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예부터 “‘천지분간(天地分揀)’ 좀 하고 살아라”는 말을 해왔다. 이 말은 흔히 앞과 뒤도 모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일컫는 말이다.아직 철이 없어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이들이나 혹은 나이는 들었지만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해당 될 것이다.‘천지분간’, 먼저 ‘천지’는 하늘과 땅을 가리킨다.한자 공부에 입문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게 ‘하늘 天 따 地 검을 玄 누를 黃’부터 나온다.또 지구촌에서 가장 많이 출판되고 가장 많이 읽는 책은 기독교 성경이다. 이 성경을 열면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글자 역시
유교의 사서삼경(사서: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삼경: 시경 서경 주역 곧 역경)의 대학 편엔 군자(君子)의 행동기준으로 8조목(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이 있다. 그 8조목 가운데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있다. 이 격물치지는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으로 나의 지식을 확고하게 한다’는 뜻이다.유교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사도바울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지으신 만물에 하나님의 신성을 담아 보였기에 핑계할 수 없다(롬 1:20)면서 만물에게 배우라고 했다.이천년 전 예수님도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노래나 속담 등으로 내려오는 구전(口傳) 또는 구전문화(口傳文化)는 다 있다. 이 구전(口傳)이란 글(文)에 의하지 않고 예로부터 말(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을 뜻하며, 다시 말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것을 의미한다.특히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민족으로 글이 생기기 이전 시대부터 유독 많은 구전이 내려오고 있다.이 대목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것은 그 오랜 세월 해(年)와 세대와 시대와 세기와 기원을 바꿔가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려져 온 구전 속엔 도대체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면면히 이어온 우리 역사와 문화 가운데는 아주 특이한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선비’ 또는 ‘선비정신’이다.어쩌면 이 같은 문화와 사상은 지금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을 법하다. 이 ‘선비’의 사전적 의미는 ‘학문을 닦고 익히는 사람’을 뜻하고 있다. 이 선비의 참된 의미가 왜곡되지 않기 위해선 ‘백면서생(白面書生)’이란 말을 이해하면 될 것 같다.이 ‘백면서생’이란 글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세상 경험이 없고 나아가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그야말로 학문을 위한 학문을 하는 사람을 뜻하고 있다.조선 중기의 대학자 퇴계 이황과
하늘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 인류를 위해 허락한 책 한 권이 있다. 하지만 아는 이가 없다. 지구상엔 유불선 등 수많은 종교와 경서가 있지만 인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책은 오직 ‘성경’ 뿐이다.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는 오해하며 필자를 힐난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사실을 말해야 할 것 같다.흔히들 성경에 대해 지구상에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들 한다.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이 출판된 책이 바로 이 성경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오늘날 인류가 성경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축(辛丑)년을 보내고 임인(壬寅)년 흑호(黑虎)가 포효하며 새 날을 알렸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송구영신은 한 해의 해넘이와 해맞이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송구영신은 온갖 거짓과 위력에 의해 병들고 낡고 쇠해지고 부패해진 이전 시대를 청산하고, 맑고 깨끗한 진리의 새 시대를 맞이하는 것이며, 이는 섭리며 하늘의 지엄한 명령이다. 섭리를 쫓아 찾아온 송구영신의 참 의미는 애초에 일반 세상적 지식과 상식으로 깨달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기록한 66권으로
송구영신, 이 사자성어는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천문학자인 격암(格菴) 남사고 선생의 격암유록에서 비롯됐다.이 송구영신이라는 네 글자에 대해 많은 이들은 해마다 찾아오는 연말연시가 되면 의례히 대문 또는 교회 등에 붙이고 가는 해를 아쉬워하며 오는 해를 맞이한다.물론 그 자체가 크게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하지만 격암선생이 신(神)으로부터 받은 ‘송구영신’의 참 의미는 한 해의 해넘이와 해맞이를 넘어 시대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옛 구(舊)’와 ‘새 신(新)’자를 통해 가고 오는 한 해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
오늘도 필자는 글을 쓴다. 흔히들 작금의 때를 말세(末世)라 한다. 이 말세의 뜻을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일까. 이 말세는 지구촌의 종말을 뜻하는 게 아니며, 인생의 생각이 허망해지고 완악해져 더 이상 인생으로 하여금 기대할 게 없는 지경에 놓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이 허망한 세상은 말세를 만나 끝이 나겠지만, 끝나가는 세상 즉,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은 내세(來世) 곧 희망의 새 시대를 잉태하고 있기에 인생은 가는 세상과 오는 세상을 분별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해도 틀리지 않다.조선 중기 격암 남사고 선생은 이를 일컬어 ‘송구영
어느 독일의 철학교수와 대학생은 학교 캠퍼스에서 대화를 나눴다. 내용인즉, 교수는 학생에게 왜 사느냐는 질문이었고, 학생 대답의 결론은 죽기 위해 산다는 것이었다.학생이 그렇게 대답한 데는 누구나 다 나서 살다가 늙고 병들어 고생하다 죽는 것만 봤으니 자신 역시 그와 다를 게 없지 않겠냐는 의미였을 게다.다시 말해 인간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굴레 속에서 속절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전제 속에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우리의 생각은 정신(精神)이며 영(靈)이다. 그 생각과 정신과 사
삶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삶에 대해 알아봐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우리가 현재 몸담고 살아가는 현세(現世)가 있고, 또 다른 차원의 내세(來世)가 있기 때문이다. 내세의 내(來)자는 올 내(來)자이므로 앞으로 도래할 세상을 의미하고 있다.현세를 살아가기 위해선 세상 지식과 법(육법전서) 곧 세상 학문이 필요하고, 내세에 들어가기 위해선 내세의 법과 지식이 담긴 경서가 필요하니 하늘 학문 곧 종교다.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내세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흔히들 생각하기를 이 내세는 현세와 달리 죽어서 간다는
1984년 3월 14일, 이날은 대 갑자년 즉, ‘우주 일주의 해’가 되는 날이다. 이날부터 지구촌엔 ‘새 천 년의 역사’가 다시 시작하니 곧 새로운 기원이 세워지는 날이기도 하다.이때부터 세상은 처음 하늘 처음 땅인 이전 것(처음 것) 곧 사망이 왕 노릇하던 기존의 (종교)세상은 끝이 나고, ‘새 하늘 새 땅’ 곧 영생의 신천지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이를 일컬어 ‘세상 나라가 창조주 하나님의 나라’가 됐다고 한 것이니, 개국(開國)이요 개천(開天)이다.이는 온 인류가 부지불식간에 학수고대해온 날이며, 동양 선지자 남사고는 이를
인류는 오랜 세월 제사를 지내왔다. 흔히들 제사는 약 2500년 전 공자(孔子)에 의한 유교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기독교 성경에 보면, 창세기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다(창 4장).특히 성경(The Bible, 인류에 가장 권위 있는 책)은 역사와 교훈과 예언과 성취로 구성돼 있으며, 나아가 역사 속엔 족보와 나이와 연대가 세밀히 기록돼 무오(無誤)한 책으로 정평이 나 있다.이로 보아 인류가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약 6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궁금한 것은 인류는
서기동래, 조선 중기 유학자이면서 천문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 선생이 남긴 말이다. 직역을 하자면 ‘서쪽의 기운이 언젠가 동쪽으로 온다’는 의미다. 이 말은 너무 막연하다. 이같이 동양선지자가 비책(秘策)을 통해 남긴 말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해선 육천 년 비밀이 담긴 성경의 묵시(黙示)가 때가 되어 계시(啓示) 돼야만 알 수 있다.묵시가 때가 되어 계시되고, 천택지인(天擇之人) 한 사람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먹여줌으로 지상만민에게 하늘의 참뜻을 가르칠 수 있는 참 종교의 시대가 비로소 열리게 되는 것이다.그 증거는 다음과 같다.서기동
지금의 때를 알까. 아는 이가 있다면 그 얼마나 알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성인들이 한결같이 이 한 때와 한 날을 말해왔다. 또 모든 경서가 오늘 이 순간을 말해왔다.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있으며, 나아가 명예와 권세와 돈을 사랑하니,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라는 말씀이 오늘날 이 세대에 응했으니 오호 애재라.지금까지는 그렇게 각기 제 갈 길을 가도록 묵인해왔지만, 정한 때가 되어 정하신 사람을 통해 정하신 일을 행하실 때가 왔다면 사정은 급히 달라진다.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신축(辛丑)년 하얀 소(牛)의 해도 한 달 하고 또 한 달을 남기고 있다. 어떤 이는 한 해가 더디 간다 하고 어떤 이는 빨리 간다 한다.더디 간다고 하는 이는 그 수고가 덧없이 지나갔을 것이고, 빠르다고 하는 이는 요긴하게 지나갔을 것이다.해가 그냥 떠서 그냥 지는 게 아니니, 생명을 주고 자라게 하고 결실하게 하니 만고불변의 이치다.그 이치에 부합된 이가 있고, 그 이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도 있을 법하다.저 들녘엔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마치 황금물결같이 일렁이며 추수군의 빠른 추수를 기다린다. 어디는 이미 추수돼 갔고, 어디
지금은 천지분간(天地分揀)이 절실한 때를 맞이했다. 우리는 예부터 습관처럼 ‘천지분간 좀 하며 살라’는 말을 듣고 또 스스로 하며 살아온 특이한 민족이다. 그러나 아무 때나 천지분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며 천지분간의 때가 돼야만 가능하니 구전돼 온 것은 곧 예언이었다.그리고 이제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때를 비로소 맞이했으니, 그야말로 천지분간 할 때다.이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절대적 명령으로 봐야 한다.우주와 만물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지으신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고, 지음 받은
흔히들 작금의 시대를 말세 혹은 종말이라 한다. 이 말세와 종말은 무엇이 끝난다는 것인가. 그것은 이 지구촌의 말세도 종말도 아닌 종교의 말세며 종교 세상이 끝난다는 것이다.그래서 조선이 낳은 유학자 격암 남사고 선생은 ‘말세골염 유불선’이라 했고, ‘무도문장 무용야’라 했다.그때가 되면 모든 종교는 자신들의 생각에 염색되고 낡은 사상에 구태의연해져서 백해무익한 애물단지가 된다고 했으니 종교 말세가 틀림없지 않은가.이는 인생의 허무한 생각이 말세를 자초했으니 그 누구에게도 핑계할 수도 없게 됐다.그래서 예로부터 송구영신이라 했으니,
오늘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범인(凡人)들을 위해 꼭 필요한 말을 하고 싶다. 과연 인생은 와서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렇게 잠시 왔다 가는 인생임에도 근심 걱정 눈물 슬픔 고통뿐이며 나중은 죽음이다. 이것이 도대체 어디서 기인된 걸까.석가도 이 같은 생노병사가 어디서 온 것일까 하는 궁구심으로 권력과 권세와 부귀영화도 마다하고 출가(出家)했으며, 유학자 격암 남사고도 어린 소년시절부터 흥망성쇠는 과연 어디서 온 걸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울진 불영계곡을 거닐었다.어쩌면 누구라도 한 번쯤 이 같은 고뇌에 빠져 본
우주와 만유는 어디서 온 걸까. 참으로 궁금하다. 사도 바울은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4)”라 했다. 이로 보아 우주 만물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 분명하다. 창조주 하나님은 영(靈)으로 존재하며(요 4:24),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신다(출 3:14).그래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일컬어 만유의 주재 곧 조물주(造物主)라 하며, 지음 받은 만물은 피조물(被造物)이라 한다. 이 피조물 가운데는 영(영계)과 육(육계)이 있다.이렇게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지으신
2천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유대 땅에서 나셨다. 이 일로 인류의 기원이 BC에서 AD로 바뀌었다. 기원전과 기원후로 바뀌었다는 것은 송구영신 즉, 구시대는 끝이 나고 새 시대가 왔다는 의미가 된다.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어두운 밤 같은 심령이 되어 가고 오는 시대를 분간치 못했다.당시 예수님의 나심은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이었다. 하나님은 태초의 말씀이며, 이 말씀은 약속의 말씀이며, 말씀 안에 생명이 있으니 곧 창조의 능력이다. 따라서 약속한 말씀들은 약속한 대로 약속한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시고 그 실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