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랑 꼭두박물관 관장 2년여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989년 3월 8일에 동숭아트센터가 개관되었다. 그동안 내가 해온 꼭두극단 낭랑, 계간지 꼭두극, 그리고 연기자를 양성하는 아리 아카데미 등의 작업이 동숭아트센터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동숭아트센터는 ‘전통의 현재적 재창조’라는 설립이념 아래 한국 공연문화의 활성화를 꾀하고 역량 있는 예술가를 지원하고자 만들어졌다. 동숭아트센터는 연극, 음악, 영화,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민간 복합문화공간이기에 당시 많은 언론과 문화계가 큰 관심을 보였다. 개관
김옥랑 꼭두박물관 관장 동숭아트센터 개관을 준비하면서 한 해 앞선 1988년 3월에 아리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공연장이라는 하드웨어를 채워줄 콘텐츠가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문 연기자의 재교육 및 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최형인, 김광림, 윤호진, 기국서, 한무, 손진책, 김아라, 이원경 등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로 강사진이 구성되었고, 한국적 연기술을 체계화하고 이론화하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졌다. 태껸과 수박치기를 기본으로 한 동작훈련인 기본 신체훈련, 발성 및 시창 훈련, 연기술 등이 그때의
김옥랑 꼭두박물관 관장 꼭두와 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70년대 초반 무렵이다.버려져 있다시피 한 꼭두 하나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 청계천 어느 골목에서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꼭두는 두 발로 곧게 선 채 당당히 왼손을 치켜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삶의 고통을 모두 이겨내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은 한 여인을 보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위로 받는 나 자신까지 보았다.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를 우연히 만난 꼭두 하나가 치유해 준 셈이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꼭두와 함께 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첫 만남에
조영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로봇/인지시스템연구부 공학박사 국내 한 통신사의 TV 광고를 보면 한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구름에서 무언가 정보를 다운 받아 유용하게 사용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요즘 정보통신계에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가장 쉽게 설명하지 않았나 싶다. 세계 시장조사 기관인 가트너는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여 다수의 고객들에게 높은 수준의 확장성을 가진 자원들(소프트웨어, 스토리지, 서버, 네트워크 등)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컴퓨팅의 한 형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권태균 아리랑 응원단 단장으로부터 처음 계획을 들을 때 잘만 하면 또 하나의 대표적인 민족 응원가가 만들어질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인 ‘독도’와 민족혼의 노래 ‘아리랑’을 융합시킨 ‘독도 아리랑’이라는 응원가를 세상에 내놓겠다는 것이었다. 독도와 아리랑은 한민족이라면 가장 많이 듣고 말하는, 민족의 영혼을 적셔주는 유무형의 유산들이 아닌가. 평소 민족의 혼 살리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그가 준비하는 만큼 기대가 매우 컸다. 그는 지난 4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개관 기념으로 ‘더 아리랑’
지난 7월 3일부터 7일까지 30여 분의 국회의원들을 모시고 중국 동북지방의 독립운동 및 발해 관련 유적지, 백두산 등을 다녀왔다. 필자의 과문의 탓일지 모르지만, 국회의원 30여 분이 함께 해외 역사탐방에 나선 일은 초유의 일이 아니었나 한다. 국희 의정활동과 지역구 관리, 다른 공식일정 등이 많아 매우 바쁠 것으로 생각되는 국회의원 30여 분이 5일 동안 동시에 움직인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일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제2차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참배단’의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 및 청산리독립전쟁 승전 90주년
올해로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을 맞았다. 안 의사 의거는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암살하고 피지배국의 설움을 삭히고자 했으며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의지를 만방에 천명한 기념비적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온 세계가 놀랐다. 중국이나 러시아 역시 작은 나라 조선에서 이런 의거를 감행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경이를 표했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 현재 의거 현장인 하얼빈 역에는 변변한 안내문조차 없고 현장을 알리는 삼각표시만 자리를 잡고 있어 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