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갓 공장(工匠)좌판을 열고 갓을 고치거나 만드는 공장(工匠)의 모습이다. 신분에 따라 갓의 종류가 다르지만, 대부분 말총이나 대나무를 실처럼 가늘게 쪼갠 죽사(竹絲)로 만들었다. 물방앗간‘물방아’ 또는 ‘벼락방아’라고도 불리는 통방아와 통방앗간의 모습이다. 통방아에는 고깔 모양의 움집 형태로 방앗간을 지었다. 통방아는 긴 통나무의 한 쪽을 파내서 만든 물받이에 물이 차 쏟아지면 반대쪽의 공이가 들렸다 내려가면서 곡식을 찧는 형태다.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베짜기베짜기는 길쌈의 하나로 베길쌈이라고도 부른다. 베틀에 삼실, 무명실, 명주실 등을 걸어 삼베와 무명, 명주 등의 천을 짰다. 여인들은 길쌈을 하면서 삶의 애환을 담은 길쌈 노래를 불러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한편 베틀의 경우 지방마다 베틀구조가 달랐다고 한다. 물레잣기물레는 솜이나 털 따위의 섬유를 자아서 실을 만드는 도구다. 나무로 된 여러 개의 살을 끈으로 얽어 보통 6각의 둘레를 만들고 가운데에 굴대를 박아 손잡이로 돌린다. 혹은 여러 개의 살을 붙여서 만든 두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용두레질용두레는 낮은 지대에 있는 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리는 데 쓰는 기구다. 용두레는 통나무를 배 모양으로 길쭉하게 파서 몸통을 만들고, 그 가운데 양쪽에 작은 구멍을 뚫어 가는 나무를 끼운다. 그 가는 나무에 끈을 맸는데 세 개의 긴 작대기를 원추형으로 모아 세운 꼭대기에 매어 몸통을 적당히 들어 올리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몸통 끝에 달린 손잡이를 쥐고 앞뒤로 흔들며 물을 퍼 올렸다. 용두레를 이용해 물을 퍼 올리는 일을 ‘용두레질’이라고 한다. 도자기 제작토담 작업장
글 백은영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미투리 짜는 소년미투리는 삼이나 모시, 노(실ㆍ삼껍질ㆍ헝겊ㆍ종이 등으로 가늘게 꼰 줄) 등으로 삼은 신을 말하며 ‘삼신’이라고도 한다. 짚신보다 고급품에 속한다. 미투리는 선비들이 맑은 날 나들이에 신었으며, 조선 말기에는 종이미투리와 미혼남녀의 장식신인 꽃미투리도 있었다.'성호사설유선(星湖僿說類選)'에는 왕골신이나 망혜(芒鞋)는 가난한 사람의 신이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미투리도 신분에 따라 그 재료나 구조가 달라졌던 것을 알 수 있다.사진은 미투리를 삼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보
글 백은영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사금 채취운산금강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모습이다. 운산금광은 노다지 중에 노다지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금이 생산됐다. 또한 김제 봉상면과 금구면 일대에는 예전부터 사금이 많아 일본의 미쓰비씨회사가 사금을 캐다 중단한 곳이었다. 실제 1930년경 미쓰비씨가 운영하는 김제 사금광에서는 1174명의 조선 광부들이 사금을 채취했으며, 해방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다시 ‘노다지열풍’이 불어 주민들이 자기 집 마당까지 파헤치기도 했다. 토담 쌓기나무틀 안에 돌과 진흙을 혼합해서 다진 뒤 토담을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대장간과 대장장이대장장이가 풀무에 달군 쇠를 두드려 연장을 만들고 있다. 뒤에 있는 소년이 풀무에 바람을 넣어 불의 세기를 조절한다. 당시 사람들은 농기구나 연장이 필요하면 장날 대장간에 들러 주문하곤 했다.대장간은 풀무를 차려놓고 시우쇠를 다루어 각종 연장을 만드는 곳이다. 옛날에는 시골 장터나 마을 단위로 대장간이 있어 무딘 농기구나 각종 연장을 불에 달구어 벼리거나 새로 만들었다. 나무 자르기긴 톱으로 두꺼운 목재 조각을 자르는 모습이다. 목공 둘이 각각 위와 아래에서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절구질절구질하는 여인의 모습이다. 절구는 곡식을 찧거나 빻는 데 쓰는 용구다. 만든 재료에 따라 나무절구, 돌절구, 쇠절구 등이 있다. 보통 통나무나 돌의 속을 파낸 구멍에 곡식을 넣고 절굿공이로 찧는다. 예비 수녀들의 자급자족경북 영천 화산에 있는 예비 수녀들이 각종 농기구를 들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이들은 밭이 있어 직접 농사를 짓고, 수확해서 자급자족하며 지냈다.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나무 물통 메우기당시에는 나무를 엮어서 물통을 만들었다. 대나무로 엮은 틈새가 느슨해지면 그 틈을 조여주거나 메워서 다시 사용했다. 나무 물통은 대부분 그릇을 씻는 용도로 사용했으며, 서로 부딪혀 이가 나가거나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을 방지했다. 아이들 목욕시킬 때도 유용했다. 물통을 수선하는 이의 입에는 곰방대가 물려 있다. 연자매 돌리기연자방아는 소가 원을 그리며 큰 매를 돌려 곡식을 빻는 원리를 이용한 일종의 간이 정미시설이다. 대부분 마을마다 공동으로 사용했으며, 연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문명의 이기(利器)가 발달하면서 삶은 보다 윤택해졌고, 생활 속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갔던 일들도 단순하고 편리해졌다. 그만큼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시간이 절약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허나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네 삶의 모습은 옷을 하나 지어 입더라도 누에에서 실을 뽑아내는 것부터 시작해 참으로 많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뿐만 아니다. 밥을 지어 먹기 위해 직접 쌀을 도정한다든가, 절구에 곡식을 찧는 일 등 일상적인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동의 대가(代價)를 치러야 했다.지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도롱이비옷(도롱이)를 걸치고 삿갓을 쓴 사람의 모습이다. 도롱이는 사의라고도 하는데 벼과 식물의 짚으로 만든 재래식 비옷(우의)이라고 보면 된다. 안쪽은 재료를 촘촘하게 엮고 겉은 풀의 줄거리를 아래로 드리워 빗물이 겉으로만 흘러내리고 안으로는 스미지 않는다. 흔히 농촌에서 비 오는 날 외출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어깨에 걸쳤다. 여기에 삿갓을 쓰고 나막신까지 신게 되면 비 오는 날에 안성맞춤이다. 사냥꾼의 옷차림제주도 유목민은 사냥을 갈 때 털옷과 털벙거지를 쓰고 다녔다.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물허벅과 물구덕제주도에서는 물허벅(물 항아리)을 바구니로 된 물구덕에 넣어 밧줄로 등에 져서 식수를 날랐다. 바람도 많고 돌도 많은 곳이라 물허벅을 머리에 이고 나를 경우 자칫하면 돌에 걸려 넘어지거나 바람에 쓰러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항아리에 물을 부을 때는 물허벅을 지고 선 채로 손 하나 대지 않고 물허벅을 어깨너머로 거꾸러지게 해서 쏟았다. 삿갓여인들이 나들이 할 때 외면하기 위해 장옷처럼 사용한 가리개로 삿갓이라고도 한다. 삿갓은 갈대나 대오리로 거칠게 엮어 비나
글 백은영, 사진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애기구덕제주에서 아기를 눕혀 재우는 요람으로 사용했던 애기구덕을 멘 여인들의 모습이다. 애기구덕은 대나무를 얇게 쪼개 직사각형으로 엮어 만든 것으로 보통 아이가 태어난 삼일 후부터 눕히기 시작해 3세까지 키운다. 밑바닥은 삼동나무로 둥그스름하게 만들고 애기구덕에 눕힌 아기를 손으로 흔들어 재우는 형식이다.내부는 높이 중간 정도에 질긴 끈을 그물처럼 엮어놓고 그 위에 보릿대와 요를 깔아 아기를 눕힌다. 이동할 때는 아기를 구덕에 눕힌 채 짊어지고 다녔다. 애기구덕은 주로 시어머니
글 백은영, 사진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주리 틀기죄인이 자백하도록 고문하는 형벌의 하나다. ‘가새주리’라고 해 두 무릎과 엄지발가락을 잡아 묶은 후 그 사이에 두 개의 몽둥이(주장: 朱杖)를 끼워 뼈가 휠 때까지 좌우로 벌려 고통을 주는 형벌이다. 죄수의 팔을 뒤로 포박한 다음 주장을 끼우고 머리나 상투를 부여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고통이 심해 죄를 자백하거나 없는 죄까지도 만들어냈다. 배코치기배코란 상투를 틀기 위해 머리카락을 깎아낸 자리를 말한다. 상투 모양을 예쁘게 나오게 하기 위해 상투를 얹을 정수리 부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태형과 장형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시행됐던 형벌은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을 적용한 것으로 태형(笞刑)․장형(杖刑)․도형(徒刑)․유형(流刑)․사형(死刑) 등의 ‘오형제도(五刑制度)’가 주를 이뤘다. 태형은 죄수를 형틀에 묶은 후 하의를 내리고 둔부를 때리는 것으로 10~50대를 때리는 형벌이다. 장형은 태형보다 중한 벌로 60~100대까지 5등급이 있으며, 도형(관에 붙잡아두고 힘든 일을 시키는 것으로 지금의 징역형과 비슷함)과 유형(매우 중한 죄를 범한 자를 사형시
글 백은영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가(枷)조선시대 죄수들에게 사용했던 형구(刑具)로는 신체형을 가할 때 사용하는 형장(刑杖), 고문할 때 사용하는 고문 도구, 죄인의 도주를 막기 위해 채우는 칼과 수갑 등으로 나눌 수 있다.정조 때 형구의 규격과 사용 방법을 명시한 ‘흠휼전칙(欽恤典則)’에는 각각 형벌의 도구로 태(笞)·장(杖), 신장(訊杖), 가(枷), 추(杻), 철색(鐵索, 쇠사슬), 곤장(棍杖) 등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사진에 보이는 것은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칼로 ‘가(枷)’라고 한다. 죄의 경중에 따라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조선시대 죄수들에게 사용했던 형구(刑具)로는 신체형을 가할 때 사용하는 형장(刑杖), 고문할 때 사용하는 고문 도구, 죄인의 도주를 막기 위해 채우는 칼과 수갑 등으로 나눌 수 있다.정조 때 형구의 규격과 사용 방법을 명시한 ‘흠휼전칙(欽恤典則)’에는 각각 형벌의 도구로 태(笞)·장(杖), 신장(訊杖), 가(枷), 추(杻), 철색(鐵索, 쇠사슬), 곤장(棍杖) 등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사진에 보이는 것은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칼로 ‘가(枷)’라고 한다. 죄의 경중에 따라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다듬이질이 사진은 1906~1907년 우리나라를 여행한 헤르만 산더가 수집한 사진 중 하나다.미국의 사업가이자 작가이며 천문학자인 퍼시벌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 1855. 3. 13~1916. 11. 12)은 1883년 12월 20일 조선을 방문해 약 3개월간 한양에 머무르면서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을 백과사전 형식으로 자세히 기록한 뒤 1885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 담배 피고 놀던 시절에~”배추도사, 무도사가 나와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가 그렇게도 재미있던 시절이 있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지극히 교훈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만화영화를 보며 “맞아.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지!” 했던 시절이다.지금은 노래조차 따라 부르기 어려운 데다, 장면 하나하나가 어찌나 다채롭고 화려한지 어린 조카가 보여 달라는 만화 제목이 무엇인지, 사달라는 장난감 이름이 무엇인지 언니한테 다시 한 번
관동대지진 사건 96주기[천지일보=김현진 기자] 본지가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 96주기를 맞아 관련 미공개 사진을 단독으로 추가 공개한다.지난달 21일 일본 고등형사가 죽은 여성 시신의 음부를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보는 만행 사진에 이어 이번 사진에서는 학살된 시신에 자경단 한 명이 소변을 보는 만행사진이 포함돼 있다. 지진으로 희생된 자국민 시신이라면 이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며, 죄책감 없이 이 같은 행동이 가능한 것은 결국 학살한 시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사진인 셈이다.2000년대 초반 일본 고등학교 국정교과서를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여자 궁도 대회 1910여성들의 활쏘기(궁도) 대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한복을 입고 쪽진 머리로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궁도는 활을 이용해 목표물에 얼마나 정확히 맞추는지를 겨루는 스포츠로 철궁(鐵弓)이라는 활을 사용한다. 해금 연주 1900해금 연주자의 모습이다. 얼굴 표정부터가 심상치 않다. 당시 해금 연주자들은 모기가 앵앵거리는 소리, 장인들이 뚝딱거리는 소리,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등을 해금으로 흉내냈다. 여기에 다양하고 익살스런 몸짓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