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 1446년, 지금으로부터 569년 전이다. 한글은 중국에 대한 사대문화와 지배층의 특권의식 때문에 냉대를 받았지만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글로 생명력을 이어왔다. 사대부들은 한글은 여자들이나 쓰는 글이라 하여 암문이라 폄하하기도 했지만, 여성들 덕분에 한글이 이만큼 발전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글이 되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쓰기 편리한 글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한글학자인 주시경 선생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글,
전경우 작가, 문화 칼럼니스트 2001년 1월 이수현씨는 일본 도쿄의 한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렸다가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당시 이씨는 고려대 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중이었다. 스물여섯 꽃 같은 나이였다. 벌써 14년 전 일이다. 우리들도 그의 이름을 잊지는 않았지만, 세월 따라 기억도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고 이수현씨의 고귀한 뜻이 잘 이어져 오고 있다. 사고 이후 그가 다니던 학교로 보내져 온 성금을 기반으로 장학재단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700명 가까운 동남아
전경우 작가, 문화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에서는 아득한 시절 단군 시조 때부터 제사를 지내왔다. 조상을 모시는 제사가 형식을 갖추고 자리를 잡은 것은 고려 때부터다. 조선 초기까지는 자손들이 돌아가며 제사를 모셨다. 이것을 윤행(輪行)이라 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손들이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재산상속이나 제사 모시는 일에 아들 딸 구분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 중기로 넘어 오면서 ‘주자가례’를 기본으로 한 유교 예법이 보편화되고 종손 개념이 확고해지면서 이 풍속이 사라졌다. 종손이 종통(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직장의 부장님들 중에는 아랫것들 때문에 못 해 먹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윗사람 눈치 보는 것보다 부하 직원들 비위 맞추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기주장이 강해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하소연 한다. 자신들이 신입사원 시절부터 겪어온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상사가 죽어라 하면 죽는 시늉을 하고, 간 쓸개 다 빼고 살아왔는데, 정작 자신이 상사가 된 다음에는 예전 같은 상사 노릇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시절이 변했으니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 화가 치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영화 한 편에 천만 관객이 들었다 하면, 엄청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다섯 중 한 사람, 그러니까 집집마다 한 명 정도는 영화를 봐야 천만 관객이 나온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은데도, 천만 관객이 모여 들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천만은 안 되더라도, 흥행몰이에 성공하는 영화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천만 관객의 기쁨을 우리 영화들이 누리고 있다. 우리 영화의 전성시대다.요즘 우리 영화들이 관객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무엇보다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문화라는 것이 시대 상황을 반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뇌조(雷鳥)라는 새의 수컷들은 한 장소에 모여 한꺼번에 구애를 한다. 암컷들의 눈에 더 잘 띄기 위해 가슴을 잔뜩 부풀리고 춤을 추는데, 유독 무리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놈들의 성공률이 높다. 가운데 있는 수컷이 한 암컷의 눈에 띄어 짝짓기를 하면, 다른 암컷들이 와르르 몰려들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결국 한두 마리의 수컷이 거의 모든 암컷들과 짝짓기를 하고 나머지 수컷들은 헛고생만 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다른 암컷들로부터 관심을 많이 받는 수컷이 그렇지 않은 놈보다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천년 전 징키즈칸이 몽골제국을 일으켜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정보의 활용이었다. 그는 동쪽의 고려에서부터 유럽의 폴란드에 이르는 동서횡단의 길을 열어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했다. 이 길을 통해 고려의 인쇄술과 고려 인삼이 서양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슬람과 동방의 문화와 문물이 전해져 유럽의 르네상스 싹을 틔웠다. 이 동서횡단 대로의 중요 길목에는 약 40㎞마다 역참(驛站)이 있었고, 역참마다 400두의 말을 두었다. 십 리마다 말을 타고 달려 릴레이로 정보를 전달했는데, 당시로선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라 해서 8월 한 달이 어느 해보다 요란하고 떠들썩했다. 정부에서도 대대적으로 공식 축제 행사를 마련하고 그 의미를 부각시키려 애를 썼다. 언론도 광복 70주년 행사를 생중계하거나 기획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하는 등 온 나라가 축제 열기에 휩싸였다. 그 와중에 일본의 아베 총리가 담화를 발표하고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니 이제는 미래를 위해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사죄와 반성의 대상국인 우리와 중국은 물론 많은 국가들이 아베 총리의 담화가 미흡하다고 평가했지만, 일본 국민들은 그렇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올여름은 어느 해보다 무더웠다. 무더웠으므로, 떠났다. 더위를 잊고, 세상살이 고단함도 잊고, 그렇게 잊으며 다시 힘을 내기 위해 떠났던 것이다. 무엇보다 메르스의 공포를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즐거움이었다. 이글거리는 고속도로에는 피서지로 향하는 차량 행렬이 줄을 이었다. 바다에는 사람뿐 아니라 쓰레기가 넘쳐나고, 그래서 쓰레기와 함께 양심이 버려지고 있다는, 해마다 듣고 보는 뉴스를 또 듣고 볼 수 있었다. 여름은 그렇게 늘 왁자하고, 파리 떼처럼 왔다가 가고, 밀물처럼 들이닥쳤다가 썰물처럼 빠져나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충북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는 서울에서 자동차로 꼬박 두 시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깊은 산골 마을이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고 강물을 따라가야 하는,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겨우 갈 수 있는 곳이다. 요즘이야 교통이 좋아 자동차로 바로 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서울 구경 한 번 못 해 보고 평생 이곳에만 살다 간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주민들을 다 합쳐도 100명이 안 된다. 여느 농촌 마을처럼 한가롭기만 하던 이곳 만종리에 요즘 활기가 돌고 있다. 밤이면 무대에 불이 밝혀지고 연극 공연이 펼치는가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지난달 광주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다이빙 경기의 기술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국제스포츠대회 기술대표는 경기의 모든 상황을 점검하고 감독하는 중책이다. 다이빙 경기장에서 만난 기술대표는 한눈에 봐도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다. 하지만 체크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설명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미국인으로 나이가 여든이 넘었지만, 일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의 열정과 노련한 지휘 덕분에 경기는 순조롭게 끝났다. 기술대표는 다이빙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직장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 하나가 인간관계다. 상사나 부하 직원의 능력이나 성격에 따라 직장생활이 즐거울 수도 있고 반대로 끔찍할 수도 있다. 권위를 내세우며 명령복종을 외치는 상사를 둔 경우라면 더욱 힘들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에 익숙하고 군대를 경험한 세대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젊은 세대들에게는 참기 힘든 것들이 많다. 호통 개그로 재미를 본 개그맨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직장에서 호통을 쳐대는 상사라면 꼴불견이다. 제 성질을 못 이겨 마구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도 있지만, 의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가 12일간의 열전을 마감하고 지난 14일 멋지게 마무리되었다. 대회에 참가했던 각국 선수단과 미디어, 관람객들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성화가 꺼지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언론들은 대체로 이번 대회가 국제 스포츠 대회의 모범 사례로 꼽을만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대회 직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메르스와 북한 팀의 느닷없는 불참 선언, 태풍의 북상 등 여러 악재가 있었음에도 저비용 고효율의 성공적인 대회로 마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스포츠는 이기고 지는 것 외에도, 기쁨과 슬픔,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일제 강점기이던 1927년 경성방송국이 설립되면서 우리나라도 방송의 시대가 열렸다. 초기 경성방송국은 일본어 7, 한국어 3의 비율로 방송했다. 그때에도 스포츠에 대한 인기가 매우 높아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기도 했다. 스포츠 중계가 있을 때면 라디오 앞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경성방송국은 개국 첫해인 1927년 8월 28일 경일야구쟁패전을 중계방송 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중계방송이다. 초기 경성방송국의 스포츠 중계는 일본어로만 하다가 후에 한국어와 일본어로 이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국제 스포츠 행사는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생겨났지만 전쟁 때문에 취소되거나 중단되는 일도 많았다. 1916년 독일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리기로 돼 있었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개막하지 못했다. 1940년 일본 도쿄에서 열려고 했다가 중일전쟁 발발로 헬싱키로 개최지가 바뀐 12회 올림픽과 1944년 영국 런던에서 개막하려 했던 13회 올림픽도 2차 세계대전 때문에 모두 무산됐다. 12년 동안 꺼져 있던 성화가 다시 타오른 것은 1948년 런던올림픽 때였다. 런던올림픽에는 59개국 4000여명의 선수가 참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아득한 시절 그리스인들은 고대 올림픽을 여는 동안 신전에 불을 피웠다. 신의 세계에만 존재하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친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고통을 당했지만, 인류 문명을 태동시킨 고마운 존재로 여겨졌다.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은 신에게 경배를 올리는 제례의식으로 출발했고, 신전에 신성한 불(Sacred fire)이 타오르고 있는 동안에는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와 화합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성화는 1928년 제19회 암스테르담올림픽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2002년 FIFA 월드컵은 ‘4강 신화’와 함께 ‘붉은 악마’를 선두로 한 길거리 응원이라는 멋진 기억을 남겼다. 붉은 옷차림을 한 청춘들이 길거리에 모여 밤샘 응원을 하는 모습은 세계인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같은 옷을 입고 목청껏 응원을 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의 역동성과 열정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응원 열기 못지않게 스스로 질서를 지키고 거리의 휴지를 줍는 젊은이들의 선행도 보기 좋았다. 2007년 태안에서 사상 초유의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국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이집트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난투극을 벌인 사람들이 무더기로 사형선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2012년 이집트 지중해 연안도시 포트사이드에서 벌어진 프로축구 경기에서 홈팀 ‘알 마리스’가 수도 카이로를 연고지로 한 최강 ‘알 아흘리’에게 승리하자 홈팬과 원정팀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 난투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74명이나 숨지고 1000여명이 부상했다. 1996년 과테말라 시티에서 벌어진 경기장 난투극으로 78명이 숨진 이후 최악의 경기장 폭력 사태였다. 이집트 법원은 여기에 가담한 주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동네에서 굿 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가 떠나 갈 듯 징소리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 어느 집에서 굿을 하나 보다 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불행한 일이 생겨도 굿을 하고, 별 탈 없이 살고 있으면서도 더 잘 살게 해 달라며 굿을 했다. 굿을 한 덕에 신통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리는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굿판을 벌였다. 굿은 무당이 하는 것인데, 옛날에는 무당이 정치를 하고 나라의 제사를 이끄는 지도자 노릇을 했다. 정치와 제사가 분리되면서 무당은 정치에서 손을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스타벅스는 커피를 갈아 금으로 만드는 기업, 천 년의 커피 역사를 뒤집은 성공신화의 기업으로 불린다. 우리가 ‘별 다방’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곳의 CEO는 하워드 슐츠다. 그는 가난한 트럭 기사의 삼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집안의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졌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격려 덕분에 용기를 잃지 않았고, 나중에 성공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그는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가면서 뉴욕 빈민가를 벗어날 수 있었다. 대학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