내용이다.이 말인즉슨, 한국교회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며, 어쩌면 이미 무너졌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지구상엔
현 문재인 정부는 훗날 아주 특이한 기록 하나를 남기게 될 것 같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치국가의 수뇌부 법 집행자들의 한결같은 기이한 기록에 관심이 쏠리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 최초 법무부장관인 박상기 전 법무장관은 현 정부가 끈질긴 집념으로 출범시킨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 수사대상이 됐고, 조국 전 법무장관은 익히 아는 바고, 현 박범계 법무장관은 물론 이용구 법무차관(사퇴) 나아가 현 정권이 가장 신뢰하는 이성윤 중앙지검장 등 일제히 검찰에 기소된 상태에 있다.법치국가에서 법 주무장관은 물론 관계자들의 웃지
94세 노병 ‘랠프 퍼켓’은 최고 명예 훈장… 같은 전장 91세 노병 ‘熙’는 구치소 형벌이달(5월)이 가기 전에 꼭 남기고 싶은 글이 있다. 5월 하면 어린이와 어버이와 스승을 한 번쯤 떠올려 보게 되는 가정의 달이다. 특히 이달은 부모님과 스승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5월의 신록만큼이나 아름다운 달이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감사의 마음은 퇴색 돼갔고, 진흙탕이 된 세상 속에서 희석돼가고 있다. 제자가 스승에게 욕을 하고 구타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교권은 무너졌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형제
예부터 우리나라를 동방(東方) 민족 또는 동이(東夷) 민족(동이족)이라 불렀다. 이 동방(東方)은 동방(東邦)과 달라 동방(東方)의 숨은 참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방(東邦)의 ‘방(邦)’은 나라 방으로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어떤 나라를 기준으로 했을 때 동쪽에 위치하는 상대적 표현이 된다.반면 동방(東方)의 ‘방(方)’은 방위(방향)를 뜻하고 있으니 ‘동쪽 방향’을 의미하고 있다. 동쪽 방향이 가리키는 상징적 의미가 또 있으니 그것은 ‘해가 뜨는 곳’이다.그런데 지금 우리가 대대손손 터를 잡고 살아온
흔히들 재주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컬어 ‘인재(人才)’라 부른다. 여기서는 일반적 의미보다는 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인재를 말하고자 한다. 특별한 의미의 인재에 대해 ‘영웅’이란 표현으로 대신하면 어떨까.‘영웅(英雄)’이라 함은 세상의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거나 그 가치를 대표할만한 사람, 곧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 세상을 이끌고 세상을 경륜할만한 인물을 이른다.고담(古談)에 의하면 이러한 ‘영웅은 난세에 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난세(亂世)’는 어떻게 정의할까. 난세는 송구(送舊) 즉, 한 시대가 말세를 맞아 더 이상 희망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