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알렉산더가 죽은 후 에페수스는 그의 부관들이 잇달아 승계하는 암흑기를 거쳤다. BC 287년 알렉산더의 부관이었던 Lysimacus가 에페수스에서 독립했다. 그는 BC 299년 초대 이집트 파라오였던 프롤레마이오스의 딸 아르시네와 결혼했다. Pion산맥과 Coressus산맥 사이에서 그는 헬레니즘 시대의 전형적인 계획에 따라 거리를 직각으로 자르고 Hippodamus라는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재건했다. 그는 아내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의 이름을 아르시나에라고 불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 따르지 않았
인류가 평화롭지 못하고 늘 아비규환과 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 의문을 갖는지도 궁금하다.범사엔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 했으니, 그 근본 이유를 찾아보자.고민 끝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모든 민족 모든 나라엔 실질적인 자주권과 자결권이 없다. 이는 다른 말로 실질적 주권 국가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며, 나아가 누군가에 식민지 아닌 식민지화 돼 있다는 얘기다.이 같은 현상은 인류가 시작되면서 이미 시작된 걸로 봐야 하지만, 특히 20세기
예부터 “천지분간 좀 하고 살거라”라며 부모님이나 이웃 어른 나아가 직장 상사한테 듣지 않고 자란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이는 한마디로 분별력을 가지라는 어른들의 책망이며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다.우리는 무심코 내뱉는 말이지만, 언중유골(言中有骨)이란 말처럼 그 말속엔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이를테면 “말이 씨가 된다” “복 받아라, 복 받아라” “용용 죽겠지” 등 구전돼 내려온 ‘말말말’ 속엔 깊은 의미를 넘어 엄청난 비밀이 내재 돼 있었다.예부터 구전되고 배달돼온 말은 사실 장차 이룰 예언이었다.
5월은 밉도록 아름답다. 계절의 향기와 색깔 또한 눈부시게 아름답다. 오월의 색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변해가며, 두 가지 색깔이 공존하는 오월은 미치도록 아름답다.그래서 예부터 시인들은 5월은 여왕의 계절이라 했던가.이처럼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주는 5월에 앉아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마음에 간직한 진정 아름다운 향기를 느끼고 또 아름다움을 노래해야 한다.이 5월엔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고 나아가 스승의 날이 있기 때문이다.이 5월은 다른 특정일과 달리 생각하게 하고 기억하게 하고 느끼게 하고
세상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현세(現世)며,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이 있으니 앞으로 도래할 세상 곧 내세(來世, 오는 세상)다.즉, 세상은 이처럼 현세와 내세로 구분돼 있음을 알아야 한다.이즘에서 생각해 볼 것은 세상은 인간세상을 뜻하며, 이 인간이 살아가고 또 살아갈 세상이 이처럼 나뉘어져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눈에 보이는 이 세상 곧 현세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므로 보이는 것을 위해 애쓰며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세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신의 섭리 가운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3년여 만에 열린 신천지예수교회 이만희 총회장의 요한계시록 강해에는 마치 파도를 연상케 하는 관람객 행렬부터 행사에 참석한 목회자들이 쏟아내는 찬사까지 하나하나 다 예상 밖이었다. 신천지예수교회는 지난 22일 서울을 시작으로 30일 부산, 6일 대전까지 ‘요한계시록 계시 성취 실상 증거 말씀대성회’를 세 차례 개최했다. 이 교회는 기성교단으로부터 공격받고 있음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국내 종단 중 거의 유일하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이 세상이 존재하고 유지하고 발전해 나가기 위해 절대 필요한 게 있다면 각자의 역할이다. 인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 중 한 가지가 있으니 기자(記者, reporter)라는 직업군이다.기자의 역할은 독자(시청자, 국민)들에게 사회와 나라 나아가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보(뉴스)를 편견과 가감 없이 신속 정확하게 알려야 하는 아주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이제 생각해 볼 것은 일반적 기자의 사명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또 다른 차원의 기자도 있음을 알리는 바다.우리는 흔히 형
우리의 자아(自我)는 무의식 가운데서도 늘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누구’는 과연 누구일까.어쩌면 인생은 그 누구를 막연하게 ‘님’이라 여기며 기다려왔고, 그리움의 대상으로 늘 사모하며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그렇다면 그 그리움의 대상인 님의 실체는 누굴까. 그 님의 실체는 생명이며 나아가 생명을 주는 그분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말이다.사망 권세 아래 있는 이 세상에서 아니 생로병사의 굴레 속에서 영원히 함께하는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으며
땅끝 동방(東方) 한반도 남단 동쪽과 서쪽엔 예사롭지 않은 큰 산이 각각 위치해 있다. 동편엔 온 인류가 와서 기댈만한 ‘큰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대구(大邱)를 품고 있는 ‘팔공산(八公山)’이 있고, 서편엔 ‘빛고을’이라는 뜻을 가진 광주(光州)를 품고 있는 광주의 어머니 산 곧 ‘무등산(無等山)’이 있다.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은 각기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은 이름값을 하게 된다.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이름처럼 된다는 의미며, 이는 만고불변의 이치 중 이치다.그렇다면 지음 받은 이름은 예언이며 그 예언은 정한 때가 되면 이름
홍익인간(弘益人間), 이 홍익인간은 우리민족의 건국이념이다. 먼저 이념이란 정치적 또는 종교적으로 협의 또는 광의로 그 의미를 제각각 정의하고 있으니, 한마디로 단정적 답을 내리기는 곤란해 보인다.그런 가운데서 필자 또한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려 보고자 한다.먼저 이념(理念)이란 직역해 보면 ‘우리의 생각을 다스린다’는 뜻이며, 생각을 다스릴 수 있다는 데서 정치적 접근이 아닌 종교적 접근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답을 조심스럽게 얻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생각을 다스릴 수 있는 주체는 영(靈)이기 때문이다.사전적으로나 종교의 경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 중에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고향(故鄕)이 아닐까. 고향 나아가 고향을 품고 있는 조국일 게다. 그 이유는 아마 자기가 태어난 곳이며, 나아가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 그리고 형제가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수구초심(首丘初心), 이는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며, 또는 죽을 때라도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짐승도 그러할 진데 적어도 인두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오죽할까.이처
지나간 역사는 그저 역사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지나간 역사 속엔 오늘과 내일이 담겨 있기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한 것이 아닐까.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아니 그 이상으로 들어봤음직한 괄목할만한 시(詩) 한 편을 소개해 볼까 한다.그 시 속엔 우리 민족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애환이 깃든 역사가 있고, 그 아픈 역사는 역사로만 끝나는 게 아니며 오늘날을 알리는 미래가 숨어있었다면 얼마나 믿을까.그 시는 바로 ‘동방(東方)의 등불’이며, 시를 쓴 시인은 인도(현재 방글라데시)의 ‘타고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 14일 창립 39주년을 맞았다. 기독교 독립교단인 신천지는 2020년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돌아보면 문 열어두고 방역하면서 중국발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자국민에게 덮어씌우려 했던 정치적 마녀사냥의 희생양이었다. 당시 급성장세로 기성교단의 미움을 받던 신천지는 상대적으로는 신도수가 적어 ‘마녀사냥’하기 딱 좋은 조건을 구비했던 셈이다.하지만 요즈음 신천지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로 교인수가 급감하는 기성교회와 달리 악풍을 딛고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기 때문이다.신천지는
인동초(忍冬草)의 절절한 외침… 우이독경(牛耳讀經) 되지 않기를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 그리움의 대상이 누굴까. 그리움의 대상을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그러함에도 왠지 늘 그리워한다.그 그리움의 대상은 단순 부모 가족 연인 친지를 떠나 막연하게나마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살아왔다면 틀림없다.어쩌면 기다림 그 자체가 우리 인생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이 그리움의 대상을 만나기 전엔 늘 불완전한 상태가 돼야 했고, 그 불완전 상태는 늘 우리를 죽음이라는 이별로 귀결
천지일보가 독자참여코너로 가로세로 낱말 퀴즈를 연재합니다. 낱말 퀴즈는 가로세로 낱말퍼즐 저자로 잘 알려진 김수웅 선생이 직접 출제한 퀴즈가 격주로 게재됩니다. 퀴즈에 응모하는 독자 중 5분을 추첨해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증정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 올해로 104주년을 맞는 삼일 운동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3. 군산 출신으로 최익현과 함께 거병했던 구한말의 의병장으로 단식 순국함5. 나라가 망해 없어짐. □□의 후손들은 조국이 없는 설움을 당해야 한다7. 훈구파의 반대로 기묘사화를 불러일으켰던 조선 제11대
길, 이 길은 도(道)라고도 한다. 온 세상은 온통 길이며, 모든 게 길로 연결돼 있다. 길은 왜 있는 걸까. 길이 존재하는 이유는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다.반대로 목적(지)이 없다면 길이 필요 없고, 목적지가 있어도 길이 없다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없다.이것이 만고의 이치며, 따라서 길과 목적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 필요충분조건과 같다.그렇다면 범사엔 목적이 있다 했으니, 우리 인생은 도대체 어떤 목적이 있을까.인생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 봄직도 한데, 진정 생각해 봤는가. 이 목적은 어느 개인이나 특정 계층에 한정된 게 아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아이고, 여기서 그렇게 부르면 안 돼요. 안돼.”지난달 2일 낮 12시 30분쯤 돼지 수육과 소고기 국밥 잔치가 한창이던 대구 북구 대현동 이슬람사원 공사장. ‘이슬람사원 건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의 A관계자에게 “목사님!”이라고 불렀더니 황급히 돌아온 말이다. 주민들은 그를 ‘목사님’이라고 불렀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A관계자는 “여기에서 나를 목사로 부르지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대구 북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두고 여전히 시끄럽다. 최근에는 사원 건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돼지머리 등을 내걸
하늘이 어디일까. 저 푸른 창공이 하늘이라면 ‘떨어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진다 했으니, 이 땅에 세워졌거나 창조된 것이 부패하고 낡고 쇠하여지고 잘못돼 없어지는 게 분명해 보인다.천지일보를 통해 늘 말해왔듯이, 이제 때는 바야흐로 형이하학적 시각에서 벗어나 형이상학적 시각과 차원으로 우리의 생각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니 찾아온 시대가 강하게 요구하는 바다.경(經)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땅에 속한 이는 땅에 속한 것을 말하고, 하늘에 속한 이는 그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한다’고 했으며, ‘육에 속한 사람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의식 속엔 이미 생로병사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과연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뜻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죽기 위해 사는 모순의 주인공인 셈이다. 세상사 모든 것이 이와 같으니 ‘짜가 세상’이라 하듯, 우리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모순과 거짓과 왜곡의 세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사에서 이 같은 모순과 타협하지 않고 창조주께 따지듯, ‘이 생로병사가 어디서 왔습니까’ 또 ‘하나님의 뜻이 생로병사가 맞습니까’ 하
지금은 천지분간(天地分揀)의 때다. 오랜 세월 민간에 전해 온 ‘천지분간 좀 하며 살라’고 한 것도 이때를 염두에 둔 말이다. 경(經)의 시작과 끝에도 ‘천지’며, 한자 공부의 시작도 ‘천지’다. 이는 천지분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지금의 때는 형이하학적 차원이 아닌 형이상학적 차원의 시대라는 정도는 알아야 한다. 즉, 문자 그대로도 아니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찾아야 하는 시대 즉, 형이상학적 차원의 시대니 곧 계시(啓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