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콴유 전 총리가 지난 23일 9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깨끗하고 부유한 도시, 청렴한 공무원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울 정도로 엄격하다는 벌금과 태형 제도 등이 싱가포르를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시선일 것이다. 바로 지금의 이 싱가포르를 만든 주역이 리콴유 전 총리다. 그의 타계 소식에 싱가포르가 슬픔에 잠겨있는 것도, 전 세계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도 그가 싱가포르라는 한 나라를 위해 바쳤던 열정과 지도자로서의 리더십 때문이다. 리콴유의 리더십을 얘기하기에 앞서 잠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역사에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어리석은 한국교회성경 아닌 자기교단·교리가 기준인 한국교회CBS, 한국교회의 견인차라 자부할 수 있는가‘신천지 OUT!’ 3년 외쳐도 신천지교회는 성장 총성 없는 전쟁이 또 다시 시작됐다. 세상 그 수많은 전쟁 중에서도 종교로 인한 전쟁보다 무섭고 무자비하며,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것이 있겠는가. 아집과 교만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배 불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종교인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자기 종교의 경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외려 경서를 기준으로 신앙하는 이들을 핍박하고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우리나라 방송사 중에는 기독교를 대표하는 방송사도 있다. 하지만 기독방송이라는 이름만 가졌지 실제로는 기득권을 가진 보수교단의 시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시대의 종교 나아가 기독교의 부패와 타락과 함께 그들이 내세우는 전통과 역사는 빛바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방송이 기독교의 부패와 타락을 견인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시청률은 민망하게도 1%대에 머무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1%대의 시청률을 만회하고자 방송 보도의 기본을 무시한 ‘딜(거래)’ 즉, 한 쪽은 시청률을 높여주는 대신 성도와 돈을 지키고, 한 쪽
“대한독립만세!” 96년 전, 온 강산을 뒤덮으며 울려 퍼졌던 소리다. 며칠 전 그날의 함성은 이 강산 위에서 곳곳마다 재연됐다. 국경일이 많지만 여느 국경일보다 올해의 3.1절은 모두에게 유독 관심을 갖게 하는 듯싶다. 때가 때인 만큼 금년은 96년 전 울려 퍼졌던 대한독립만세의 의미를 찾고 되새기려는 분위기가 역력해 보인다. 한마디로 1919년 3.1운동은 26년이 지나 1945년 8월 15일에 맞게 되는 일제 식민치하로부터의 해방과 광복을 얻고자 들불처럼 일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탑골공원에서 종교지도자 33인으로부터 시작
종교와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으로 갈수록 포악해지며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조직이 있다. 바로 ‘IS’ 일명 ‘이슬람국가’다. 스스로 국가를 선포한 상태지만 세계는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며 다만 테러리스트 내지 테러조직으로 간주할 뿐이다. 이러한 무장단체가 출현하게 된 시점은 제2차 걸프전이 일어난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미국이 지원하는 시아파가 이라크의 정권을 잡으면서부터다. 여기에 불만을 가진 이라크 내 극렬수니파 세력은 알카에다와 손잡고 이슬람국가를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 진정한 지도자란 어떤 모습인가를 한 번쯤은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이 연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다름 아닌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의 리더십이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자국 조종사를 산 채로 불태우는 동영상을 공개한 ‘이슬람국가(IS)’에 즉각적으로 대규모 공습을 선포했다. 만일 요르단 왕실이 말로만 대규모 공습을 선포한 것에 그쳤다면 IS에 대한 보복전 정도로만 알려졌을 것이다. 요르단 왕실을 비롯한 압둘라 국왕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가 IS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즉각적으로
지난 26일 정부 관계자는 “6자회담 재개에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과도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외교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남북관계와 미국의 대북압박을 대비시켜서 한미 간 이견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미국 역시 북한에 대한 대화의 문을 닫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의 “북한 붕괴” 발언 이후에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부가 소니 해킹과 관련한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에 대해 관여하는 것에 항상 문을 열어 놓고 있다고
‘종교가 살아야 사회와 나라가 산다.’ 요즘 이 말을 실감나게 하는 어느 현직 목회자의 양심선언과도 같은 고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시대가 부정과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동안 속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신학교를 나온 그 정식 목사들이 무지하고 부도덕하기에 경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대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목회자의 주장이다. 먼저 한국교회와 나아가 한국 종교의 신앙적 부패와 타락을 공개적으로 냉철하게 꼬집을 수 있는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70’은 2015 을미년 양띠 해를 대신하는 숫자가 돼 있다. 금년은 일제치하에서 벗어난 지 70돌을 맞게 되니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며, 광복과 함께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다시 70년이란 긴 세월을 지내야 했으니, 남과 북이 갈라진 지 70년이 되는 해다. 어찌 그 뿐인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평화와 안전의 필요성을 깨닫고 그해 10월 국제기구를 창설했으니, 유엔 창설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그러고 보니 70년 전 일제치하로부터의 해방은 광복의 참의미를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알게 하니, 그
2015년, 아직은 혼돈하지만 왠지 그 출발이 희망차다. 특히 남과 북의 관계가 경색 국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이며, 무엇보다 우리의 소원인 평화 통일로 한발 나아갈 운세라는 게 고무적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새해 벽두부터 남과 북은 뒤질세라 앞다퉈 대화공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달 29일 묵은해를 보내면서 통일준비위원회가 먼저 남북대화를 제의했고,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신년사 육성 연설을 통해 자신감 있는 어조로 “북남 사이 대화와 협력,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하여 끊어진 민족적 유
참으로 많은 사연을 담은 갑오년(甲午年) 청마는 을미년(乙未年) 청양에게 희망찬 새해를 안기고야 말았다. 광복 70주년이면서 분단 70주년이라는 기막힌 역사를 가진 민족이기에 새해는 그 어느 해보다 기대 만발하다. 광복이라 하지만 분단이라는 비애와 함께했기에 애초에 온전한 광복은 아니었다. 남과 북이 하나 될 때 비로소 광복이 올 것을 예단했을 뿐이며, 남과 북의 평화통일은 세계평화의 첩경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스승이기도 하다.암울해 보이기만 한 남과 북의 관계, 나아가 통곡과 죽음의 소리로 아비규환이 된 세계, 그 어디를 봐도
2014 갑오년(甲午年), 갑오년의 청마는 힘차게 달려왔고, 이제 그 달음마를 멈추려 한다. 그리고 그 바통을 을미년(乙未年) 청양에게 넘기려 하고 있다. 만물이 고대하던 을미년 새해가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푸른 초장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처럼 생명과 평화가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는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또 “폭풍이 지난 뒤엔 고요가 온다(After the storm comes the calm)”는 서양의 속담처럼, 청마는 그렇게 힘겹고 억척스레 달려와
대형교회의 문제점과 목회자 비리 등 한국교회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비리를 꼬집은 영화 ‘쿼바디스’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화는 사랑의교회 초호화 예배당을 조명하는 것으로 시작해 대형교회와 목사들의 비리를 고발한다. 성추행 논란으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았음에도 전별금 13억원을 받아 교회를 다시 개척한 유명 목사, 탈세와 횡령혐의로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목사, 논문표절로 교계 내외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 목사 등을 조명하고 있는 탓에 영화는 외려 한국교회의 눈치를 받고 있다. 특히 사랑의교회 전경과 오정현 목사의 이미지를
이 글은 지난호의 ‘서기동래한 이 땅에 나타난 구원의 역사’란 제목의 연장선이다. 지난호를 통해 이스라엘은 이천 년 전 종교 부패로 말미암아 정치적으로도 이방인 로마제국의 속국이 됐고, 결국 종교의 말세를 만나게 됐음을 짚어 봤다. 그 당시 예수는 왜 “회개하라” 했겠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난호에 언급한 바 당시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이 모두 다 부패해 입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마귀와 하나 됐으며, 그러했기에 “회개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예수 재림을 알리고 있는 오늘날도 계시록 2~3장에서 예수님은 보낸
약 2천 년 전 유대 땅으로 가 보자. 당시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었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라는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지만 부패하고 타락해 종교말세를 만난 상태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예수가 왔다. 예수는 유대 땅에 온 후,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오는, 즉 기원(BC~AD)이 바뀌었어도 시대를 분별치 못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회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소경과 귀머거리가 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그 시대를 분별치 못하고 회개하지 않아 멸망받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2천 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데 주목해
올해는 온통 이순신으로 들끓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2014년 영화 대종상에서 국내 관객 176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명량’은 무려 4개 부문의 작품상을 석권하고, 나아가 배우 최민식은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영예까지 얻었다. 하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정작 이순신 본인은 쓸쓸해 보일 듯싶다는 생각은 왜일까. ‘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풍전등화가 된 조국의 위기 앞에 가슴 조이며 고뇌하던 인간 이순신, 숱한 모함과 핍박과 고난 속에 몰래 눈물 흘려야 했던 인간 이순신은 어디로
‘예부터 미국의 아시아전략에 한국은 속아왔다는 분석이 작금에 와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친미 성향이 강한 쪽에선 바로 반론과 반발부터 준비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실이냐에 관심을 둬야 한다. 미국의 전략과 태도를 지적하면 진실여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색깔론으로 접근한다. 우리가 분명히 할 것은 진영논리를 지나치게 앞세우다보면 진정 알아야 할 진실은 덮이고 묻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실 아닌 것이 진실이 되어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게 되고, 거짓과 왜곡의 역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빨간 물이 들지 않았다면 누가 민
지금부터 전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를 비방하고자 함이 아니다. 사실과 진실을 알릴 뿐이다. 알려야 하는 이유는 이 나라와 종교세계는 거짓과 왜곡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과 진실을 모른다면 이유 없이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핍박하게 돼, 이 사회는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현재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비신앙인의 과반수가 과거 기독교 신자였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는 기독교의 이탈이 상당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기독교는
그 어느 때보다 지구촌의 평화와 안전이 시급하다. 천재지변과 인재라는 재해도 있겠지만, 사실상 주범은 바로 전쟁이다. 지구상의 모든 전쟁이 증명해 오듯이, 이념과 종교 간의 갈등이 그 원인이다. 1945년 10월 24일 평화에 반하는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유엔이 창설됐다. 하지만 유엔은 종교 간 갈등까지 해결할 방법도 능력도 없다.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와 종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치와 종교는 그 성격이 근본에서부터 분명히 다르다. 종교가 정치를 할 수 없고 해서도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 또한 휴전국이기에 항시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남북정세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작은 꼬투리만 보여도 물고 늘어질 것이 없는지 예의주시하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남북이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북한의 입장에서 딴지걸기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북한은 28일 2차 고위급 접촉 무산 가능성에 대해 또 다시 언급하며 우리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막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