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은 73주년을 맞는 광복절이다. 광복절이 갖는 의미는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나아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로 명문화 돼 있다.하지만 대한민국의 국호가 제정된 건국일을 놓고는 국론이 분열될 정도로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절 경축사를 통해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를 고려할 때, 올해는 건국 70주년이 아닌 99주년이 됨을 못 박았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건국에
누가 뭐라 해도 나라 통치의 핵심은 ‘국가 안보’와 ‘민생 경제’다. 조선의 4대 임금 세종은 군주라기보다 한글 창제라는 대업으로 인해 학자의 이미지로 우리 뇌리에 깊게 새겨져 있다. 하지만 실제 세종은 훈민정음은 물론 외교 문화 과학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국토방위와 백성들의 삶과 삶의 질을 위해 애쓴 드라마와 같은 헌신의 흔적을 역력히 확인할 수 있다.말로만이 아니라 백성에게 필요한 글을 고민했고, 백성이 먹고 살만한 방법을 고민했고, 보다 더 효율적인 농사법을 위해 고민했다.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관청이 서고 제도가 마련되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31일 여론조사 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3.5%가 장기적(79.6%) 혹은 이른 시일 내(3.9%)에 남북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민 10명 중 8명이 남북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한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협력 대상’이라는 동시에 ‘위협 대상’이라는 이중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향후 변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개혁과 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생각이 85.1%로 높게 나타났다. 북한의 핵·미사일
‘정의당 원내대표 故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정의(正義)’, 정의라는 단어의 실체가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뿌리내리기 힘든 척박한 땅에서 나름의 애를 쓰다 가신 고인의 삶과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의혹으로만 있던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 대표 드루킹)로부터의 금품수수 의혹을 인정하며, 받은 돈은 뇌물은 아니지만 정치자금법이라는 현행법에 위배되며 정의당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며 나아가 국민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눌 길 없어 극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당시의 심정이 담긴 그의 유서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지중해는 꿈의 바다다. 지중해는 전쟁과 평화와 역사와 문화와 예술과 풍요와 낭만의 바다다. 하지만 지금은 종교와 민족 간의 분쟁과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에겐 꼭 건너야 할 죽음과 저주의 바다가 돼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처럼 온갖 사연을 품은 지중해, 그 가운데서도 마치 협곡과도 같은 ‘에게해’가 있다. 이 에게해를 둘러싼 도시국가들 간 또는 외부와의 도전과 응전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흐름을 놓고 볼 때, 동방에서 서방으로 문명의 축이 이동하는 길목에서 빚어지는 대하드라마와 같은 논픽션이었다.필자는 이 작은 협곡 ‘에게해’의 각축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닐까 한다. “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있다”는 이 유명한 말은 이른바 ‘지강헌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지강헌 사건은 1988년 10월 16일 서울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탈주범 4명이 들어와 한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하다 10시간 만에 자살 또는 사살된 사건이다.88서울올림픽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 중이던 죄수들이 호송버스에서 탈출하는 사건이 일어났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펜을 든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염려되기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나라 대한민국이다. 긴긴 역사를 이어오면서 때론 흔들릴 때도, 어려울 때도, 배고플 때도, 외세의 침략도 경험해 봤다. 하지만 요즘과 같이 이 나라의 정체성마저 흔들린 적은 아마 없었던 것 같다.요즘 정치권은 여당과 야당의 대표권을 놓고 여론전과 눈치 싸움이 한창이다. 한쪽에선 자중지란 속에 끝이 보이지 않는 파열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내버려 두고 다가올 정국의 주도권을 찾기 위해 내부의 주도권싸움부터
언젠가부터 우리 곁에는 평화의 씨가 떨어져 흩날리고 있다. 이 ‘평화’는 민들레 홀씨 되어 온 누리를 뒤덮고 있다. 하지만 겉모양의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는 아직 요원해 보이기만 한 것이 필자만의 생각일까.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분야별 실무회담 등이 여러 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변죽은 울리지만 본질은 아직 베일에 가려진 채 요지부동이다. 민생을 담보로 한 평화놀이는 정치 이슈화 되면서 평화에 대한 혼선과 함께 휴전선의 갑작스런 변화에 직면한 젊은 청년들은 임무도 국방계획도 미래비전도 모른 채 그저 멘붕상태에서
해방 후 대한민국은 우익과 좌익의 혼돈이 점철돼 왔다. 한반도의 비극이 남긴 좌우 대립의 상징이 된 이념문제는 나라의 정체성을 잃게 했고, 전혀 그 의미가 다른 보수와 진보라는 영역으로 옮겨져 와 그 혼란은 점입가경에 이르렀다. 민주사회가 지탱하고 나아가 국가가 발전 성장해 가는 데 생명과도 같은 두 바퀴 곧 보수와 진보는 이미 그 본질을 떠나 곁길을 걸으며 정체성을 잃고 방황해 왔다.특히 금번 6.13 지방선거를 끝냄과 동시에 두 바퀴인 보수와 진보는 나사가 빠지고 구멍이 나고 온갖 흠집으로 수레에서 탈선할 지경에 놓이게 됐으니
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요한 때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이타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또한 논리적인 사고와 행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아닌가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이타정신보다는 이기주의가, 역지사지의 정신보다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데에는 자기의 입장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기보다는 다름만을 찾아내 갈등을 조장하는 못된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현상은 남자와 여자, 동과 서로 나뉜 지역 갈등에서 쉽게
세계는 다툼과 분쟁과 전쟁으로 아비규환이면서도 한쪽에선 평화를 외치고 있으니 역설이다. 또 한 손에는 총과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평화를 든 모순의 연속이다.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는 아이러니다. 그야말로 전쟁과 평화가 어우러진 이해하기 쉽지 않은 혼돈의 세계에 살고 있다.뿐만 아니라 자국의 정치적 계산과 자신의 명예와 자신이 속한 단체의 노선을 관철시키기 위해 평화라는 이름은 볼모로 잡혀 이리저리 고생하고 있다. 사람과 나라의 복잡하고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과연 지구촌의 평화가 이루어질까. 아니면
한치 앞을 예단할 수 없는 현실에서도 지난날을 통해 오늘을 봐야 하고, 또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세상인가. 찾아올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남사고 선생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했고, ‘호시절(好時節)’이라 했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가 하고 봤더니, 우주만물이 고대해 오던 ‘만물고대(萬物苦待) 신천운(新天運)’ 즉, 새로운 하늘이 열리는 운세기 때문이란다.기미년 독립선언서에서는 언젠가 도래할 새 세상을 미리 말해 놨는데, 위력(威力)의 시대가 아닌 도의(道義)의 시대란다.무엇이 위력이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생각했다. ‘이 정부만큼은 깨끗할 줄 알았는데’ ‘문재인 정부만큼은 잘 할 줄 알았는데’라고 말이다. 과거 정권에 대한 심판이 너무 강했기에 그 자신감에 국민들은 믿어왔다.‘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은 왜 있어서, 그 말대로 되게 하는지 속담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출범 1년 만에 헌법질서를 집행하는 현 정부의 검찰과 경찰을 믿지 못해 특검(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의 비리 및 잘못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기소하기까지의 독자적인 수사를 할 수 있는 독립 수사 기구)이라는 제도를 발동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
현재 국내 상황은 해방 후 남한 내 신탁과 반탁으로 갈라진 정치적 상황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듯하다. 시대가 변하고 문명이 발달해도 정치와 종교적 이념만은 변하지 않는가보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늘 특수한 상황과 환경이 조성돼온 외적 요인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해방 후 찾아온 정치적 혼란은 분단과 대립으로 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면, 오늘날의 정치와 이념적 대립은 통일과 화합과 봉합을 앞둔 처절한 마지막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송구영신 호시절의 때에 걸맞게 찾아온 ‘호사다마’ 또한 우리
‘격변의 한반도’, 현실의 한반도 상황을 가장 잘 어울리게 하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세계는 이 작은 나라인 땅 끝 즉, 동방의 한반도를 주목하고 있다. 아니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이끌려 이 한반도를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고 있다.지금까지 인류는 그저 살아온 것이 아니라 절대자의 섭리를 따라 시대마다 사조(思潮)를 낳고 역사를 만들어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이다. 따라서 지난 역사와 그 시대를 풍미하게 했던 사조는 오늘을 있게 한 힘이며 나아가 증인이다.격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도 눈앞의 것만 볼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2018년 4월의 어느 날, 분단된 이 강산 그 중심에 있는 비극의 상징 판문점에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남과 북의 두 정상은 당사국인 남북한은 물론 온 세계에 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선물을 선사했다. 한반도는 물론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은 획기적 대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과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의 마음에 봄바람과 함께 신선한 감동을 주기 위해 애쓴 관계자들의 노고는 오늘이 아닌 훗날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금번 남북정상회담은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나아가 북한까지 아우르면서 한반도의 브랜드를 높이 고양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한반도를 넘어 온 지구촌이 생중계로 지켜 볼 남북정상회담은 분명 남북은 물론 세계사에 길이 남을 족적이 될 것이다. 특히 분단 70년사에서 북한 최고 지도자가 남한 땅에 첫 발을 밟는 의미는 가히 크다 할 것이다.이뿐만 아니다. 단순 남북정상회담을 넘어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며, 한반도는 물론 지구촌 평화에 획기적 전환점을 가져올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한 여정의 출발점이라는 데 그 의미는 괄목할 만하다 할 것이다.이 같은 결실을 맺기까지 남과 북 내지 북과 미의 끈질긴 노력
“검으로 흥한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요즘 “댓글로 흥한 자는 댓글로 망한다”는 조어가 화제다. 최근 이 나라의 정치·사회·문화 현실을 지켜보면서 팬덤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모리배들이나 할 수 있는 지지자를 위한 광기어린 마녀사냥식 댓글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들이댄 그 잣대가 자신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수없이 경고해 왔다.즉, 댓글로 잡은 정권은 다시 그 댓글에 의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지난 대선 때 주자들이 “정치를 바꾸자”고 할 때, 문재인 후보는 정치가 아닌 “현 정권을 바꾸자
과거 노무현 정부를 칭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오늘의 당·정·청을 보면서 한 가지 짚어볼 것은 있다. 노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이 뜻을 모아 기적같이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지지정당은 물론 정부 나아가 노란색의 팬클럽까지 무조건 지지가 아닌 자체적 건전한 비판과 견제세력이 되려 했고, 노무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감상과 낭만에 치우친 즉흥적 정책과 통치는 노 정권의 거침없는 추락을 견인하며 끝내 비극적 마감을 가져왔다.그리고 원하지 않은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야 했고, 오
“총소리가 요란하게 나자 바로 옆에 나란히 묶인 어머니가 나를 덮치며 쓰러졌다. 총에 맞은 어머니의 몸이 요동치자 내 몸은 온통 어머니의 피로 범벅이 됐다. 경찰들이 총에 덜 맞은 놈이 있을지 모른다며 일일이 대검으로 찔렀지만 그때도 난 어머니의 밑에 깔려 무사했다.”어느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만들어진 것이 아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제주도에서 일어난 참극. 제주 4.3사건의 참혹한 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안인행 씨의 증언이다.어린 나이에 눈앞에서 총을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