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중국 송(宋)나라 때 문필가였던 구양수(歐陽修)는 자신의 저서 ‘귀전록(歸田錄)’에서, 마상(馬上), 침상(枕上) 측상(廁上)을 글짓기 구상이 잘 되는 곳이라고 했다. 말 위와 이부자리, 화장실이 시문(詩文)을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는 것인데, 이 세 가지를 삼상(三上)이라 했다. 이제는 말 대신 흔들리는 지하철 안이라 해야 되겠지만, 침대 위나 화장실에서 번개처럼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일이 많은 걸 보면, 요즘 세상과 다르지 않다. 구양수가 삼상(三上)을 예로 든 것은, 그곳들이 생각하기 좋은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나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쥐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뜨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굳이 풀잎같이/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까닭을/ 그제서야 알고/ 감사하며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카메라가 귀한 시절이 있었다. 집집마다 사진기가 있던 때가 아니어서 학교에서 소풍을 가거나 하면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리곤 했다.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면 며칠 후에 인화된 사진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사진이 인화돼 나올 때까지는 잘 찍혔는지 어떤지 알 길이 없어 은근히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사진이 잘 나오면 기분이 좋았지만 필름 한 통이 통째로 못 쓰게 돼 한 장도 못 건졌다는 슬픈 소식을 듣기도 했다. 때로는 여행지에서 낯선 청춘들이 사진을 찍어 주고 우편으로 사진을 보내면서 연애가 시작되기도 했다.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식당에 혼자 들어가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점심시간이나 손님이 많이 몰릴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손님이 뜸한 시간조차 혼자 식당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주인이 눈치를 주지 않더라도 먼저 주눅이 들고 미안해지기 때문에 웬만한 배짱 아니고서는 어렵다. 주인의 따가운 시선을 모른 척 하며 혼자 자리에 앉지만,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주문을 하고 마침내 밥이 나와 먹지만, 먹는 내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하다. 그렇게 먹는 밥이 맛있을 리가 없다. 식당에서 혼자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봄 햇살 좋은 요즘 여기저기서 축제다 뭐다 해서 행사가 많이 열린다. 꽃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자리를 빛내 주신 분들 소개가 이어진다. 계급 순서에 따라 차례로 이름이 불리면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인사를 한다. 줄줄이 사탕처럼 이름들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도 점점 흥을 잃어간다. 박수칠 기분마저 싹 사라지고 하늘의 뭉게구름을 올려다보려는데, 이번에는 높은 분들 축사가 이어진다.높은 분들의 축사는 약속이나 한 듯 역시나 높은 분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자리를 빛내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가게 문을 닫으려는데, 한 여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금방 사 입힌 듯 편안한 옷차림이었으나 여자는 철지난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여자는 우동 일인분을 시켜도 되느냐고 묻는다. 주인은 “예, 우동 일인분”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3인분을 주자고 했지만, 주인은 그러면 손님이 불편해 한다며 일인분인 한 덩어리에 반 덩어리를 보태 삶았다. 세 모자는 우동 한 그릇을 가운데 놓고 맛있게 먹은 뒤 일인분의 돈을 내고 돌아갔다. 섣달 그믐날이었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프랑스 자락의 프로방스 지방에 엘지아 부피에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 그는 평범한 농부였지만 하나뿐인 아들과 아내를 잃은 다음 산으로 올라가 양을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산이 점점 황량해져가자 그는 도토리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밤나무와 떡갈나무 같은 것들도 심었다.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세상이 혼란스러웠지만 그는 나무 심기를 멈추지 않았다. 몇 십 년이 흐른 뒤 황량한 산은 숲으로 우거졌고, 새들과 짐승들이 깃들고, 냇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살게 됐다. 장 지오노는 이 이야기를 ‘나무를 심는 사람’이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시대 벼슬길에 오르려면 과거를 보아야 했다.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급제라 했고, 그 중에서 1등을 장원이라 했다. 장원급제는 수석합격이라는 뜻이니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요 자랑이었다. 문과 무과 급제자들이 30여명 됐는데, 임금 앞에 죽 늘어서서 붉은 종이에 쓴 합격증서인 홍패(紅牌)를 받고 세 가지 색깔의 무궁화로 만든 어사화를 받았다. 임금은 잔치를 하라며 술도 내려주었다. 급제자들이 머리에 어사화를 꽂고 홍패를 들고 대궐을 나서면 한판 거리행진이 벌어진다. 악공들이 나발을 불면서 앞서고 예인들은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광주와 대구를 잇는 88고속도로는 ‘죽음의 도로’로 악명이 높다. 최근 10년 새 교통사고 사망률 1위로 운전자들에게 공포심을 안겨 주는 도로다. 말이 고속도로지 왕복 2차선 구간이 많고 그나마 꼬불꼬불 곡선도로가 많아 속도를 내기도 쉽지 않다. 성질 급한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거나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며 앞차 운전자를 자극한다. 속도가 느린 화물차 뒤를 따라 가다보면 속이 터지기 일쑤다.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곡예 운전을 하기도 해 보는 이의 가슴을 졸이게도 한다. 대구 쪽에서 광주 방향으로 들어서는 88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시대 양반은 문반과 무반을 아울러 부르던 것인데, 양반들은 권력을 누리고 살았다. 조선 초기에는 양반들 수가 얼마 되지 않았고 특권도 많았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신분 변동이 일기 시작했고 19세기에 이르면 상민 천민 구분이 거의 사라지고 양반 수도 크게 늘어 양반 대접도 예전만 못하게 됐다. 너나 할 것 없이 양반 행세를 했고, 거리에서 멱살잡이를 하면서도 “이 양반아~” 소리를 해댔다. 말이 양반이지 사실은 “이놈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 후기로 오면서 양반 수가 크게 늘어난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고대 로마제국이 천년 넘게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국가에 대한 관용 덕분이었다. 지금의 프랑스인 갈리아 등 로마가 정복한 나라의 사람일지라도 공을 세울 경우 시민권을 주었다. 시민권을 받은 식민지 사람들은 로마에 살지 않더라도 로마 시민과 똑같은 권리를 행사했고 이 때문에 자신들도 로마 시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아득한 시절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많은 유럽인들이 스스로를 로마의 후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그와 같은 로마의 식민지 동화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까지 치고 들어가 제국을 건설한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화병(火病)이라고 하면 옛날 며느리들에게나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추보다 더 매운 시집살이에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그렇게 할 말 못하고 억눌려 살다 보면 가슴속에 응어리가 지고, 그것이 쌓여 병이 된다는 것이다. 울화병(鬱火病)이라고 하는데, 스트레스성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이랄 수 있다. 미국 정신과 협회에서도 1996년 화병을 한국 특유의 문화관련 증후군으로 인정했다. 혹독한 시집살이도 사라지고 세상이 더욱 밝아졌다고 하는데, 화병은 오히려 더 늘고 있다고 한다. 희한한 일이다. 최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프로야구에서 광주와 전라도를 연고지로 한 해태 타이거즈 시절에는 ‘목포의 눈물’과 ‘남행열차’가 대표적인 응원가였다. 팀 이름도 바뀌고 관중들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흘러간 노래가 되고 말았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명곡들이다. ‘남행열차’는 발표된 지 30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노래방 인기 순위에 들 정도로 자주 불리고 있다. 하지만 ‘목포의 눈물’은 역사책에나 나올 법한 아득한 시절의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다.김수희가 1986년에 발표한 ‘남행열차’는 1956년 손인호가 부른 ‘비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딕 베스(Richard D. Dick Bass)는 미국의 석유, 목장, 리조트 사업가였지만 산악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50대 들어 산악인으로 변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고된 훈련과 반복된 실패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마터호른, 아콘캉구아, 킬리만자로, 엘브루스, 빈슨, 코스시우스코, 맥킨리,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밟아, 세계 최초 7대륙 최고봉 등정,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때 그는 55세였는데, “인간은 쉬운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어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인간과 가장 친한 동물 중 하나인 개는 뉴스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사람을 물어 죽였다거나 다치게 했다는 반갑잖은 소식도 있지만, 대부분은 즐겁고 유쾌한 내용이다. 먼 곳으로 팔려간 개가 수만 리 길을 되짚어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왔다거나 위험에 빠진 주인을 구해냈다는 기특한 견공 이야기도 많다. 맹인안내견이나 마약 탐지견 등 인간을 위해 애를 쓰는 고마운 개들도 있다. 얼마 전에는 뉴질랜드에서 열린 ASB 클래식 테니스대회에 세 마리의 견공들이 볼보이로 나섰다는 외신도 전해졌다.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인 비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작년 여름 멕시코의 좌파 정당인 민주혁명당이 2년마다 결혼 계약을 갱신하는 법을 만들자고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결혼을 한 커플은 2년이 되면 다시 결혼계약을 연장하거나 파기하자는 것인데, 어느 한 쪽에서 재계약을 거부하면 부부관계는 저절로 깨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혼을 위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비용도 들지 않고 골치 썩을 일도 줄어들게 된다. 멕시코에서도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게 2년제 계약 결혼 주장의 배경이다. 하지만 천주교를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질서가 없고 왁자지껄하면, 도떼기시장 같다고 한다. 도떼기는 도매로 한꺼번에 왕창 물건을 산다는 뜻인데, 부산의 국제시장이 그 원조다. 부산에서는 자갈치시장이 대표적인 시장으로 유명하지만 국제시장도 그에 못지않다. 보세의류 등 각종 옷가지와 외제물건들이 넘쳐나,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시장이 국제시장이다. 깡통시장, 케네디시장은 국제시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근의 보수동 헌책방 골목도 부산에서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렀음직한 추억의 장소다. 국제시장은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살던 곳이다. 서울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 사업가다. 삼수 끝에 항주사범대학에 입학하고, 졸업 후에도 서른 군데 넘는 회사에 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낙방했다. 별 것 아니라고 여긴 KFC 매니저 보조직조차 그를 외면했다. 항주전자과기대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지만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한 시간 가까이나 자전거를 타고 호텔로 가 외국인에게 말을 걸고 관광 안내를 하며 영어를 배웠던 그였다. 그는 미국의 친구들에게 인터넷을 배워 중국 최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일본의 20대 청년이 여자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해 달라며 소송을 낸다는 보도가 있었다. 후쿠오카에 사는 이 남성은 후쿠오카 여대 식․건강학과에 응시하려 했지만 원서 접수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화가 난 이 남자는, 남자라는 이유로 수험 자격을 주지 않는 것은 법 앞의 평등을 규정한 일본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며 대학을 상대로 처분 취소와 위자료 50만엔을 청구하는 소송을 내겠다고 했다. 남자가 여자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걸 문제 삼다니 별 희한한 사람 다 있구나 싶다.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시대 서울 사람들은 아들을 낳아 전라도 수령을 시키는 것을 소원했다고 한다. 전라도는 농토가 많고 국가 재정의 삼분의 일 가까이를 충당할 정도로 농산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광주목사가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토호들과 향리들을 들볶아 평생 먹을 것을 챙길 수 있었다. 전라도 수령은 외지 사람이 주로 차지했기 때문에 지역 농민들은 수탈에 시달렸고 여기에 맞서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18세기 무렵에는 전국의 10만석 부자 중 절반 이상이 호남지방 사람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안동 김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