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정인선 기자] “고궁(古宮)의 묵은 지붕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씻은 듯이 시리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것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밀밀하였으며, 대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만큼 가지가 우거져 있었다.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젖은 숲 냄새와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며, 지천으로 피어 있는 시계꽃의 하얀 모가지, 우리는 그 경기전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를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혼불의 작가 최명희 씨는 그의 단편소설 에서 경기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사적 제339호 전주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 즉
우리나라 행궁 중 가장 큰 규모 자랑 [천지일보=박수란 기자] 화성행궁은 우리나라 행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답기로 손꼽힌다.2007년 6월 8일 사적 제478호로 지정된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됐다.행궁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전란·휴양·능원참배 등으로 궁궐을 떠나 임시 거처를 하는 곳이다.화성행궁은 수원부 관아와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1794(정조 18년)~1796년(정조 20년)에 걸쳐 진행된 화성 축성 기간에 확대하여 최종 완성됐다.정조는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 축조… 최초로 시도한 ‘공심돈’ 등 건축술 화려[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정조는 당대 최첨단 과학기술을 총 동원해 화려한 성곽을 만들어 강력한 왕권을 드러내고자 했다. 세계가 그 문화재적 우수성을 인정해 도심 한복판에 있는 성곽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수원화성은 동서양의 군사시설 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 특히 방어적인 기능이 뛰어난 특징을 갖고 있다.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한 성곽 축조에 석재와 벽돌을 응용한 것과 용재를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고종 5년인 1868년 진주목사 정현석(鄭顯奭)이 매년 봄에 논개의 혼을 달래는 ‘의암별제(義巖別祭)’를 창제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중단됐다가 현재는 ‘진주 논개제’로 부활했다.의암별제는 정현석이 논개의 사당을 중건하고 매년 6월 중 길일을 정해 논개에 대한 제향을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300명의 기녀가 가무를 곁들여 사흘 동안 제를 치르는 화려하고 격조 높은 대제전으로 열렸다.또한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제례라는 점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특별한 의식으로 평가받는다.지난 2일 끝난 제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장렬하게 전사하자 19살 논개는 머리와 옷을 단정히 하고 비장한 각오로 촉석루를 향해 발걸음한다.진주성 탈취에 성공한 일본 장수들이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나타난 논개.훗날 역사는 그를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남강으로 유인해 끌어안고 함께 강물로 투신한 조선의 의기(義妓)로 평가한다.전라북도 장수군 출신의 논개가 장수현감이던 최경회(崔慶會)의 후처로 살다가 1593년 제2차 진주성 싸움에 최경회가 순국하자 비상한 각오로 당시 왜군의
[천지일보=정인선 기자]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대첩의 영광과 슬픔의 역사가 고이 잠들어 있는 경남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사적 제118호 진주성. 그 안에는 진주성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과 일본군 장수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가부키의 악역(?) 김시민 장군 성의 정문격인 공북문을 지나 진주성을 들어서면 호국충절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한 진주성 수호상인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을 만날 수 있다. 김시민 장군은 1592년(선조 25) 10월 5일 2만 왜군의 맹공에도 불구하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우리나라 전통 도요지가 군락으로 자리하고 차 문화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봉암사가 있는 문경. 이 두 가지 특성이 문경시 찻사발 축제를 만들어냈다.문경전통 찻사발 축제는 태조왕건을 촬영한 오픈세트장과 도자기 전시관이 있는 문경새재에서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10일간 열렸다. 축제기간 중 문경새재에서는 도자기 제작 체험장까지 어우러져 관광객들은 전통미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세트장 안의 건물들은 전시 부스로 활용됐다.문경시의 찻사발 축제는 한국 전통 생활도자기(민요) 총판이라 불릴 만큼 이 분야의 내
무형문화재 백산 김정옥 사기장[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매끄러운 포물선이 아니다. 그릇을 양손으로 감쌌을 때 엄지부분은 약간 깊은 오목, 나머지 네 손가락이 닿는 부분은 얕은 오목형 굴곡이 그릇을 동그랗게 둘렀다. 말차를 담아낸 다완은 손안에 밀착돼 차의 온도가 그대로 전해지고 매우 안정적이다. 차를 마신 후 뒤집어 놓을 때에도 사발 밑 부분의 울퉁불퉁한 유약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는다.사기장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백산 김정옥(70) 명장이 빚어낸 찻사발이다. 그는 청호찻사발을 그렇게 실용적으로 만들었다. 사용하는
조선 헌종 때 만들어진 우리나라 특유의 가마 [천지일보=박수란 기자]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통 ‘망댕이 가마’가 있는 경상북도 문경시 관음리 마을. 이곳에서는 ‘조선요’로 이름 붙여진 망댕이 가마가 170여 년 선조들의 손길과 그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이 가마는 조선 헌종 때인 1843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특유의 칸 가마로 망댕이 가마라고 불린다.망댕이란 길이 20~25㎝ 굵기로 사람 장딴지와 같은 모양의 진흙덩어리를 말한다. 이 덩어리가 쌓여져 칸을 이루게 되는데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크기가 커진 여섯 개의 칸으
[뉴스천지=손성환 기자] 자연과 어우러진 옛 절터와 문화재 불이문(不二門)이 있는 원각사.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돌들과 나무는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지금은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강원도 고성에 있는 건봉사를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건봉사는 원래 신라시대 법흥왕 7년(서기 520년) 아도(阿道)가 창건해 원각사(圓覺寺)라고 이름을 지었다. 758년(경덕왕 17)에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열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만일회의 시초라고 한다.그 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사찰을 중수(重修)
[뉴스천지=이현정 기자] 웅크린 꽃망울이 봄볕에 기지개를 펴고 낙동강 줄기 따라 나룻배가 부용대(芙蓉臺) 앞을 유연자적 흘러가고 있는 안동하회마을. 4월 중순 하회탈이 살아 숨 쉬는 곳, 하회의 봄을 만나 보았다.◆하회마을에 없는 2가지 하회마을은 타 마을과 다르게 우물과 돌담이 없는데 이는 지형적 특색 때문이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어 이것을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이라고 일컫는다. 때문에 마을 이름도 물 하(河), 돌아올 회(回) ‘하회’이다.그렇다면 우물과 돌담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뉴스천지=정인선 기자] 풍산 류 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지켜온 안동하회마을은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와 초가(草架) 등 전통 민속마을의 모습을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해 온 가장 한국적인 곳이다.이에 하회마을은 한국 고유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일환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으며, 1984년 국가지정문화재로는 최초로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안동하회마을 보존과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힘쓰고 있는 하회마을보존회
[뉴스천지=손성환 기자] 5월은 가정의 달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여행을 떠난다면 어떨까.지역탐방으로 강원도 진부령을 소개한다.연두빛과 분홍빛 옷으로 갈아입은 아름다운 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관광객 줄어 한산한 상가… 주민들은 시름 깊어[뉴스천지=강수경 기자] 경주에서 불국사 행 버스를 타고가 내리면 썬 캡을 쓴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근처 식당의 여주인이다. 예년보다 늦게 찾아온 봄과 천안함 사건 등 흉흉한 소식에 발길이 줄어든 손님을 한 사람이라도 더 찾기 위해 식당 밖으로 나온 것이다.유적지 앞 음식점 상황을 김홍선(59, 여, 식당) 씨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와 석굴암이지만 예년보다는 관광객이 줄었다고 말했다. 하루 3~5만 원 정도도 벌기가 힘들다는 그의 얼굴은 어둡다.봄기운
[뉴스천지=박수란 기자] “30년 만에 다시 찾은 불국사인데 많이 좋아졌구만요. 고찰이라 낡긴 했지만 그간 보존을 잘 해온 것 같아 보기가 참 좋습니다.”토함산 등산 차 33명의 친구들과 불국사를 찾은 황근익(강원도 강릉시) 씨의 말이다. 그는 오랜만에 찾은 불국사를 보고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불국사에서는 몇 십 년 만에 이곳을 찾았다는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회사에서 워크숍으로 불국사에 왔다는 김은희(40, 충북 옥천시) 씨도 3주 전에는 가족들과 이곳을 찾았다며 “대학교 때 이후로 20년 만에 왔음에도 옛날에 봤던 다보
부처님의 나라 佛國… 신라 문화를 대표[뉴스천지=강수경 기자] 봄기운 가득담긴 한국 속 세계문화유산 불국사와 석굴암을 만나기 위해 신라시대 자취가 물씬 풍기는 경주를 찾아갔다.대중교통으로 경주에 오는 관광객이 도착해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고속버스터미널 앞에 늘어선 상가와 건물의 기와지붕이다. 특히 불국사 주변은 음식점과 상점, 유스호스텔, 심지어 주유소 지붕까지 모두 기와다. 건물 사이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의 연분홍빛과 기와의 짙은 먹색빛깔이 대비를 이루며 불국사 주변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관광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은
강릉-관동팔경 으뜸 ‘경포대’와 역사적 명소 [뉴스천지=박미혜 기자]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과 그보다 6살 많은 누이이자 조선중기 최고 여류시인인 난설헌이 뛰놀던 초당 솔밭. 곧게 자란 소나무 숲을 휘저으며 자유분방하게 꿈을 키웠던 것이 화근이었던가. 조선은 천재적인 문필가 균과 난설헌을 알아보지 못했다.이들의 아버지 초당 허엽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30년간 관직 생활을 하며 청백리에 뽑히기도 했으나 과격한 언사로 파직당하기를 반복했는데 두 남매도 아버지의 성품을 빼닮아 결국 짧은 생을 살고 간다. 본명이 초희인 난설헌은
강릉-관동팔경 으뜸 ‘경포대’와 역사적 명소 [뉴스천지=박미혜 기자] 하늘에 뜬 달이 사랑하는 님의 눈동자에 떠 있다. 그와 기울인 술잔에도, 달빛 따라 출렁이는 바다에도, 경포호수에도 모두 떠 있다. 누가 이 달을 이토록 여러 곳에 뜨게 했을까.강릉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6km지점에 위치해 있는 언덕 위 경포대는 금란정, 방해정, 해운정 등 주변의 누각이나 정자를 모두 제치고 가장 아름다운 달밤 풍경을 연출하기로 유명하다. 일찍이 시인과 문인, 명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숙종은 경포대에 직접 시를 지어내리기도 했
강릉-관동팔경 으뜸 ‘경포대’와 역사적 명소 [뉴스천지=박미혜 기자] 사람이 만들었는가 하늘이 덮어줬는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 지붕은 처음부터 자연의 일부였던 것처럼 뒷산의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조선말기 사대부 저택의 전형으로 알려진 선교장은 경포호수가 메워지기 전만해도 배가 드나들었다하여 배다리집이라 했다. 효령대군 11대손 이내번이 지었고 그 후손들이 10대에 걸쳐 현재까지 거주하며 전통과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선교장은 원래 아흔아홉 칸이었으나 화재로 소실돼 안채주옥, 열화당, 활래정, 동·서별당, 행랑채
강릉-관동팔경 으뜸 ‘경포대’와 역사적 명소 [뉴스천지=박미혜 기자] 능선을 따라 펼쳐진 백두대간 설원의 전경을 카메라에 전부 담아내지 못해 내심 아쉬워하며 강릉 시가지를 지나 도착한 곳은 오죽헌이다.오죽헌은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율곡 이이가 태어나 자라온 곳으로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에서 그 명칭이 유래됐다. 조선 초기 지어진 별당 건물로 이곳 몽룡실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났고, 조선 건축 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돼 보물로 지정됐다. 오죽헌에 세워져있는 율곡선생 동상 앞에는 ‘견득사의(見得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