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훈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청소년들은 대학이란 문턱을 넘기 위해 하나같이 입시에 올인하고 학년기가 지난 청년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로 스펙을 올리는 중이다. 기업들은 어떻게든 히트작품을 만들려고 연구에 몰입하기 보단 가능성 있는 카피제품을 찾아내기 혈안이고 내실보다는 당장의 실적을 만들어 내기에 급급하다. 오랜 시간 노력하고 투자하는 기다림보다는 빨리빨리 그리고 그 빨리에 견줄 수 있는 눈에 띄는 성과에 연연하다 보니 우리 사회는 정도보다는 편법이, 내실보다는 외모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 그러한 사회는 사람들과
광복절은 광복(光復)이라는 용어에서 보듯 희망과 기대가 함의된 날이다. 그러기에 이날은 정부 주관으로 치러지는 기념행사에서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해준다. 이번 71주년 광복절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저력과 자긍심을 발휘하고 긍정의 힘을 되살려서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의 경축사를 천명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경축사 가운데 ‘건국 68주년’이라고 말한 대목을 꼬집어 왈가왈부하는 중이다.지금까지 박 대통령은 지나간 두 차례 광복절 경축사 내용에서 ‘건국 몇 주년’ 표현 없이
최상현 주필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먼지와 티끌이 어지럽게 일어 눈을 뜨는 것조차 어렵게 된다. 가뭄 때의 비포장 공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험한 세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흔히 동원되는 ‘풍진(風塵)’이란 어휘의 글자대로의 새김(訓)은 이렇게 ‘강풍에 어지럽게 날리는 티끌과 먼지’ 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입버릇처럼 말하거니와 이 세상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험난한 체험이 강요되는, 그야말로 티끌과 먼지로 가득 찬 듯한 ‘풍진 세상’이다.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가진 것이 그저 그렇거나 권력이 많거나 적거나 이 풍진 세
서울 한복판, 서울광장 옆에는 덕수궁(德壽宮)이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다니고, 정문 격인 대한문(大漢門)을 쳐다보지만 그저 무심할 따름이다. 그러나 무심한 가운데 있는 덕수궁과 덕수궁의 대한문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외면당한 채 오늘도 묵묵히 무언가를 전하고 있다. 이 덕수궁은 그저 고궁이며 관광 명소에 불과한가. 또 시위나 집회를 합법화 시키는 장소쯤인가. 분명한 것은 치욕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수치의 상징이며 나아가 교육의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덕수궁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었으며, 정문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어른들을 흉내 내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에게도 다른 친구들은 다 고백을 받았는데 자신만 고백을 받지 못해서 고민인 초교 6년 여학생, 부모님 모르게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있는데 언제까지 비밀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초교 4년 남학생,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부모님이 만나지 말라고 해서 고민이라는 초교 3년 여학생의 사례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도대체 왜 어른들을 흉내 낼까?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명 가능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단순한 호기심, 금지된 것을 할 때의 묘한
요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한 편이 있다. 일제치하에서 종교적 신념까지라도 강제하려 했던 만행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정신으로 싸우다 순교한 고(故) 주기철 목사(1897~1944년)의 일대기를 다룬 ‘일사각오(감독 권혁만)’라는 영화다.1930년대 후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일본 고유의 신이나 천황 등을 신으로 모신 신사를 전국에 세우고 절하도록 하는 소위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1938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에
27일은 기독교의 최대 축일 부활절(復活節, Easter)이었다. 부활은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음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고 영생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건이다. 그 때문에 기독교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한 이후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전도에 나섰다.그러나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박해 받았다. 박해가 사라진 천주교는 엄청난 속도로 급성장한 반면 입에 담기 민망할 만큼 부패했다. 탐욕으로 부패한 천주교에 반기를 들고 개
느닷없이 새누리당에서 정체성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체로 정체성 논쟁은 더불어민주당에서 과거부터 특정 세력이 당내 패권을 쥐기 위한 투쟁의 수단으로 동원됐다. 이른바 ‘친노 패권세력’이 종종 벌여왔던 정체성 논쟁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물론 정체성 논쟁은 필요하고 또 정당정치를 활성화시키는 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소모적인 이념 논쟁에 매몰되거나 또는 늘 싸움만 하는 정당으로 생각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비록 야당이라도 정체성 논쟁은 최소화시키는 것이 옳다. 그 참된 논쟁만큼 국민의 시선이 결코 곱지 않기 때
박상병 정치평론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며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이례적인 발언을 내놓았다. 그 때부터 유승민 의원의 정치적 시련은 이미 시작됐었다. 그로부터 장장 9개월 만에 유승민 의원이 끝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아니 탈당한 것이 아니라 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배신자’로 몰렸고,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는 수모까지 받았다. 그러나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한 모습이다.헌법1조와 새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은 왔지만 이 나라 정치판은 세월을 거슬러 두껍게 얼어붙어 섭리를 역행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총선을 앞두고 공천문제로 막말을 넘어 한 편의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소위 친박과 비박 나아가 진박이라는 계파 간에 벌어지는 암투는 정치가 아니라 한마디로 추태다. 한 쪽에선 살아 있는 사람을 놓고 친박 비박 진박이라며 세를 규합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으나, 다른 한 쪽인 더불어 민주당은 유령을 놓고 친노와 비노의 세력이 충돌하면서, 급기야 낡은 정치를 끝내자며 탈당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더니 다시금 총선 승리라는
박상병 정치평론가 국민의당이 정동영 전 장관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당초 각이 섰던 이상돈 교수가 먼저 공식 영입되자 이제는 정동영 전 장관의 후속 행보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과연 정동영 전 장관이 국민의당에 들어갈 것인가. 들어간다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상돈 교수가 지향하는 ‘제3지대 정당’과는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단순한 인물 영입 문제를 넘어서 정당의 정체성과 ‘제3지대 정당’의 좌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스토리가 제법 흥미롭다.제3지대 정당의 핵심은 진영논리 파괴 이상돈
박상병 정치평론가 우리 헌정사 초유의 일이다. 현 정권을 만든 주역이 제1야당의 ‘절대적 전권’을 쥔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을 뿐더러 선대위원장까지 꿰찼으니 말이다. 혹자는 당내 주류인 ‘친노 패권세력’의 ‘얼굴마담’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 하지만 그 사실여부와 무관하게 이런 사례 자체가 없었으니 충격적인 일만은 사실이다. 최근의 김종인 위원장 행보를 좋게 보면 거침이 없어 보이지만 부정적으로는 수치스럽고 굴욕감마저 떨칠 수가 없다. 60년 민주헌정사를 이끌어 왔다고 자부하던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다운 행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
최상현 주필 사람 사는 세상에 갈등과 다툼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다. 마냥 세상이 태평하고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단연코 포기해야 할 헛된 꿈이다.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각양각색이다. 따라서 갈등과 다툼이 있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혹여 그 같은 갈등과 다툼은 인간 본성의 들끓는 역동성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사람 사는 세상의 갈등과 다툼의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그렇지만 사람은 심지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사이일지라도 공멸(共滅)의 피치 못할 위기 앞에서는 갈등과 다툼, 원한과 증오를 접어
최상현 주필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었다. 지중해의 파도에 떠밀려온 세 살 배기 난민 어린이 ‘아일란’의 주검이 터키의 보드륨 해안에서 발견된 것은 2015년 9월 2일이다. 숨이 멎을 만큼 애처로웠다. 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의 광경이 난민을 향해 닫혔던 유럽의 문을 잠시라도 다시 열리게 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일란의 처참한 동영상이 잠자던 유럽의 양심과 연민을 흔들어 깨워 난민을 다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놓았었다.시리아의 난민인 아일란의 아버지 압둘라는 그리스를 거쳐 누나가 살고 있는 캐나다로 가기 위해 중개인들이 안내하는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인생의 묘미는 역전에 있다. 역전승의 드라마가 자주 펼쳐지는 사회는 건전하다. 부자의 아들이 부자가 되고, 권력자의 아들이 권력자가 되고, 학자의 아들이 학자가 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부귀영화가 집중된 사회는 결국은 뒤집어진다.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자’들의 기회를 독점하게 되면 혁명의 불꽃이 점화된다. 따라서 부귀의 종량제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 제도적으로 강요하지는 못하지만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안전하게 지키려면 적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 연일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서울시교육청이 친일인명사전을 서울시 내 중·고교에 배포하겠다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맞불을 놓은 셈이다.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 서울 소재 중·고등학교 500여개교에 친일인명사전 배포사업이 시작된다. 요즘 들어 자주 등장하는 ‘역사전쟁’에 또 하나의 불씨를 댕긴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은 친일인명사전 배포와 관련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12월 1억 7550만원 규모의 친일인명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人文學)을 말한다. 인문학이란 도대체 뭔가. 인문학이 대세이니 만큼 그 의미와 이유를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인문학이란 사전적 의미로 ‘인간의 근본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기록돼 있다. 인간의 근본 즉,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은 뭔가, 삶의 목적이 뭔가, 인간에게 왜 생로병사가 있게 된 건가 등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학문이다. 결국 인문학은 나와 너와 우리와 인류에 대한 정체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인문학에는 문학 철학 역사 종교 등의 학문이 있다. 이러한 인문학이 요즘 와서 대세라는 말은
‘역사전쟁’이라는 표현이 정당 지도자의 입에서 서슴지 않고 나오고 있다. 한 언론사에서는 ‘국정교과서 논란에 두 동강 난 대한민국’이라는 극한 기사 제목까지 등장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놓고 정당 간, 세대 간, 이념 간 그야말로 전쟁에 가까운 치열한 공방이 있었던 때는 아마 없었던 것 같다. 부정적으로 보면 한심한 나라요, 긍정적으로 보면 역사 인식의 제고를 알리는 신호로도 볼 수는 있겠다. 분명한 것은 진정한 역사를 위한 싸움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의도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수단인가의 문제다. 진정한 역사를 위한 싸움은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란 마치 연료가 모두 불타버려서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갑자기 무기력해지면서 업무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개 처음에는 무척 열심히 업무에 집중을 하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투입하다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혹은 피로가 극심하게 쌓여 있을 때 나타나기 쉽다. 이러한 번아웃 증후군은 직장인, 사업가, 수험생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생길 수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예외가 되지 않는다. 즉, 엄마들이 어느 날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 1446년, 지금으로부터 569년 전이다. 한글은 중국에 대한 사대문화와 지배층의 특권의식 때문에 냉대를 받았지만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글로 생명력을 이어왔다. 사대부들은 한글은 여자들이나 쓰는 글이라 하여 암문이라 폄하하기도 했지만, 여성들 덕분에 한글이 이만큼 발전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글이 되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쓰기 편리한 글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한글학자인 주시경 선생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