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3.1운동에 앞선 법정사 항일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인사동 태화관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과 함께 독립만세시위운동이 시작되어 서울 전역과 전국에 퍼져나갔다. 민족 최고 최대의 3.1독립운동의 시작이었다. 그 5개월 12일 전에 제주도에서 법정사 항일투쟁이 일어났다. (*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가 있다. 김광식, 「법정사 항일운동의 불교사적 의의」, 『한국민족운동사연구』 5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9 김광식, 「법정사 항일운동의 근대
관동대지진 사건 96주기[천지일보=김현진 기자] 본지가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 96주기를 맞아 관련 미공개 사진을 단독으로 추가 공개한다.지난달 21일 일본 고등형사가 죽은 여성 시신의 음부를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보는 만행 사진에 이어 이번 사진에서는 학살된 시신에 자경단 한 명이 소변을 보는 만행사진이 포함돼 있다. 지진으로 희생된 자국민 시신이라면 이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며, 죄책감 없이 이 같은 행동이 가능한 것은 결국 학살한 시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사진인 셈이다.2000년대 초반 일본 고등학교 국정교과서를
학살 실체 확실히 알려주는 모습日교과서에서 계속 왜곡·삭제[천지일보=김현진 기자] 본지가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 96주기를 앞두고 관련 미공개 사진 2점을 단독 공개한다.관동대지진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역은 규모 7.9의 대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고 화재가 발생하는 등 대부분 폐허가 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당시 이 지진은 일본의 경제가 좋지 않은 공황상태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민심의 추락은 상당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곧바로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지진으로 인한 경제파탄으로 울분이 터진
우리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인 지하철. 그 노선을 따라가 보면 곳곳에 역사가 숨어있다. 조선의 궁궐은 경복궁역을 중심으로 주위에 퍼져있고, 한양의 시장 모습은 종로를 거닐며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지하철역은 역사의 교차로가 되고, 깊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켜켜이 쌓여있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지하철 노선별로 떠나볼 수 있도록 역사 여행지를 내·외국인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3호선 안국역 한양 중심, 배산임수 명당경관·경치 빼어난 8경 유명권문세가 모여살던 귀족촌반대편엔 남산골샌님들 거주1999년 가꾸기 정책 수립개발규제
인구 90% 한양 도성 안 거주인구과밀화, 주택 문제 발생해동대문·수구문 밖 동네 정한 후집 없는 사람에게 주기를 청해집짓기를 청원한 후 3개월 안에허가 문서 안 받으며 청원 취소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전하, 새 집터가 필요하옵니다.”도심 발달로 인한 인구 수 증가는 주택문제로 이어진다. 땅은 정해져 있는데, 인구는 점점 더 늘어나니 제집을 마련하는 것은 참 어렵다.조선시대에도 그랬다. 옛 기록에 의하면 한성부 전체 인구의 90%가 도성 안에 살았다고 한다. 나머지 10%가 사는 도성 밖의 행정구역은 이름조차도 없었다고 한다.
길상문양ㆍ문자문 등으로 나쁜 기운 물리쳐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곡선의 자태를 뽐내는 전통 한복에는 소지품을 넣어 보관할만한 주머니가 없다. 그래서 선조들은 한복에 주머니를 만드는 대신 옷에 어울리는 다양한 주머니를 재단했다. 이 중에서 일반적으로 ‘복을 담는 주머니’란 뜻의 복주머니가 가장 일반화 됐다. 복주머니는 ‘복(福)’이라는 단어와 ‘주머니’의 합성어로 전통 방식의 주머니를 통칭한다. 주머니에는 ‘담다’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으므로 복주머니는 장식적인 효과와 복을 비는 기복 요소가 함께 담겨 있다. 이는 ‘치성을 드린 용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