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마당놀이라도 치른 듯 큰 소란이 지나갔다. 며칠 전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은 물론 이웃한 나라들까지 떨었던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여기저기에선 광복 70주년에 대한 각국 담화와 논평 등을 놓고 분석하기에 분주하다. 광복 70주년에 즈음한 각종 논과 설에 관해선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70년 전 진정한 광복이 오기는 한 것이었는지, 기념해야 할 내용은 있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광복된 지 70년이 지났으나 남과 북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북한의 도발엔 강경한 입장이지만
광복 70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아무래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발표하는 ‘전후 70년 담화’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바로 이 ‘아베 담화’에 ‘사죄’ 표현이 들어갈 것인가를 두고 일본 내에서도 많은 추측성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처음 아베 담화 초안을 두고 ‘사죄’라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 같더니만 얼마 되지 않아 일본 다수의 언론이 ‘사죄’라는 표현을 넣을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는 실정이다.아사히신문은 지난 11일 아베 총리가 담화에 ‘사죄’라는 표현을 넣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광복·분단 70돌을 맞은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미래는 무엇인가. 그 어느 때보다 충격으로 다가오고 화나는 8월을 맞이한다. 여당 대표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방미 행보와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씨의 방일 행보와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 대표는 방미 기간 두 번에 걸친 큰 절 퍼포먼스도 모자라 “미국은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유일한 동맹”이라 했고, 나아가 “(우리에게) 역시 중국보다 미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가겠다”며 영원히 회자될 수밖에 없는 충격적 말과 행동을 남겼다. 박근령씨는 일본 포털사이트 니코니코와의 인터뷰에서
예부터 우리 민족에겐 ‘도통군자(道通君子)’라는 말이 내려오고 있다. ‘군자(君子)’라 함은 다스리되 도덕과 수양을 겸비한 자를 가리키며, ‘도통(道通)’이라 함은 세상의 지식이 아닌 하늘의 지식, 즉 하늘의 뜻을 깨달아 하늘과 소통하고 지음 받은 만물과도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유독 우리 민족에게 도통군자라는 말이 전해져 왔다는 데는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일까. 이는 우리에게 도통군자가 다스리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며, 나아가 우리에게 도통군자의 사명이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구전(口傳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지구촌의 화두는 평화일 것이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인류의 소망은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의 시대가 이 땅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었을 게다. 인류의 역사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류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끊임없이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고, 내전과 분쟁,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세상을 벗어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에서 갈등과 전쟁을 뿌리 뽑지 못한 것은 남을 정복하고 그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신앙적 사명이 있고 또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데는 ‘사명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이 말을 믿는다. 우리가 신앙을 하는 이유는 세상의 복이 아닌 하늘의 복 즉, 구원과 영생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날 종교가 타락한 데는 바로 하늘의 복이 아닌 세상의 복 즉, 기복(祈福)신앙으로의 변질이 가져온 결과다. 이 시대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신앙의 본질보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좇는 종교 현실이 그 증거다. ‘신앙(信仰)’이란 단어 속엔 신앙의 참 의미가 이미 내포돼 있다. 신(信)은 믿을 신
메르스·가뭄 등 천재(天災)이면서 인재(人災)는 이제 지나가려나. 하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게 어찌 그뿐일까. 이 나라는 정치인이 종교인이고 종교인이 정치인인 연고로 인해 일어나는 웃지 못할 문제가 참으로 많다. 그 가운데서도 미개한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일, 그저 종교요 가정사인 양 치부되며 이 나라 전역에 암 덩어리처럼 번지고 있는 일명 개종목사의 개종사업이다.이로 인해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종교의 자유는 사라졌고, 종교를 넘어 인권이 유린당하며, 개인은 물론 가정까지 몰락하는 무서운 일이 ‘종교’ 또는 ‘가정사’라는
2015년도 상반기가 지나고 어느덧 하반기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됐다. 2015년, 평화를 상징하는 청양의 해가 찾아왔다며, 꿈과 희망을 품고 달려온 지 어느덧 반년이 훌쩍 지난 것이다. 그렇게 기대하며 달려온 을미년 청양의 해이지만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비탄에 빠지게 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20년 전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메르스 격리자는 드디어 5000명을 넘어섰다. 보건 당국의 낙관론과 안일한 대처는 결과적으로 설마 하던 국민들을 공포와 함께 화나게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재앙이다. 확진자는 150명이 넘어섰고, 40대 사망자까지 발생하면서 자고나면 사망자 수는 늘어나며, 치사율은 완쾌율을 앞질렀다.한마디로 행정당국은 안일하고 무지하고 교만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잘못한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잘못한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다. 초기에 오판을 인정하고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을 해 나갔더라면 이와 같은 재앙은 막을 수 있었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의 전쟁 중인 나라 대한민국이다. 군(軍)은 한 나라를 지키지만 국경이 없는 질병은 글로벌하기에 세계적 차원에서 사전 대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신종플루, 사스, 에볼라 등 세계적 질병이 유행할 때마다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나라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의 침공으로부터는 무능과 무기력의 극치를 보이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9일 현재 격리자가 3000여명에 육박하며, 격리 해제된 사람도 600명이 넘고 있으며, 확진자는 95명에 이르고 있으니 이는
분단 70년을 맞은 올해는 평화와 통일이 식지 않는 화두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는 집권 2년간 나름 대북(對北) 문제에 집중했고, 다자(多者) 외교에 치중했다. 해외 순방 시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의 ‘진정성’을 요구해 왔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드레스덴 선언’ ‘통일 대박’ 등의 용어도 만들며 통일문제를 환기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박 대통령의 통일정책은 일관성에서 후퇴했고 나아가 주도면밀하지 못했으며, 여느 정부와 다름없는 정략적이며 구호에 그치는 정책이 되고 말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워 보
지난 25일은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이만희 대표가 ‘세계평화선언문’을 발표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잠실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을 비롯한 전 세계 17개국 주요 도시에서 20만여명이 참여하는 ‘세계평화선언문 발표 2주년 기념식 및 국제청년평화 걷기대회’가 동시에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만큼이나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다. 2013년 5월 25일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의 이만희 대표로부터 시작된 평화 선언은 평화의 물결이 되어 온 지구촌을 뒤덮고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고담(古談)과 같이, 이 대
한국교회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교회)의 일거수일투족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급감하고 쇠락하는 기성 교단에 반해 신천지교회는 한국교회의 핍박과 훼방 속에서도 급성장하면서 해외로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도 “한국교회에 말씀이 없기 때문에 교인들이 신천지로 가고 있다”고 고백한 것처럼(CBS 관찰보고서-신천지에 빠진 사람들 마지막회) 말씀 따라 신천지로 가는 성도들을 또한 핍박하고, 심지어는 가족들을 이용해 개종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인권유린까지 자행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무
지난달 22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해 연석회의를 가진 바 있다. 유엔이 창설된 지 70년이 됐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 지구촌에 만연한 테러와 전쟁은 공포의 대상에서 점차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혀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더 이상 테러와 전쟁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외교와 정치적 수단으로는 테러와 전쟁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으며, 나아가 테러와 전쟁의 뒤에는 종교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된다.여기서 잠시 문제의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지난 4일 교도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일본의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했다고 보도했다.일본은 지난해 규수와 야마구치현에 있는 중화학 산업시설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바 있다. 바로 이 중 최소 7곳에서 11곳이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가 발생한 곳이다. 죽기 전에는 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지옥섬’으로
올해 들어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글귀가 있다. 다름 아닌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이다.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온 거리를 뒤덮고 있으며, 나름 평화와 그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 같아만 보이니 어쩜인가. 아마 정치적 목적과 같은 다른 계산과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왜 평화의 세상이 와야 하는지를 정녕 깨닫지 못한 채 외치는 소리이기 때문일까. 아무튼 외치는 자는 많지만 실제 평화를 이루어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아예 없다는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는 성서의 구절이 있다. 여기서 악하고 속이는 사람은 악한 영(靈)이 함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며, 그들은 종교 말세가 되어 더욱 악해져 속이고 자신도 속는다는 것이다. 즉, 악한 세상 거짓된 세상을 주도하며, 삶의 본질도 종교의 근본도 모른 채, 많은 사람들을 곁길로 인도하고 있으며, 또 이를 좋게 여기며 따르고 있으니,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니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말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이미 일본 정부 스스로가 폐기한 가설 일본의 한국 침략 정당화하려는 속내 일본의 역사왜곡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갈수록 그 행태가 말이 아니다. 최근 일본 정부는 일본이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다시금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일본이 4~6세기 한반도 남부의 가야 지역을 정벌해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했다는 이 허무맹랑한 주장은 사실상 2010년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 의해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바 있다. 공동연구위원회는 ‘지난 4~6세기까지 일본이 한반
‘전쟁과 평화’라는 말이 있다. 이 두 단어는 늘 상존하지만 주지하는 바대로 극과 극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인류가 태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반복돼 왔다. 아니 어찌 보면 평화가 언제 있었는가 할 정도로 전쟁의 연속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이는 인류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 우리의 삶 자체가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 벌이는 한판의 승부요 전쟁이다. 그래서인가 성서의 역사도 전쟁의 역사다. 성서를 보면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으로 나뉘어져 있다. 즉, 하나님과
한반도 남쪽 끝엔 마음 심(心)자를 닮은 섬 하나가 있다. 일명 동백섬이라고도 부르는 지심도(只心島)다. 이 지심도야말로 한반도를 대신할 만큼 고요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평화의 섬이다. 그러한 지심도는 그 아름다움 못지않게 잊혀진 아픈 역사까지 고스란히 가슴에 묻고 기억해내고 있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37년 무렵, 주민들을 강제 철거시킨 뒤 일본군 100여명이 주둔하며 군사기지로 사용했던 비운의 역사를 오늘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포대, 탄약고, 비행기 활주로, 서치라이트 보관하던 곳, 일장기 게양대, 일본군 소장 사택 등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