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2017년 대선을 앞두고 ‘드루킹’ 김동원씨와 공모해 포털사이트의 댓글 순위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21일 대법원에서도 징역 2년이 확정돼 지사직을 잃게 됐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무려 4년간 끌어왔던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은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김 지사는 이번 유죄 판결로 인해 정치인으로서 회복 불가능 할 만큼의 타격을 입게 됐다. 여론조작으로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적 신뢰에서도 결정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평소 젠틀하고 반듯한 언행을 보여 왔
우리사회에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당사자가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어떤 주장을 함에 있어 정확한 정보와 사실적인 거증을 토대로 해야 모두에게 설득을 얻기 마련인데, 부정확한 정보 또는 미확인 내용으로 일방적인 주장만 하게 되니 그 말이 틀리거나 혹은 주장 속 주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정치인들의 말에서 흔히 볼 수 있는바, 나중에 사실과 다르게 판명돼도 ‘아니면 말고 식’이니 무책임한 행동이다.최근 정치인들이나 정부각료가 하는 말 중에서 무책임한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 압권
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법무부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분야별로 산발된 ‘징벌적 손해배상’을 상법으로 한데 묶었다.여당발 이 법률안은 정청래, 신현영 의원 등이 앞장섰다. 이들은 ‘가짜 뉴스’ 퇴치와 관련이 있다. 정청래 의원은 기자협회 김고은 기자와의 인터뷰(10월 6일)에서 “국민들이 개혁 대상으로 검찰과 언론을 꼽는다. 왜 개혁의 대상이 됐는지 언론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언론도 권력이다. 권력은 다 감시받아야 한다. 기자도 국회의원을 실명으로 비판하듯 국회의원도 기자를 실명으로 비판할
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언론은 환경의 감시를 으뜸 요소로 한다. 권력 기구를 감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입법, 사법, 행정 등이 한 패거리로 존재할 때 언론의 주 기능을 수행하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다. 자유주의 언론은 제4부로서 밖에 있으면 제도권 안을 감시한다. 1791년 미국연방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는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만들지 말라’라고 명령을 하고, 화룡점정(畵龍點睛) 정신으로 수정헌법을 만들었다. 언론은 정부 3권이 독점하는 것을 밖에서 감시하라는 기구이다. 연방헌법에서까지 언론자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1932년 12월 19일 재판에서 도산(島山)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언도받았는데, 감형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항소를 포기하여 결국 4년형이 확정되었다.그런데 이듬해인 1933년 3월 28일 도산은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대전형무소(大田刑務所)로 이감(移監)되었는데 함께 이감된 인사들은 구연흠(具然欽), 최익한(崔益翰) 등 임정 창조파(臨政創造派)로 활동한 공산당 계열 인사 등 32명이나 되었다.당시 대전형무소에는 500여 명이 수감(收監)되어 있었으며, 공산당 재건 사건 및 노동농민
박상병 정치평론가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 구속됐다. 예상을 뛰어넘은 판결이었을 뿐만 아니라 범죄 혐의의 내용이 재판부에 의해 대부분 인정됐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충격은 엄청나다. 박근혜 정부의 ‘댓글조작’에 분노한 민심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된 문재인 정부였는데, 그들도 지난 대선 때 댓글조작을 벌였다니 어찌 그 충격이 크지 않겠는가.재판부는 허익범 특검이 기소한 거의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핵심은 김경수 경남지사와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이 ‘공모’해 저지른 ‘선거범죄’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현직 지사까지 구속시켜야
27일부터 수사가 시작되는 드루킹 특검이 수사 개시 이틀을 앞두고 허익범 특검 팀이 파견검사 총 13명을 포함해 파견 수사관 등 진용을 모두 갖췄다. 또 정부에서는 26일 열린 제28회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60일간(30일 연장 가능) 운영되는 드루킹 특검의 수사와 공소유지를 위한 인건비 등 총 31억 4천여만원 예산을 의결했다. 이로써 의혹이 들끓었던 드루킹 사건 수사를 위한 인적·물적 체제가 마련돼 이젠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국민의혹을 푸는 일만 남았다.필명이 드루킹인 김동원(49, 구속 기소)씨의 댓글 조작 사건이 불거지자 서울경
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고무신은 언제부터 신었을까? 고무신을 최초로 신은 사람은 누구일까? 고무신의 재료는 무엇일까? 고무신은 우리 전통 신발일까?고무신을 최초로 신은 사람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다. 고무신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처음 등장했고 고무나무에서 얻은 생고무를 주원료로 만들었다.고무는 11세기에 멕시코에서 공에 사용한 것이 시초이며 유럽에서는 1770년 프리스틀리(Priestley, J.)가 지우개로 처음 사용했다. 1839년 미국에서 신발 재료로 개발됐다. 일본에는 1858년 개항 이후 고무장화나 고무덧신이 수입됐다
김옥랑 꼭두박물관 관장 1994년에 국내 최초의 디지털 음향시스템을 갖춘 300석 규모의 영화관을 두 곳에 설립했다. 그리고 이 영화관은 1996년 11월에 문화체육부로부터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공식승인을 받았다. 예술영화 전용관을 열기까지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예술영화를 따로 수입을 하기 이전이어서, 무엇이 예술영화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을 정도였다. 1995년부터 영화사 백두대간과 손잡고 운영을 하기 시작했으나, 그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동숭은 돈만 댈 뿐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직원들 사기에도 문제가 생기